서울의 한 마사지업소 밀집 지역. 시각장애인 안마사의 생계 유지가 힘들어지면서 일부 안마사는 퇴폐업소에 명의를 빌려주는 ‘바지 사장’으로 전락하고 있다. 한경DB
서울의 한 마사지업소 밀집 지역. 시각장애인 안마사의 생계 유지가 힘들어지면서 일부 안마사는 퇴폐업소에 명의를 빌려주는 ‘바지 사장’으로 전락하고 있다. 한경DB
[경찰팀 리포트] 5000억 주무르는 마사지업…안마사 자격 '100년 논쟁'
#1. 최근 안마시술소를 성매매업소로 운영해 온 일당을 조사하던 서울남부지검 형사2부로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시각장애인단체 관계자라고 자신을 밝힌 이 사람은 “장애인을 부당하게 탄압한다”며 “수사를 중단해달라”고 요구했다. 검찰 수사 사건에 시각장애인 안마사 이모씨(47)가 연루돼 있었던 것이다. 이씨는 지난해 11월부터 올해 4월까지 서울 화곡동의 6층짜리 안마시술소를 운영하다 적발됐다. 검찰은 지난 5일 이씨를 불구속기소하고 건물 소유자 겸 임대인, 이 업소 야간상무를 구속기소했다. 대부분 안마시술소 성매매업소가 시각장애인을 ‘바지사장’으로 내세워 영업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한 결정이다. 검찰 관계자는 “8년 동안 시각장애인 명의를 계속 바꿔가며 업주로 내세운 정황이 있다”고 설명했다.

#2. 서울 목동에서 프랜차이즈 마사지숍을 운영하는 정모씨(48)는 최근 의료법 위반으로 300만원의 벌금형을 받았다. 올해 초 가게로 한 부부가 골반마사지를 받으러 왔다. 가게에 고용된 마사지사는 평소처럼 골반 시술을 진행했다. 시술 중 남편은 “마사지사가 아내의 엉덩이를 봤다”며 소리쳤고 결국 경찰에 신고했다. 경찰 조사 결과 마사지사의 성희롱은 오해로 밝혀졌지만 마사지사 2명과 정씨는 의료법 위반 혐의로 기소됐다. 현행법상 마사지업소 운영 및 마사지 시술은 시각장애인 안마사만 가능한 까닭이다. 한 마사지숍 관계자는 “프랜차이즈 숍이 불법이라는 것을 알고 이를 노리는 블랙컨슈머가 늘고 있다”고 말했다.

100년의 역사를 가진 시각장애인 안마독점권이 위협받고 있다. 1913년 일제강점기에 배타적 자격증이 도입된 이후 부침을 거듭하다 88 서울올림픽 이후 스포츠마사지, 2000년대 태국마사지 등에 밀리는 양상이다. 지난 6월 헌법재판소는 시각장애인에게만 안마사 자격을 주도록 한 의료법에 대해 합헌 결정을 내렸다. 그러나 의료법이 사문화되다시피해 마사지숍이 ‘뷰티산업’의 한 축으로 성장하면서 종사자들의 직업 선택 자유를 침해한다는 논란으로 이어지고 있다.

◆100년 역사 … 광복 후 피리 불며 영업

1921년 당시 제생원 맹아부(현 국립서울맹학교)의 안마(오른쪽), 침(왼쪽) 실습 장면. 국립서울맹학교 제공
1921년 당시 제생원 맹아부(현 국립서울맹학교)의 안마(오른쪽), 침(왼쪽) 실습 장면. 국립서울맹학교 제공
시각장애인 ‘안마독점권’은 100년의 역사를 지닌 규정이다. 하지만 법이 보호한 기간은 매우 짧다. 1912년 조선총독부 칙령에 따라 시각장애인을 보호하기 위해 안마사·침사 독점조항이 만들어진 것이 의료법 82조의 시초다. 1913년 시각장애인 안마사 양성을 위해 현 국립서울맹학교가 설립됐고 여기서 안마사 면허증이 발급되기 시작했다. 당시 안마와 침술이 조합되면서 전문 직업으로 인정받았다.

광복 이후 맹인안마사를 보호하던 규정들이 사라졌다. 시각장애인들은 이후 거리로 나와 피리를 불어 손님을 끌어모으는 길거리 영업으로 생계를 유지했다. 정부는 이들을 보호하기 위해 1963년 다시 ‘안마독점권’을 부활시켰지만 침을 놓을 수 있는 침사 자격은 빠졌다. 1951년 한의사 제도가 생기면서 침술이 한의사의 독점영역으로 규정됐기 때문이다.

침술 없이 안마만으로 영업을 해오던 시각장애인들은 88올림픽 이후 스포츠 마사지 등장으로 위기를 맞았다. 비시각장애인이 대거 마사지업으로 진출하면서 시각장애인 안마에 대한 수요가 줄어든 것이다. 이후 상황은 악화일로를 걸었다. 2000년대부터는 태국, 중국 등의 마사지를 표방한 프랜차이즈 마사지업체가 급격히 늘었고 시각장애인 안마사들의 일자리는 더욱 줄어들었다.

시각장애인 안마사에 대한 수요는 줄었지만 공급은 꾸준히 유지되고 있다. 서울맹학교에 따르면 지금까지 졸업한 1233명의 학생 중 안마사로 직업을 결정한 경우는 51.2%(631명)에 달했다. 지금도 연간 400명의 안마사가 배출되고 있다.

서인환 한국장애인재단 사무총장은 “현재 안마업에 종사하는 안마사는 전체 6000명 중 2000명에 불과하다”며 “많은 시각장애인 안마사들이 일자리를 잃다 보니 생계 유지를 위해 명의를 빌려주는 형태의 범죄에 노출되는 경우가 발생하고 있다”고 안타까워했다.

◆‘생존권 보장’ vs ‘역차별’ 논란

시각장애인 안마사들의 생계수단이 줄어든 반면 마사지업은 뷰티산업으로 자리매김하며 매년 높은 성장률을 보이고 있다. 통계청과 기획재정부가 지난해 발표한 서비스업 부문 통계조사 결과에 따르면 마사지업계 종사자는 2011년 1만5667명으로 전년 대비 12% 증가했다. 사업체 숫자도 2011년 6797개로 매년 증가하고 있고, 매출 규모는 5000억원에 달했다. 국내 최대 프랜차이즈 마사지숍인 ‘더풋샵’의 경우 2008년 21개였던 가맹점이 올해 3월 119개까지 증가했다.

문제는 피부숍이나 마사지숍에서 이뤄지는 마사지 행위 대부분이 현행법상 불법이라는 것. 더풋샵의 경우 올해 서울 강남구·양천구, 경기 구리시 등 총 3군데의 가맹점이 의료법 위반 혐의로 기소돼 모두 벌금형을 선고받았다.

벌금형은 업주 300만원, 마사지사 50만원. 마사지숍 업체들은 관련법 폐지를 위해 2006년부터 헌법재판소에 위헌소송을 제기해 왔지만 결과는 항상 ‘합헌’ 판정이었다. 헌재는 지난달 합헌 선고에서 “직업의 자유를 침해할 소지는 있지만 시각장애인의 생존권 보장을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라고 밝혔다.

한 마사지숍 대표는 이에 대해 “비장애인 중 마사지를 생업으로 여기는 사람도 많다”며 “마사지에 대한 수요가 많은 만큼 고객들이 선택할 수 있도록 마사지사도 다양해져야 하는 것 아니냐”고 주장했다.

◆헬스키퍼 등 공존대책 마련해야

시각장애인 안마사들과 마사지업 종사자들이 충돌하고 있지만 마땅한 대안은 나오지 않고 있다. 당국도 프랜차이즈 숍들을 대대적으로 단속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시각장애인 생존권 보장은 인정하지만, 너무 많은 숍들이 퍼져 대대적으로 단속하면 역차별 논란 등이 우려돼서다.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비장애인도 마사지를 업으로 먹고 살아온 사람들이 많고, 영세한 업자들도 꽤 있다”며 “시각장애인의 생존권 보장을 위해 단속하는 것이 맞지만, 이들의 입장도 무시하지 못해 소극적 단속에만 그치고 있다”고 토로했다. 경찰 관계자는 “워낙 유사업종이 많아 현재 성매매 행위 등으로 신고가 들어온 업소를 위주로 단속하고 있는데, 시각장애인들이 연루된 경우가 종종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시각장애인들의 일자리를 지속적으로 찾아주는 정책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양만석 혜광맹인불자회 부회장(전 서울맹학교 교사)은 “현행 제도 아래에서는 합법적 안마사가 오히려 역차별을 당하는 경우가 많다”며 “예를 들어 합법적인 안마소 개설 때엔 입지조건 등에 대한 검토를 간소화해주는 등의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김태호 기자 highkic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