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재판소가 무분별한 헌법소원 청구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특정인 한 명이 매년 200건 이상 무더기로 심판을 청구하는 등 헌법소원 남발로 헌재 업무에 차질이 빚어질 정도다. 비용 부과 등 무분별한 청구를 막을 대책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오지만 국민의 재판청구권을 제한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에 대안 마련도 쉽지 않다는 지적이다.
[단독] 한 명 300건도… 무분별 헌법소원에 헌재 '골머리'
◆한 명이 전체 17% 청구

29일 헌법재판소가 국회에 제출한 ‘헌법소원 남소(濫訴) 현황’ 자료에 따르면 헌재에 올 들어 지난 8월까지 접수된 총 1814건 가운데 A씨가 310건을 청구한 것으로 집계됐다. 전체 청구 건수의 17.1%에 달한다. A씨 등 심판청구 상위 3명의 청구 건수는 모두 619건이었다. 전체의 34.1% 수준이다. A씨는 올해만 청구를 남발한 것이 아니다. 2013년 212건, 2014년 250건, 2015년 145건, 2016년 260건 등 4년8개월 동안 867건을 헌재에 신청했다. 하지만 모두 각하 처분을 받았다.

헌재는 접수된 사건을 3명의 재판관으로 구성된 지정재판부로 보내 먼저 각하 여부를 결정한다. 각하는 청구가 요건을 갖추지 못해 심판 자체를 하지 않는 경우다. 부적법한 청구나 공소시효가 만료된 사건 등은 전원재판부로 상정하지 않고 각하 처리해 마무리한다. 지난 4년8개월 동안 헌법소원 청구를 매년 가장 많이 한 상위 3명의 사건 2495건 중 전원재판부까지 회부된 경우는 6건에 불과했다. 모두 위헌 판결을 받지 못했다.

A씨는 국내 사법제도에 불만을 품고 무더기 청구를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민사소송법 조항을 두루 문제 삼았다. 지난 5년 동안 A씨 다음으로 청구를 많이 해온 B씨도 비슷하다. 본인이 재판받는 과정에서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 법 조항을 위헌심판을 신청했다. 형사소송법, 형법, 국민의 형사재판 참여에 관한 법률 등 대상도 다양했다. 또 교도소 수감 생활에서 느낀 수용자 처우에 대한 불만으로 교도행정 관련 법률 조항도 문제 삼은 것으로 알려졌다.

헌법소원이 남발되는 것은 관련 비용이 없고 비교적 절차가 간단하기 때문이다. 민사 소송과 달리 인지대 등을 따로 부담하지 않아도 된다. 2010년부터는 집이나 사무실에서도 인터넷을 이용해 누구나 헌법소원을 낼 수 있다.

◆가중되는 헌재 업무

헌법소원 급증에 헌재 업무 부담은 가중되고 있다. 지정재판부의 연구관과 재판관 등이 접수된 내용을 일일이 검토해야 하기 때문이다. 덩달아 장기미제 사건도 늘었다. 지난 7월까지 헌재에 계류 중인 장기미제(180일 초과 기준) 사건은 516건이다. 헌법재판소법 제38조는 심판기간을 180일로 규정하고 있다. 또 헌재 사건은 일명 ‘변호사 강제주의’에 따라 반드시 변호사를 선임해야 하기 때문에 국선대리인 인건비로 예산이 낭비된다는 지적도 나온다.

하지만 법조계에서는 대책이 마땅치 않다고 입을 모은다. 헌재는 2011년 심판청구 시 공탁금을 납부하는 제도를 도입했다. 심판 청구에 소액이라도 비용이 발생하면 무분별한 심판 청구를 막을 수 있다는 취지에서였다. 하지만 논란 끝에 세부 규정을 만들지 못하고 흐지부지됐다. 헌재 관계자는 “국민의 비용 부담을 초래해 재판청구권과 헌법소원제도가 위축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에 공탁금 제도 도입이 쉽지 않다”고 말했다. 헌법연구관 출신인 한 변호사는 “헌법소원 남발자에 대한 민원 상담을 강화해 헌법소원의 이해도를 높여주는 것도 방법”이라고 제안했다.

김주완 기자 kjw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