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의역 스크린 도어 사고 2주기를 하루 앞둔 지난달 27일 서울 광진구 구의역 강변역 방면 9-4 승강장 앞에서 한 시민이 고인을 추모하고 있다.  /한경DB
구의역 스크린 도어 사고 2주기를 하루 앞둔 지난달 27일 서울 광진구 구의역 강변역 방면 9-4 승강장 앞에서 한 시민이 고인을 추모하고 있다. /한경DB
2년 전 큰 사회적 파장을 불렀던 서울지하철 2호선 구의역 참사 당시 사망자 김모군의 작업 현황을 체크해야 했던 상황실장 격인 직원이 근무지를 무단이탈한 사실이 재판을 통해 뒤늦게 밝혀졌다. 지하철로 스크린도어 작업을 의뢰받은 외주회사의 인력 부족으로 김군 혼자 근무하다 일어난 참사라는 일반적인 인식과 다른 결과다. 특히 무단이탈한 부팀장급 직원 신모씨의 이탈 사유가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이 주최한 집회 참석 때문인 것으로 밝혀져 논란이 커지고 있다.

◆사고 당시 상황실장은 무단이탈

구의역 사고는 2016년 5월 스크린도어 오작동 신고를 받고 출동한 김군이 수리작업 중 열차와 스크린도어 사이에 끼여 사망한 사건이다. 김군은 서울메트로(현 서울교통공사) 안전 용역업체인 은성PSD의 강북사업부 소속이었다. 당시 유품 가방에서 컵라면이 나오는 등 저임금 비정규직 근로자였던 김군의 힘들었던 삶이 들춰지면서 안전 불감증과 효율만을 앞세우는 한국 사회 전반의 관행에 경종을 울렸다.

하지만 사건 발생 2년여 만인 지난 8일 나온 1심 판결에서 김군이 소속 팀의 상황실장이 이탈한 채 나홀로 근무했다는 점이 드러났다. 서울동부지방법원 형사3단독(판사 조현락)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개별적 원인’과 ‘구조적 원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사고가 일어났다는 취지를 명시했다. 개별적 원인으로는 “당시 같은 팀이었던 신씨가 무단으로 근무지를 이탈해 노조 집회에 참석했다”고 적었다.

신씨는 부팀장 직위로, 당시 비번이던 팀장 대신 상황실장 역할을 수행하고 있었다. 팀원들의 작업 현황을 파악하고 적절하게 배치하는 것이 그의 임무였다. 하지만 사고가 발생한 오후 5시57분 당시 집회에 참가하느라 근무지에 없었다. 신씨는 서울메트로에서 근무하다 퇴직하고 은성PSD로 취업한 뒤 민주노총 활동을 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이 수사 결과 발표 때 무단이탈자 신씨와 관련한 사실을 누락하고 기소유예 처분을 내린 점도 논란이다. 동부지검 관계자는 “검찰 조사 결과 신씨 한 사람이 현장에 없었던 것보다는 인력구조상 모든 책임을 져야 하는 이재범 은성PSD 대표가 무리하게 회사를 운영한 것이 사고의 직접적 원인이 된다고 봤다”며 “신씨의 직위 등을 미뤄봤을 때 기소될 정도로는 책임이 없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은폐 의혹 자초한 민주노총

1심 결과와 새로 드러난 사실들은 민주노총의 이중적 행태를 둘러싼 논란을 부르고 있다. 사고 당시 민주노총을 비롯한 노동계는 위험한 작업을 하청업체로 미루는 ‘위험의 외주화’를 비판했고 이에 국민적 공분이 일었다. 열악한 작업환경이 김군과 같은 저임금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착취한 ‘사회적 타살’이라는 점은 변함없지만 도덕적·사회적 책임에 대한 민주노총의 사과나 언급이 있었어야 한다는 지적이다.

민주노총은 조합원의 집회 참가를 위한 무단이탈이 사고의 원인이라는 점을 밝히지도 않았다. 은성PSD 노조는 민주노총 여성연맹 소속이다. 지난 5월28일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등은 서울 구의역 1번 출구 앞에서 구의역 참사 2주기를 추모하는 문화제를 열기도 했다. 재판에서 드러난 사실과 관련해 민주노총 관계자는 “답변하고 싶지 않다”며 입을 닫았다.

◆재판 결과 두고 서울교통공사 내분

서울교통공사의 행보도 의구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공사 관계자는 “근무지 이탈 사실을 이번 재판 과정에서 알았다”고 해명했다. 상식적으로 잘 이해되지 않는 이 해명을 인정한다 하더라도 사건 당시 이런 점을 확인하지 못한 데 대한 책임 논란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민주노총에 대한 비판은 교통공사 내부에서도 제기되고 있다. 한국노동조합총연맹 소속인 서울교통공사 통합노조는 “단독 근무와 정원 부족 등을 문제삼아 정규직 인력 충원을 줄기차게 요구했던 민주노총의 후안무치에 분노한다”고 비판하고 나섰다. 상황실장의 무단이탈로 현장 대처능력이 떨어진 게 사고의 결정적 원인인데 남 탓만 한다는 주장이다.

1심 재판부는 구의역 사고의 주 책임자인 이 대표에게 스크린도어 수리작업 시 2인1조 근무가 불가능한 상태를 방치해온 혐의(업무상 과실치사) 등으로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이해성/조아란 기자 ih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