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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필라테스협회에 전화를 걸었다. “필라테스 수업을 딱 한 번 들어봤는데 필라테스 강사를 해보고 싶다”고 했다. 그러자 “초보자라도 300만원만 내면 4개월 만에 필라테스 강사가 될 수 있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해당 협회는 포털 사이트에서 ‘필라테스 자격증’을 검색하면 상위에 올라와 있는 곳이다. 협회 관계자는 “교육과정 중간에 이탈하는 학생이 없을 정도로 자격증을 따기 쉽다”며 “취업 연계와 창업 지원까지 해준다”고 전했다. 또 다른 필라테스협회에서도 비슷한 답변을 들을 수 있었다. 4개월간 140~180시간 교육과정만 이수하면 웬만한 필라테스 수업은 할 수 있다고 했다.

극심한 취업난과 치열한 ‘스펙 쌓기’ 경쟁에 힘입어 민간자격증이 범람하고 있다. 최근 소비트렌드에 맞춰 관련 자격증이 우후죽순 등장하면서 한 분야에서만 수백 개의 자격증이 나올 정도다. 하지만 자격증을 취득하는 데 드는 시간과 비용, 교육 내용은 천차만별이다. 자격증은 무분별하게 남발하고 사후관리는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소비자 피해만 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신종’ 민간자격증 매년 5000개 등장

민간자격증 매월 640개 생겨…초보도 넉 달이면 필라테스 강사
10일 현재 한국직업능력개발원 민간자격정보서비스에 등록돼 있는 민간자격증 종류는 총 3만3928건에 이른다. 2015년부터는 매년 5000개 이상 민간자격증이 새로 등록되고 있다. 올 들어 이날까지 신규로 등록된 민간자격증만 2579건이다. 매달 약 600개씩 민간자격증이 생겨나는 셈이다.

민간자격증은 국민의 생명·건강 및 국방에 직결되는 분야에 해당하지 않으면서 신청인의 결격사유(미성년자 등)만 없으면 누구나 등록할 수 있다. 이들 가운데 일정 자격을 갖춘 민간자격증에 한해 정부가 심의 및 업계 의견 수렴 등의 절차를 거쳐 공인 자격을 부여한다. 한국농아인협회가 발급하는 수화통역사, 한국언어문화연구원이 주관하는 국어능력인증시험(ToKL) 등이 대표적이다. ‘국가공인’ 민간자격증은 97개로 전체 민간자격증의 0.003% 수준에 그친다.

민간자격증이 무분별하게 늘어나는 이유는 ‘돈’이 되기 때문이다. 교육부에 따르면 민간자격증 응시자 수는 2012년 약 44만 명에서 2016년 86만 명으로 4년 만에 배 가까이 늘었다. 스펙을 하나라도 더 쌓으려는 취업준비생과 사회경력이 단절된 주부 등이 주요 타깃이다. 한 국가공인 민간자격증 발급기관 관계자는 “국가공인 자격증은 현장 실습 등 여러 절차를 거쳐야 하기 때문에 취득하기가 까다롭지만 한 자격증이 공인을 받으면 비슷하지만 쉽게 딸 수 있는 ‘아류급’ 민간자격증들이 우후죽순 쏟아진다”고 말했다.

요가 자격증만 590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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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인 트렌드를 좇는 민간자격증이 급증하고 있다. 필라테스 관련 민간자격증은 총 426개로 올 들어서만 57개가 새로 등장했다. 한 달에 20개씩 생기고 있는 셈이다. 요가 자격증은 현재 590개로 올해만 62개가 새로 등록됐다. 이 밖에 코딩 관련 자격증, 반려동물 관련 자격증도 각각 300개가 넘는다. 연간 신규로 등록되는 민간자격증은 2016년 86건에서 2017년 104건, 지난해 145건으로 빠른 속도로 늘고 있다.

특정 분야에 사람들의 관심이 쏠리면 자격증을 발급하는 기관이 생겨나고, 기관마다 비슷한 자격증을 경쟁적으로 내놓으며 개수가 늘어나는 구조다. 요가는 ‘영유아요가지도자’ ‘해먹요가지도자’ ‘요가명상지도사’ 등 다양한 이름의 자격증이 등록돼 있다.

다양한 자격증만큼이나 취득하기 위한 교육과정도 천차만별이다. 한 필라테스협회의 경우 40만원대 한 달 교육과정과 400만~500만원대 6개월 이상 교육과정을 모두 똑같이 ‘필라테스 지도자’라는 이름으로 소개하고 있다. 개인이 운영하는 필라테스센터에서 자격증을 발급하는 사례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익명을 요구한 한 필라테스 강사는 “4개월 만에 필라테스 자격증을 취득한 뒤 강사로서 역량이 부족한 것 같아 추가교육을 받았다”며 “민간자격증을 따자마자 개인 센터를 열거나 방문 강습 등을 바로 하는 사람도 있는데 미숙한 실력은 결국 탄로 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트렌드에 따라 매번 해당 분야 자격증을 따는 사람들도 많다. 필라테스 강사들이 모여있는 한 온라인 카페에서는 ‘플로리스트 출신’ ‘네일아티스트 출신’ 필라테스 강사들의 글이 올라온다. 한 카페 회원은 “모대학 방송연예과를 졸업한 후 먹고 살기 위해 네일아트 자격증을 취득해 일을 하다가 플로리스트 자격증을 땄고, 현재 필라테스 강사 자격증을 따려고 공부 중”이라고 소개했다.

“품질 관리 없이 자격증만 남발”

자격증이 무분별하게 남발돼 전문성이 떨어지는 강사들이 배출되고 있어 소비자 피해만 급증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요가, 필라테스 등의 경우 디스크 재발 등 부작용을 호소하는 사례들이 이어지고 있다. 최근 한 대학 커뮤니티에서는 ‘이제 막 자격증을 딴 강사에게 필라테스 수업을 들었는데 허벅지 일부 근육만 지나치게 발달해 다리 모양이 울퉁불퉁해졌다’는 글이 올라왔다. 게시물 작성자는 “강사에게 몇 번 말해봤지만 ‘일찍 와서 스트레칭을 하라’는 말만 반복했다”고 토로했다. 직장인 김모씨(27)는 “최근 요가를 배우려고 알아봤더니 집 근처에만 요가원이 10곳 이상이라 어디가 잘하는지 모르겠다”며 “잘못 갔다간 다치기 쉬우니 10년 이상 운영하는 요가원에 가라는 조언을 들었다”고 말했다. 소윤수 경희대병원 재활의학과 교수는 “잘못된 자세나 충분한 스트레칭 없는 운동은 근육이나 인대 손상을 줄 수 있다”며 “두 운동이 ‘웰빙 운동’으로 각광받으면서 부작용을 호소하며 병원을 찾는 환자들이 급증하고 있다”고 말했다.

반려동물을 키우는 사람 사이에서도 ‘경력 불명’ 반려동물 미용사에 대한 불만이 나온다. 강아지 두 마리를 키우는 대학원생 최모씨는 “강아지는 발톱 안쪽에 혈관이 있어 끝부분만 깎는 게 기본 상식인데 미용사가 혈관까지 잘라 피가 난 적이 있다”며 “미용사 경력을 알고 싶어도 공개하는 곳이 없어 ‘셀프 미용’도 해봤다”고 말했다.

정부는 민간자격증의 교육과정 품질엔 관여하지 않고 있다. 이에 대해 교육부 관계자는 “민간자격증은 전문성을 보장받기 위한 국가자격증과 성격이 다르다는 것을 유념해야 한다”며 “매년 수많은 분야에서 민간자격증이 나오는데 정부가 분야마다 업계와 사회적 합의를 거쳐 기준을 설정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노유정 기자 yjro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