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행 코앞인데…中企 "괴롭힘 금지법이 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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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기중앙회·한경 100곳 설문
10곳 중 7곳 "法 잘 모른다"
"고용부 매뉴얼 못 봤다" 73%
"투서남발 등 부작용 우려" 90%
10곳 중 7곳 "法 잘 모른다"
"고용부 매뉴얼 못 봤다" 73%
"투서남발 등 부작용 우려" 90%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 시행이 다음달 16일로 다가오면서 기업들에 비상이 걸렸다. ‘괴롭힘’의 정의가 추상적이고 모호해 회사 내 갈등을 키우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적지 않다. 일부 기업에서는 노동조합이 경영진을 공격하기 위한 수단으로 악용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상당수 법 적용대상 중소기업(근로자 5인 이상)은 법 시행 사실조차 모르는 등 ‘무방비 상태’다. 직장 내 괴롭힘(신체적·정신적 고통 유발 행위)이 확인되면 사업주는 가해자를 즉시 징계해야 한다. 신고자나 피해자에게 불이익을 주면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해진다.
한국경제신문과 중소기업중앙회가 27일 중소기업 100곳(응답 기업 기준)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73곳(73%)이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 관련 정부 가이드라인도 확인하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고용노동부는 지난 2월 ‘직장 내 괴롭힘 판단 및 예방·대응 매뉴얼’을 제작해 기업에 배포하는 등 홍보활동을 해왔다. 이 가이드라인을 봤다고 답한 중소기업은 27곳에 그쳤다.
‘법에 대해 알고 있다’고 답변한 중소기업도 32%뿐이었다. 38%는 ‘들어보기만 했다’고 했고, 30%는 ‘모른다’고 응답했다. 정부가 권고한 ‘전담 인력·조직 확보’ 등에 대해선 55%의 중소기업이 ‘부담스럽다’고 했다. ‘법이 시행되면 조직문화가 좋아질 것’이라고 내다본 기업 비중은 절반에 못 미치는 46%였다. ‘큰 변화가 없을 것’이란 응답이 31%, ‘상호 신뢰와 소통에 장애가 될 것’이란 의견이 23%였다.
응답 기업의 90%는 무분별한 투서 등 부작용을 우려했다. 한 중소기업 대표는 “괴롭힘 방지법이 도입 취지와 달리 조직 내 갈등과 분란을 조장하지 않을까 걱정이 앞선다”고 말했다. '직장 괴롭힘' 모호한 法기준에 기업들 혼란…"사내 갈등만 키울 것"
다음달 16일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 시행을 앞두고 기업들의 우려가 커지고 있다. ‘서로 존중하는 문화 정착’이란 좋은 취지에도 불구하고 현장의 혼란이 커질 것이라는 부정적인 시각이 우세하다. 법상 ‘괴롭힘’의 개념이 포괄적인 데다 법 위반 판단 기준 등이 모호한 탓이다.
정부가 경제계와 충분한 논의 없이 법을 밀어붙였다는 지적도 나온다. 기존 근로기준법에 포괄적인 규정을 추가한 뒤 기업과 대표이사에게 예방, 처벌 등의 책임을 떠넘겼다는 비판도 거세다. 기업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사내 문제’에까지 법이 개입할 여지를 준 점도 경영계가 불만을 터뜨리는 이유 중 하나다.
협업 중요한 R&D 부서 ‘초비상’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 시행이 다가오면서 기업들은 ‘초비상’ 상태다. 법 적용 대상은 상시근로자 5인 이상 기업이다. 대기업들은 지난 4월께부터 임직원 교육에 나섰지만 직원 간 갈등과 분쟁을 원천적으로 막을 방법이 없어 바짝 긴장하고 있다. 협업과 팀워크가 중요한 연구개발(R&D) 조직이나 각 부서 인력이 모인 태스크포스(TF)팀 안에서 분쟁이 발생하고 징계로 이어지면 경영에도 타격을 받을 가능성이 크다. 김영완 한국경영자총협회 노동정책본부장은 “정당한 인사 조치나 직원 간 긴장 관계가 분쟁으로 이어질 수 있어 경영에 부정적 영향을 줄 것”이라고 지적했다.
인력과 노하우가 부족한 중견·중소기업은 걱정이 더 크다. ‘취업규칙 개정’ 의무와 관련한 처벌 조항이 대표적인 부담 사례로 꼽힌다. 상시근로자 10인 이상 기업은 법 시행일 전까지 취업규칙에 △괴롭힘 행위 사례 예시 △예방교육 △사건처리 △피해자 보호조치 △징계규정 등을 포함해야 한다. 기업들은 이 내용을 고용노동부 장관에게 신고해야 한다. 취업규칙에 괴롭힘 관련 내용을 반영하지 않으면 ‘500만원 이하의 과태료’를 물게 된다. 교육실시 등 권고 사항도 기업엔 부담이다. 한 중소업체 관계자는 “기업 얘기는 듣지도 않고 ‘일단 법을 만들어놓고 따라오라’는 식이니 부담스럽다”고 하소연했다.
“고무줄 법 조항이 분쟁 조장할 수도”
법 조항이 너무 포괄적인 것은 기업 규모와 관계없이 골머리를 앓고 있는 부분이다. 법에 규정된 괴롭힘의 정의는 ‘사용자 또는 근로자가 직장에서의 지위 또는 관계 등의 우위를 이용해 업무상 적정 범위를 넘어 다른 근로자에게 신체적·정신적 고통을 주거나 근무환경을 악화시키는 행위’다.
포괄적이란 지적이 나오자 고용부는 지난 2월 매뉴얼을 내놨다. 하지만 여전히 모호하다는 게 기업들의 얘기다. 법 조항의 ‘근무환경 악화’에 대해 매뉴얼은 ‘피해자가 능력을 발휘하는 데 간과할 수 없을 정도의 지장이 발생하는 것을 의미한다’고 설명했지만 ‘아리송하다’는 반응이 많다.
괴롭힘 예시에 자주 등장하는 ‘정당한 이유 없이’라는 표현과 관련해서도 ‘추상적’이라는 평가다. 저성과자 교육 때 문제가 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한 대기업의 인사팀장은 “업무 능력이 떨어져 중요한 일을 안 시키는 것에 대해 ‘정당한 이유’가 아니라고 주장할 수 있다”고 꼬집었다.
악용될 우려도 커
괴롭힘 금지법의 악용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크다. 박수현 변호사(공인노무사)는 “성과 미흡으로 권고사직을 받고 회사와 분쟁 중인 근로자가 자신의 과실을 은폐하기 위해 ‘괴롭힘을 당했다’고 주장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그는 “기업들은 평소 근로자들의 성과 관리 등에 대해 객관적인 평가 자료를 확보해놔야 한다”고 조언했다.
벌써부터 현장에선 신생 노동조합이 세(勢)를 확대하기 위한 발판으로 괴롭힘 금지법을 활용할 것이라는 얘기가 나온다. 반도체 대기업 S사의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산하 기술·사무직 노조가 대표적이다. 이 노조는 기존 노조와의 선명성을 부각하기 위해 ‘직장 내 갑질 참지 마세요’란 문구가 찍힌 선전물을 배포하며 조합원 확보에 열을 올리고 있다.
‘중복 규제’ 우려도 나온다. 기존 근로기준법의 ‘폭행의 금지’(8조) ‘해고 등의 제한’(23조), 형법의 ‘모욕’(311조) ‘명예훼손’(307조), 남녀고용평등법 내 ‘직장 내 성희롱 금지’(12조) 조항 등을 통해서도 직장 내 괴롭힘을 처벌할 수 있기 때문이다.
황정수/심성미/나수지/고재연/임유 기자 hjs@hankyung.com
한국경제신문과 중소기업중앙회가 27일 중소기업 100곳(응답 기업 기준)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73곳(73%)이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 관련 정부 가이드라인도 확인하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고용노동부는 지난 2월 ‘직장 내 괴롭힘 판단 및 예방·대응 매뉴얼’을 제작해 기업에 배포하는 등 홍보활동을 해왔다. 이 가이드라인을 봤다고 답한 중소기업은 27곳에 그쳤다.
‘법에 대해 알고 있다’고 답변한 중소기업도 32%뿐이었다. 38%는 ‘들어보기만 했다’고 했고, 30%는 ‘모른다’고 응답했다. 정부가 권고한 ‘전담 인력·조직 확보’ 등에 대해선 55%의 중소기업이 ‘부담스럽다’고 했다. ‘법이 시행되면 조직문화가 좋아질 것’이라고 내다본 기업 비중은 절반에 못 미치는 46%였다. ‘큰 변화가 없을 것’이란 응답이 31%, ‘상호 신뢰와 소통에 장애가 될 것’이란 의견이 23%였다.
응답 기업의 90%는 무분별한 투서 등 부작용을 우려했다. 한 중소기업 대표는 “괴롭힘 방지법이 도입 취지와 달리 조직 내 갈등과 분란을 조장하지 않을까 걱정이 앞선다”고 말했다. '직장 괴롭힘' 모호한 法기준에 기업들 혼란…"사내 갈등만 키울 것"
다음달 16일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 시행을 앞두고 기업들의 우려가 커지고 있다. ‘서로 존중하는 문화 정착’이란 좋은 취지에도 불구하고 현장의 혼란이 커질 것이라는 부정적인 시각이 우세하다. 법상 ‘괴롭힘’의 개념이 포괄적인 데다 법 위반 판단 기준 등이 모호한 탓이다.
정부가 경제계와 충분한 논의 없이 법을 밀어붙였다는 지적도 나온다. 기존 근로기준법에 포괄적인 규정을 추가한 뒤 기업과 대표이사에게 예방, 처벌 등의 책임을 떠넘겼다는 비판도 거세다. 기업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사내 문제’에까지 법이 개입할 여지를 준 점도 경영계가 불만을 터뜨리는 이유 중 하나다.
협업 중요한 R&D 부서 ‘초비상’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 시행이 다가오면서 기업들은 ‘초비상’ 상태다. 법 적용 대상은 상시근로자 5인 이상 기업이다. 대기업들은 지난 4월께부터 임직원 교육에 나섰지만 직원 간 갈등과 분쟁을 원천적으로 막을 방법이 없어 바짝 긴장하고 있다. 협업과 팀워크가 중요한 연구개발(R&D) 조직이나 각 부서 인력이 모인 태스크포스(TF)팀 안에서 분쟁이 발생하고 징계로 이어지면 경영에도 타격을 받을 가능성이 크다. 김영완 한국경영자총협회 노동정책본부장은 “정당한 인사 조치나 직원 간 긴장 관계가 분쟁으로 이어질 수 있어 경영에 부정적 영향을 줄 것”이라고 지적했다.
인력과 노하우가 부족한 중견·중소기업은 걱정이 더 크다. ‘취업규칙 개정’ 의무와 관련한 처벌 조항이 대표적인 부담 사례로 꼽힌다. 상시근로자 10인 이상 기업은 법 시행일 전까지 취업규칙에 △괴롭힘 행위 사례 예시 △예방교육 △사건처리 △피해자 보호조치 △징계규정 등을 포함해야 한다. 기업들은 이 내용을 고용노동부 장관에게 신고해야 한다. 취업규칙에 괴롭힘 관련 내용을 반영하지 않으면 ‘500만원 이하의 과태료’를 물게 된다. 교육실시 등 권고 사항도 기업엔 부담이다. 한 중소업체 관계자는 “기업 얘기는 듣지도 않고 ‘일단 법을 만들어놓고 따라오라’는 식이니 부담스럽다”고 하소연했다.
“고무줄 법 조항이 분쟁 조장할 수도”
법 조항이 너무 포괄적인 것은 기업 규모와 관계없이 골머리를 앓고 있는 부분이다. 법에 규정된 괴롭힘의 정의는 ‘사용자 또는 근로자가 직장에서의 지위 또는 관계 등의 우위를 이용해 업무상 적정 범위를 넘어 다른 근로자에게 신체적·정신적 고통을 주거나 근무환경을 악화시키는 행위’다.
포괄적이란 지적이 나오자 고용부는 지난 2월 매뉴얼을 내놨다. 하지만 여전히 모호하다는 게 기업들의 얘기다. 법 조항의 ‘근무환경 악화’에 대해 매뉴얼은 ‘피해자가 능력을 발휘하는 데 간과할 수 없을 정도의 지장이 발생하는 것을 의미한다’고 설명했지만 ‘아리송하다’는 반응이 많다.
괴롭힘 예시에 자주 등장하는 ‘정당한 이유 없이’라는 표현과 관련해서도 ‘추상적’이라는 평가다. 저성과자 교육 때 문제가 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한 대기업의 인사팀장은 “업무 능력이 떨어져 중요한 일을 안 시키는 것에 대해 ‘정당한 이유’가 아니라고 주장할 수 있다”고 꼬집었다.
악용될 우려도 커
괴롭힘 금지법의 악용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크다. 박수현 변호사(공인노무사)는 “성과 미흡으로 권고사직을 받고 회사와 분쟁 중인 근로자가 자신의 과실을 은폐하기 위해 ‘괴롭힘을 당했다’고 주장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그는 “기업들은 평소 근로자들의 성과 관리 등에 대해 객관적인 평가 자료를 확보해놔야 한다”고 조언했다.
벌써부터 현장에선 신생 노동조합이 세(勢)를 확대하기 위한 발판으로 괴롭힘 금지법을 활용할 것이라는 얘기가 나온다. 반도체 대기업 S사의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산하 기술·사무직 노조가 대표적이다. 이 노조는 기존 노조와의 선명성을 부각하기 위해 ‘직장 내 갑질 참지 마세요’란 문구가 찍힌 선전물을 배포하며 조합원 확보에 열을 올리고 있다.
‘중복 규제’ 우려도 나온다. 기존 근로기준법의 ‘폭행의 금지’(8조) ‘해고 등의 제한’(23조), 형법의 ‘모욕’(311조) ‘명예훼손’(307조), 남녀고용평등법 내 ‘직장 내 성희롱 금지’(12조) 조항 등을 통해서도 직장 내 괴롭힘을 처벌할 수 있기 때문이다.
황정수/심성미/나수지/고재연/임유 기자 hj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