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유정 왜 또 카레였나'…정신과 전문의 "졸피뎀 쓴 맛, 카레 향에 가려질수도"
전 남편을 무참해 살해하고 시신을 유기한 의혹을 받고 있는 고유정(36.구속)이 1일 재판에 넘겨진 가운데 전 남편과 의붓 아들 모두 사망 전 날 카레를 먹은 것으로 드러났다.

검찰은 고유정이 미리 준비한 졸피뎀을 전남편 강모(36)씨 음식물에 넣어 먹인 뒤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판단했다.

고유정이 범행 전 수면제를 섞은 카레를 강씨에게 먹였다는 검찰 발표가 나오자 지난 3월 숨진 고유정의 의붓아들(5)도 사망 전날 고유정이 만들어준 카레라이스를 먹었다고 고유정의 현 남편이 주장했다.

국민일보 보도에 따르면 현 남편 A씨(37)는 "나와 내 아이도 지난 3월 1일(사망 전날) 저녁식사로 카레를 먹었다"고 주장했다. 이 보도에 따르면 당일 카레라이스를 앞에 둔 아이는 고사리 손을 하고 환하게 웃고 있었다. 다음날 아이는 피를 토하며 숨진 채 발견됐다.
고유정 /사진=연합뉴스
고유정 /사진=연합뉴스
A씨는 "고유정이 카레에 약을 섞어 전 남편에게 먹였다는 검찰 발표가 나온 뒤 소름이 끼쳤다"면서 "고유정이 카레 안에 약물을 섞었다고 단언할 수는 없지만 우연의 일치 치고는 너무 이상하다. 수법이 똑같지 않나. 나도 평소보다 깊게 잠들었다"라고 의혹을 제기했다. A씨는 제주서의 고유정 행각이 드러난 이후 "아들의 죽음에 석연치 않은 점이 있다"면서 고유정의 재수사를 요청한 상황이다.

하지만 앞서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은 A씨의 아들을 부검하고 ‘압착에 의한 질식사’로 결론 내린 뒤 “외상이나 장기 손상은 없었고 약물이나 독극물도 검출되지 않았다”는 소견을 밝힌 바 있다.

혈흔에서 졸피뎀이 발견된 강씨가 고유정이 준비한 수면제가 섞인 카레를 먹고 잠이 들었다면 180cm의 거구인 그가 왜 왜소한 고유정에게 제압당했는지 추정이 가능해진다.

현장에서는 강씨가 피를 흘리며 현관쪽으로 기어가려 한 흔적도 발견됐다.

졸피뎀은 불면증의 단기 치료에 사용되는 약물로 뇌에서 억제성 신경전달물질의 작용을 강화시켜 진정 및 수면 효과를 나타낸다. 효과가 빠르게 나타나므로, 취침 바로 직전에 투여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약물의존성과 오남용 위험이 있어 향정신성의약품으로 지정되어 있다.
고유정이 유기한 것으로 추정되는 봉지를 찾아 수색 중인 완도해경 (사진=연합뉴스)
고유정이 유기한 것으로 추정되는 봉지를 찾아 수색 중인 완도해경 (사진=연합뉴스)
고유정이 제주서 버린 물체 수색 중 (사진=연합뉴스)
고유정이 제주서 버린 물체 수색 중 (사진=연합뉴스)
고유정 사건 피해자 유해 찾는 경찰 (사진=연합뉴스)
고유정 사건 피해자 유해 찾는 경찰 (사진=연합뉴스)
현직 약사는 "우리 약국에 있는 졸피뎀은 모두 흰색이고 향은 없다. 졸피뎀도 회사마다 이름이 다른데 스틸녹스, 졸피드, 졸피뎀 등이 있다"면서 "현재 처방전은 최소한으로 하는 추세다. 최근 관리가 강화돼 조제 내역을 인터넷 통해 보고해야 한다"고 전했다.

정신과 전문의인 이계성 인천참사랑병원 원장은 "졸피뎀은 향이 없다. 특유의 쓴 맛이 있지만 갈아서 카레에 섞었다면 향신료에 의해 가려질 수 있을 듯 하다"고 말했다.

최근 졸피뎀이 성범죄에 악용되는 경우가 늘면서 병원서도 엄격하게 관리되고 있다

검찰이 고유정 기소 전 강씨 시신을 찾아내지 못했다.

비록 시신을 찾지는 못했지만, 검찰은 전 남편의 DNA가 나온 흉기 등 증거물이 89점에 달하는데다, 고유정이 미리 범행방법을 검색하고 도구를 구입하는 등 정황이 충분해, 혐의 입증에는 문제가 없을 것으로 보고 있다.

장기석 제주지방검찰청 차장검사에 따르면 고유정은 강씨의 성폭행을 피하려다 우발적으로 범행했다는 주장만 되풀이할 뿐, 일관되게 진술을 거부해 왔다.

검찰이 적용한 고유정의 혐의는 살인과 사체손괴 등 세 가지.

고유정은 지난 5월 25일 제주시 조천읍 모 펜션에서 강씨를 흉기로 수차례 찔러 살해한 후 시신을 훼손해 최소 3곳 이상의 다른 장소에 유기한 혐의를 받고 있다.

고유정은 강씨를 살해한 뒤 5월 26∼31일 사이에 이 펜션에서 피해자의 시신을 훼손해 일부를 제주 인근 바다에 버리고, 가족이 별도로 소유한 경기도 김포의 한 아파트에서 나머지 시신을 추가로 훼손해 쓰레기 분리시설에 버렸다고 검찰은 설명했다.

전 남편의 시신을 끝내 찾지 못해, 애초 적용하려던 사체유기 혐의는 뺐다.

경찰에 이어 검찰도 우발적으로 남편을 살해했다는 고유정 진술 외에 범행 동기 등은 밝혀내지 못했다.

검찰은 고유정의 범행에 대해 "극단적인 인명 경시 살인"이라고 판단했는데, 받아들여질 경우 법원의 살인죄 양형 기준상 가장 중한 형량을 받게 된다.

한편 범행도구 등으로 혐의를 입증할 순 있어도 초동대처 부실로 강씨의 시신을 한 점도 찾지 못한 경찰은 그 책임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

앞서 제주 경찰은 초동수사가 부실했던 이유와 사건 현장인 펜션에 폴리스라인을 치지 않은 이유에 대해서도 다소 납득하기 어려운 해명을 했다.

제주 경찰은 "이혼한 부부가 어린 자녀와 있다가 자살 의심으로 신고된 사건에 대해 초기부터 강력사건으로 보고 수사를 하라는 비판은 결과론적 시각에서 바라보는 비판"이라며 여론의 보도 행태를 지적했다.

펜션에 폴리스라인을 치지 않는 등 현장 보존을 소홀히 했다는 비판에 대해서도 "폴리스라인 설치 시 불필요하게 인근 주민들에게 불안감을 조성한다"며 "주거의 평온을 해할 우려가 있었다"고 이유를 들었다.

사건 현장에 다시 가는 것만으로도 고유정의 심경변화를 이끌어 낼 수 있었던 현장검증을 '패스'한 이유에 대해서도 ‘고유정이 야만적인 현대판 조리돌림을 당할 수 있어서'라고 말했다.

이미나 한경닷컴 기자 helpe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