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과 맛있는 만남] 유은혜 부총리 겸 교육부장관, 국회에서나 학교에서나 늘 운동화 신는 '현장형' 장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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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별' 아닌 '성장' 돕는 교육으로
입시 중심 교육 시스템 바꿀 때
입시 중심 교육 시스템 바꿀 때
신발을 보면 그 사람을 알 수 있다. 유은혜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57)은 늘 검은색 운동화나 굽이 없는 단화를 신는다. 굽이 높고 뾰족한 구두를 신는 법이 없다. 국회에서도, 학교 현장에서도 그는 줄곧 눈여겨보지 않으면 기억에 남지 않는 검은색 운동화를 고집한다.
“제가 키가 커서요.” 구두를 신지 않는 이유를 묻자 유 부총리는 웃으며 이렇게 답했다. 유 부총리의 키는 173㎝. 큰 키는 분명하지만 그가 운동화를 즐겨 신는 이유는 따로 있다. 현장 때문이다. 유 부총리의 공식 일정을 보면 1주일에 평균 2~3회는 현장 방문 일정이 잡혀 있다. 어제는 대전, 오늘은 경기 파주. 동에 번쩍, 서에 번쩍이다.
인터뷰가 있던 날, 유 부총리는 약속 시간에 10분 정도 늦었다. “늦은 시간까지 어딜 그리 바삐 다녀오셨냐”는 질문에 그는 “욕심을 내 의정부에서 열린 학부모 설명회에 찾아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차가 막혀 늦었다”고 했다. 그러고는 음식이 나올 때까지 그날 현장에서 보고 느낀 점을 쏟아내듯 말했다.
외유내강의 전형
유 부총리를 서울 내자동 포도나무 한정식집에서 만났다. 시골 외갓집에 온 듯한 느낌이 물씬 풍기는 포도나무는 그의 오랜 단골집이다. 포도나무는 광주 서석동에서 27년 전 처음 문을 열었다. 당시 대문 앞에 큰 포도나무가 서 있어 가게 이름이 자연스레 포도나무가 됐다. 이름의 유래처럼 단순하면서도 순박한 남도음식 전문점이다.
유 부총리를 옆에서 오랜 시간 지켜본 정치부 기자들은 그의 성격을 네 글자로 표현한다. 외유내강(外柔內剛). 부드러운 겉모습과 달리 부총리 취임 후 300여 일간 보여준 그의 행보는 단단해도 너무 단단했다.
사립유치원이 집단 개학 연기 투쟁을 벌이던 지난 3월, 학부모들이 모인 온라인 맘카페에선 유 부총리를 두고 이런 여론이 형성됐다. “겉으로 여려 보여도 강성 운동권 출신이라 깡다구가 있을 거다”, “얕보고 덤볐다간 큰코다친다”. 학부모들의 눈은 정확했다. 그는 한국유치원총연합회의 ‘겁박’에도 흔들림이 없었다. “개학 연기는 학습권 침해이며, 교육자의 본분을 저버린 행동”이라며 강경 대응을 이어갔다. 결과는 한유총의 백기 투항.
유 부총리는 스스로를 “싸움을 좋아하거나 전투적으로 살아오진 않았다”며 “실제로는 굉장히 순한 편”이라고 했다. 하지만 그가 남긴 발자취는 반대말을 했다. 꿈 많던 여고생 시절, 사학 족벌체제를 개혁해야 한다며 등교 거부 투쟁을 한 그다. “3학년 언니가 주도하고 저는 그저 키가 커서 차출됐을 뿐”이라고 수줍게 답하면서도 “언니에게만 징계를 내리고 퇴학을 시키겠다고 해서 다같이 한 일을 왜 한 사람에게 뒤집어씌우냐며 항거했다”고 힘주어 말하는 모습은 그가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짐작하게 했다.
성균관대 81학번인 유 부총리는 대학 졸업 후 봉제공장에서 노동운동까지 이어갈 만큼 강성 운동권이었다. “무엇이 투쟁의 세계로 이끌었냐”는 질문에 그는 “성균관대가 원래 ‘단순 무식’하다”며 생긋 웃고 말았다. “그 시기에는 내가 해야 할 가장 우선적인 일이 무엇이냐고 했을 때 누구나 투쟁을 떠올렸어요. 직접 나서지 못하는 친구들도 뒤에서 물심양면으로 도왔죠. 제가 특별했다기보다는 시대가 그때의 저를 만든 셈이죠.” 부담이 컸던 ‘첫 여성 부총리’ 타이틀
노랗게 부친 낙지전은 탱글탱글한 식감이 그대로 살아있으면서도 짭조름한 맛이 일품이었다. 꼬막은 굳이 양념을 찍어 먹지 않아도 간이 배어 있어 입안에서 은은한 바다 내음이 풍겼다. 홍어삼합은 초심자가 먹기 좋은 정도의 삭힘이었다. 음식 맛을 느끼다보니 막걸리 생각이 절로 나던 차에 유 부총리가 모두 기다렸던 말을 먼저 꺼냈다. “여기 반찬이 다 안주라 막걸리라도 한잔 해야 하는데….”
유 부총리는 구깃구깃한 양은그릇에 막걸리를 가득 따르며 식당과의 인연에 대해 얘기를 이어갔다. 역시나 그의 ‘정치 은인’으로 불리는 고(故) 김근태 전 민주통합당 상임고문 얘기가 나왔다. “이 식당은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의 단골집이었어요. 동교동계 인사들의 아지트 같은 곳이죠. 저는 동교동계와는 큰 인연이 없지만 김 전 상임고문을 통해 직간접적으로 연결됐죠. 민주당 부대변인 시절에 출입기자들과 함께 많이 왔던 기억이 납니다.”
유 부총리는 문재인 대통령과도 특별한 인연이 있다. 그의 부친은 1992년 평생 다니던 은행을 퇴직한 뒤 부산의 한 중소기업에서 업무를 보다가 돌연 세상을 떠났다. 유 부총리는 “아버지가 1월에 돌아가셨는데 정신을 차려보니 어느새 6월이었다”며 “산업재해로 인정받아야 한다는 생각에 무작정 부산으로 내려갔다”고 말했다. 부산에서 찾아간 곳이 ‘노무현 문재인 법률사무소’였다. 문 대통령의 도움으로 그는 아버지의 산재를 인정받았다.
“문 대통령이 특히 아끼는 후배 정치인으로 꼽힌다”는 말에 유 부총리는 “나는 친문도 아니고 그저 작은 인연이 있을 뿐”이라며 손사래를 쳤다. 하지만 그는 문재인 대통령이 당 대표를 맡던 시절 당 대변인을 지냈고, 대선 캠프에서도 대변인을 맡았다. 문 대통령은 지난해 10월 2일 그에게 ‘첫 여성 부총리’ 타이틀을 ‘선물’하기도 했다. 10월 2일은 유 부총리의 생일이다. 그는 사회부총리로 선임되던 때를 이렇게 회상했다. “일할 수 있는 기회를 얻은 것은 영광이지만 부담감이 정말 컸어요. 잘해내지 못하면 여성 후배들의 길을 막게 될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여자가 부총리 역할을 할 수 있겠느냐는 세간의 편견도 깨고 싶었습니다.”
“결국 희망은 교육에 있다”
식사를 준비해달라고 하자 갓 지은 냄비밥이 통째로 나왔다. 고슬고슬한 밥에 반질반질 윤기가 흘렀다. 손으로 길게 찢은 김치를 밥 위에 얹어 먹으니 다른 반찬이 떠오르지 않았다. 유 부총리도 “이 집 생김치가 너무 맛있어서 올 때마다 과식하게 된다”고 했다.
유 부총리는 2013년 이후 국회 의정활동 기간 내내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현 교육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했다. 20대 국회 전반기에는 교문위 간사도 맡았다. 대학 시절에는 자진해서 교직과목을 이수해 교원자격증까지 취득했다. 유 부총리는 “학생운동을 하지 않았으면 선생님이 됐을 것”이라고 했다.
그런 그에게도 교육은 여전히 ‘미지의 영역’이다. 유 부총리는 “교육은 참 어렵고 피하고 싶은 분야였다”고 털어놓았다. 그럼에도 그를 교육부 장관 자리까지 이끈 것은 마음속 깊은 곳에 자리 잡은 교육에 대한 관심과 애정이었다. “교육을 통해 사람을 키우고, 사람을 통해 사회가 변하는 과정을 보며 결국 희망은 교육에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여전히 한국 교육은 좋은 대학을 가는 게 목표이고, 입시가 중심이에요. 하지만 이런 시스템을 정말 한번 바꿔보고 싶습니다. 언젠가는 바뀌어야 하고요. 아이들을 변별하고 선별하는 교육이 아니라 성장을 돕고, 성장 과정에서 보람을 느끼는 교육이 한국 교육이 나아가야 할 방향이라고 생각합니다.”
후식으로 나온 숭늉을 받아든 그에게 300여 일간 교육부를 이끌어온 본인한테 점수를 준다면 몇 점을 주고 싶은지 물었다. 그는 “점수는 내가 매길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국민의 마음속에 매겨지고 있을 것”이라고 했다. 유 부총리는 “사립유치원의 회계 투명성을 강화하고 국공립 유치원을 계획보다 앞당겨 확충한 것, 그리고 고교 무상교육의 첫발을 뗀 것은 유의미한 성과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 “유명무실하다고 평가받는 사회부총리 역할은 여전히 극복해야 할 과제”라고 덧붙였다. “차관보 신설한다고 욕도 많이 먹었거든요. 하지만 갈수록 중요해지는 사회부총리 역할을 강화하기 위해서 꼭 필요한 자리라고 생각합니다. 사회정책은 한 부처가 단독으로 추진할 수 없어요. 부처 간의 협력은 물론 기초단체장까지 함께 뜻을 모아야 합니다. 남은 시간은 이를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사회부총리는 비경제분야 컨트롤타워
교육부는 1948년 문교부로 시작해 1990년 교육부, 2001년 교육인적자원부, 2008년 교육과학기술부로 이름을 바꿨다. 2013년 정부조직개편으로 미래창조과학부가 떨어져 나가면서 지금의 교육부가 됐다. 정부조직법상 서열 2위인 부처다.
교육부 장관은 인적자원개발정책과 학교교육, 평생교육, 학술에 관한 사무를 관장한다. 2014년부터 사회부총리 역할을 겸하고 있다. 사회부총리는 교육·사회·문화 분야를 총괄하는 ‘비경제 분야 컨트롤타워’로 불린다.
조직 정원과 규모는 3실, 14국(관), 49과(담당관)로 운영된다. 최근에는 2008년 폐지한 차관보 직위를 11년 만에 부활시켰다.
■유은혜 부총리 겸 교육부장관 약력
△1962년 서울 출생
△1981년 송곡여고 졸업
△1985년 성균관대 동양철학과 졸업
△2012~16년 제19대 국회의원 (경기 고양시일산동구)
△2016년~ 제20대 국회의원 (경기 고양시병)
△2017년 문재인 대통령 후보 선거대책위원회 수석대변인
△2017년 제20대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 간사
△2018년~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 ■유은혜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의 단골집 포도나무
구수하고 걸쭉한 짱뚱어탕 유명
서울 종로구 내자동에 있는 남도 한정식 전문점이다. 경복궁역 7번 출구로 나오면 느린 걸음으로 걸어도 3분이면 도착한다. 실내외 인테리어를 한옥집처럼 꾸며 따뜻함이 느껴진다. 개별 방으로 돼 있어 조용히 이야기를 나누며 음식을 즐기기에 좋다.
짱뚱어탕이 대표 메뉴다. 구수하고 걸쭉한 맛이 일품이다. 자극적이지 않아 속이 편하고 소화가 잘된다. 짱뚱어는 벌교 갯벌에서 잡은 것이다.
밥맛이 좋기로도 유명하다. 전남 영암의 브랜드 쌀인 ‘달맞이 골드’로 밥을 짓는다. 농림축산식품부와 농협중앙회로부터 ‘쌀밥이 맛있는 집 1호점’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식사를 주문하면 갓 지은 냄비밥을 내놓는다. 고소하고 바삭한 누룽지는 덤이다.
생김치는 한 포기를 통째로 가져와 식탁에서 사장님이 직접 손으로 찢어 접시 위에 덜어준다. 흰 쌀밥과 궁합이 환상적이다. 대여섯 가지 밑반찬도 밥맛을 돋운다.
저녁 시간에는 홍어와 수육, 꼬막, 낙지전, 전복구이, 짱뚱어탕이 코스로 나오는 포도나무정식이 인기가 많다. 원재료 맛을 충분히 살려 접시마다 다른 맛을 즐기는 재미가 있다. 시원한 막걸리와 함께 먹으면 맛이 배가된다.
박종관/김동윤 기자 pjk@hankyung.com
“제가 키가 커서요.” 구두를 신지 않는 이유를 묻자 유 부총리는 웃으며 이렇게 답했다. 유 부총리의 키는 173㎝. 큰 키는 분명하지만 그가 운동화를 즐겨 신는 이유는 따로 있다. 현장 때문이다. 유 부총리의 공식 일정을 보면 1주일에 평균 2~3회는 현장 방문 일정이 잡혀 있다. 어제는 대전, 오늘은 경기 파주. 동에 번쩍, 서에 번쩍이다.
인터뷰가 있던 날, 유 부총리는 약속 시간에 10분 정도 늦었다. “늦은 시간까지 어딜 그리 바삐 다녀오셨냐”는 질문에 그는 “욕심을 내 의정부에서 열린 학부모 설명회에 찾아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차가 막혀 늦었다”고 했다. 그러고는 음식이 나올 때까지 그날 현장에서 보고 느낀 점을 쏟아내듯 말했다.
외유내강의 전형
유 부총리를 서울 내자동 포도나무 한정식집에서 만났다. 시골 외갓집에 온 듯한 느낌이 물씬 풍기는 포도나무는 그의 오랜 단골집이다. 포도나무는 광주 서석동에서 27년 전 처음 문을 열었다. 당시 대문 앞에 큰 포도나무가 서 있어 가게 이름이 자연스레 포도나무가 됐다. 이름의 유래처럼 단순하면서도 순박한 남도음식 전문점이다.
유 부총리를 옆에서 오랜 시간 지켜본 정치부 기자들은 그의 성격을 네 글자로 표현한다. 외유내강(外柔內剛). 부드러운 겉모습과 달리 부총리 취임 후 300여 일간 보여준 그의 행보는 단단해도 너무 단단했다.
사립유치원이 집단 개학 연기 투쟁을 벌이던 지난 3월, 학부모들이 모인 온라인 맘카페에선 유 부총리를 두고 이런 여론이 형성됐다. “겉으로 여려 보여도 강성 운동권 출신이라 깡다구가 있을 거다”, “얕보고 덤볐다간 큰코다친다”. 학부모들의 눈은 정확했다. 그는 한국유치원총연합회의 ‘겁박’에도 흔들림이 없었다. “개학 연기는 학습권 침해이며, 교육자의 본분을 저버린 행동”이라며 강경 대응을 이어갔다. 결과는 한유총의 백기 투항.
유 부총리는 스스로를 “싸움을 좋아하거나 전투적으로 살아오진 않았다”며 “실제로는 굉장히 순한 편”이라고 했다. 하지만 그가 남긴 발자취는 반대말을 했다. 꿈 많던 여고생 시절, 사학 족벌체제를 개혁해야 한다며 등교 거부 투쟁을 한 그다. “3학년 언니가 주도하고 저는 그저 키가 커서 차출됐을 뿐”이라고 수줍게 답하면서도 “언니에게만 징계를 내리고 퇴학을 시키겠다고 해서 다같이 한 일을 왜 한 사람에게 뒤집어씌우냐며 항거했다”고 힘주어 말하는 모습은 그가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짐작하게 했다.
성균관대 81학번인 유 부총리는 대학 졸업 후 봉제공장에서 노동운동까지 이어갈 만큼 강성 운동권이었다. “무엇이 투쟁의 세계로 이끌었냐”는 질문에 그는 “성균관대가 원래 ‘단순 무식’하다”며 생긋 웃고 말았다. “그 시기에는 내가 해야 할 가장 우선적인 일이 무엇이냐고 했을 때 누구나 투쟁을 떠올렸어요. 직접 나서지 못하는 친구들도 뒤에서 물심양면으로 도왔죠. 제가 특별했다기보다는 시대가 그때의 저를 만든 셈이죠.” 부담이 컸던 ‘첫 여성 부총리’ 타이틀
노랗게 부친 낙지전은 탱글탱글한 식감이 그대로 살아있으면서도 짭조름한 맛이 일품이었다. 꼬막은 굳이 양념을 찍어 먹지 않아도 간이 배어 있어 입안에서 은은한 바다 내음이 풍겼다. 홍어삼합은 초심자가 먹기 좋은 정도의 삭힘이었다. 음식 맛을 느끼다보니 막걸리 생각이 절로 나던 차에 유 부총리가 모두 기다렸던 말을 먼저 꺼냈다. “여기 반찬이 다 안주라 막걸리라도 한잔 해야 하는데….”
유 부총리는 구깃구깃한 양은그릇에 막걸리를 가득 따르며 식당과의 인연에 대해 얘기를 이어갔다. 역시나 그의 ‘정치 은인’으로 불리는 고(故) 김근태 전 민주통합당 상임고문 얘기가 나왔다. “이 식당은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의 단골집이었어요. 동교동계 인사들의 아지트 같은 곳이죠. 저는 동교동계와는 큰 인연이 없지만 김 전 상임고문을 통해 직간접적으로 연결됐죠. 민주당 부대변인 시절에 출입기자들과 함께 많이 왔던 기억이 납니다.”
유 부총리는 문재인 대통령과도 특별한 인연이 있다. 그의 부친은 1992년 평생 다니던 은행을 퇴직한 뒤 부산의 한 중소기업에서 업무를 보다가 돌연 세상을 떠났다. 유 부총리는 “아버지가 1월에 돌아가셨는데 정신을 차려보니 어느새 6월이었다”며 “산업재해로 인정받아야 한다는 생각에 무작정 부산으로 내려갔다”고 말했다. 부산에서 찾아간 곳이 ‘노무현 문재인 법률사무소’였다. 문 대통령의 도움으로 그는 아버지의 산재를 인정받았다.
“문 대통령이 특히 아끼는 후배 정치인으로 꼽힌다”는 말에 유 부총리는 “나는 친문도 아니고 그저 작은 인연이 있을 뿐”이라며 손사래를 쳤다. 하지만 그는 문재인 대통령이 당 대표를 맡던 시절 당 대변인을 지냈고, 대선 캠프에서도 대변인을 맡았다. 문 대통령은 지난해 10월 2일 그에게 ‘첫 여성 부총리’ 타이틀을 ‘선물’하기도 했다. 10월 2일은 유 부총리의 생일이다. 그는 사회부총리로 선임되던 때를 이렇게 회상했다. “일할 수 있는 기회를 얻은 것은 영광이지만 부담감이 정말 컸어요. 잘해내지 못하면 여성 후배들의 길을 막게 될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여자가 부총리 역할을 할 수 있겠느냐는 세간의 편견도 깨고 싶었습니다.”
“결국 희망은 교육에 있다”
식사를 준비해달라고 하자 갓 지은 냄비밥이 통째로 나왔다. 고슬고슬한 밥에 반질반질 윤기가 흘렀다. 손으로 길게 찢은 김치를 밥 위에 얹어 먹으니 다른 반찬이 떠오르지 않았다. 유 부총리도 “이 집 생김치가 너무 맛있어서 올 때마다 과식하게 된다”고 했다.
유 부총리는 2013년 이후 국회 의정활동 기간 내내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현 교육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했다. 20대 국회 전반기에는 교문위 간사도 맡았다. 대학 시절에는 자진해서 교직과목을 이수해 교원자격증까지 취득했다. 유 부총리는 “학생운동을 하지 않았으면 선생님이 됐을 것”이라고 했다.
그런 그에게도 교육은 여전히 ‘미지의 영역’이다. 유 부총리는 “교육은 참 어렵고 피하고 싶은 분야였다”고 털어놓았다. 그럼에도 그를 교육부 장관 자리까지 이끈 것은 마음속 깊은 곳에 자리 잡은 교육에 대한 관심과 애정이었다. “교육을 통해 사람을 키우고, 사람을 통해 사회가 변하는 과정을 보며 결국 희망은 교육에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여전히 한국 교육은 좋은 대학을 가는 게 목표이고, 입시가 중심이에요. 하지만 이런 시스템을 정말 한번 바꿔보고 싶습니다. 언젠가는 바뀌어야 하고요. 아이들을 변별하고 선별하는 교육이 아니라 성장을 돕고, 성장 과정에서 보람을 느끼는 교육이 한국 교육이 나아가야 할 방향이라고 생각합니다.”
후식으로 나온 숭늉을 받아든 그에게 300여 일간 교육부를 이끌어온 본인한테 점수를 준다면 몇 점을 주고 싶은지 물었다. 그는 “점수는 내가 매길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국민의 마음속에 매겨지고 있을 것”이라고 했다. 유 부총리는 “사립유치원의 회계 투명성을 강화하고 국공립 유치원을 계획보다 앞당겨 확충한 것, 그리고 고교 무상교육의 첫발을 뗀 것은 유의미한 성과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 “유명무실하다고 평가받는 사회부총리 역할은 여전히 극복해야 할 과제”라고 덧붙였다. “차관보 신설한다고 욕도 많이 먹었거든요. 하지만 갈수록 중요해지는 사회부총리 역할을 강화하기 위해서 꼭 필요한 자리라고 생각합니다. 사회정책은 한 부처가 단독으로 추진할 수 없어요. 부처 간의 협력은 물론 기초단체장까지 함께 뜻을 모아야 합니다. 남은 시간은 이를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사회부총리는 비경제분야 컨트롤타워
교육부는 1948년 문교부로 시작해 1990년 교육부, 2001년 교육인적자원부, 2008년 교육과학기술부로 이름을 바꿨다. 2013년 정부조직개편으로 미래창조과학부가 떨어져 나가면서 지금의 교육부가 됐다. 정부조직법상 서열 2위인 부처다.
교육부 장관은 인적자원개발정책과 학교교육, 평생교육, 학술에 관한 사무를 관장한다. 2014년부터 사회부총리 역할을 겸하고 있다. 사회부총리는 교육·사회·문화 분야를 총괄하는 ‘비경제 분야 컨트롤타워’로 불린다.
조직 정원과 규모는 3실, 14국(관), 49과(담당관)로 운영된다. 최근에는 2008년 폐지한 차관보 직위를 11년 만에 부활시켰다.
■유은혜 부총리 겸 교육부장관 약력
△1962년 서울 출생
△1981년 송곡여고 졸업
△1985년 성균관대 동양철학과 졸업
△2012~16년 제19대 국회의원 (경기 고양시일산동구)
△2016년~ 제20대 국회의원 (경기 고양시병)
△2017년 문재인 대통령 후보 선거대책위원회 수석대변인
△2017년 제20대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 간사
△2018년~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 ■유은혜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의 단골집 포도나무
구수하고 걸쭉한 짱뚱어탕 유명
서울 종로구 내자동에 있는 남도 한정식 전문점이다. 경복궁역 7번 출구로 나오면 느린 걸음으로 걸어도 3분이면 도착한다. 실내외 인테리어를 한옥집처럼 꾸며 따뜻함이 느껴진다. 개별 방으로 돼 있어 조용히 이야기를 나누며 음식을 즐기기에 좋다.
짱뚱어탕이 대표 메뉴다. 구수하고 걸쭉한 맛이 일품이다. 자극적이지 않아 속이 편하고 소화가 잘된다. 짱뚱어는 벌교 갯벌에서 잡은 것이다.
밥맛이 좋기로도 유명하다. 전남 영암의 브랜드 쌀인 ‘달맞이 골드’로 밥을 짓는다. 농림축산식품부와 농협중앙회로부터 ‘쌀밥이 맛있는 집 1호점’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식사를 주문하면 갓 지은 냄비밥을 내놓는다. 고소하고 바삭한 누룽지는 덤이다.
생김치는 한 포기를 통째로 가져와 식탁에서 사장님이 직접 손으로 찢어 접시 위에 덜어준다. 흰 쌀밥과 궁합이 환상적이다. 대여섯 가지 밑반찬도 밥맛을 돋운다.
저녁 시간에는 홍어와 수육, 꼬막, 낙지전, 전복구이, 짱뚱어탕이 코스로 나오는 포도나무정식이 인기가 많다. 원재료 맛을 충분히 살려 접시마다 다른 맛을 즐기는 재미가 있다. 시원한 막걸리와 함께 먹으면 맛이 배가된다.
박종관/김동윤 기자 pj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