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종각에서 종로3가역까지 이어지는 종로통. 수십 년간 ‘젊음의 상징’이었다. 종로서적, 빠이롯드, 금강제화 앞은 단골 약속 장소였다. 그곳에 삼삼오오 모인 젊은이들은 뒷골목 ‘젊음의거리’로 들어가 청춘의 긴 밤을 보냈다. 1980년대 골목에 있던 제임스딘, 반쥴 등은 요즘말로 ‘핫플(핫플레이스)’이었다. 종로2가 쪽으로 내려가면 옆구리에 토익책을 끼고 어학원을 나서는 대학생들이 넘쳐났다.
'젊음의 거리' 종로 상권이 저물어간다
과거의 영광은 옛말…텅텅 빈 종로대로

종로가 활력을 잃고 있다. 대로변 건물 곳곳에는 ‘임대’ 표시가 붙어 있다. 한 집 건너 한 집으로 느껴질 정도다. 몇 년째 공실로 있는 건물도 수두룩하다. 깊은 침체의 수렁으로 빠져들고 있다. 젊게 변신한 광화문, 옛것과 현대의 공존이라는 가치를 평가받은 익선동, 만선호프와 커피한약방이 있는 을지로에 젊은이들을 빼앗긴 결과다.

20일 오후 종각역에서 종로3가역까지 걸었다. ‘임대’ 딱지를 붙인 건물이 계속 눈에 들어왔다. 일부러 찾지 않아도 됐다. 1층 ‘목 좋은’ 곳에 난 공실만 해도 15개 정도 됐다. 대로변 양쪽에 있는 60여 개 건물 중 네 곳 가운데 한 곳꼴로 1층이 비었다는 얘기다. 몇몇 건물은 통째로 임대로 나와 있었다.

빈 점포 대부분은 1층 상가였다. 임차료가 비싸 과거에는 유명 브랜드와 대형 프랜차이즈가 있던 자리다. 아디다스, 나이키, 엔제리너스 등이 종로를 떠난 지 오래다. 보신각 옆 ‘빠이롯드’, 젊음의거리 입구의 ‘뱅뱅건물’ 등 종로의 랜드마크도 3년째 주인을 찾지 못하고 있다. 과거 임차료가 높아도 젊은이들에게 브랜드를 알리기 위해 기업들이 플래그십 스토어를 내고 버텼지만 이마저 사라졌다. 경기침체에 종로를 찾는 젊은 소비자들이 줄어든 탓이다.

유행은 뒷전…온라인에도 밀려

종로는 변화에 실패하며 젊은 소비자들을 주변 상권에 빼앗겼다. 한 부동산업자의 말이다. “최근 을지로 인쇄골목이 젊은이들 사이에서 ‘힙’한 곳으로 입소문이 나 종로 대신 을지로를 찾는 것 같습니다.” 을지로는 ‘뉴트로(new와 retro의 합성어) 열풍’에 올라탔다. 이 지역을 대표하는 만선호프는 ‘한국의 옥토버페스트’라는 별칭이 붙은 오래된 호프집이다. 밤마다 젊은이들은 만선호프가 있는 골목을 가득 채운다. 또 커피한약방 등 독특한 감성을 더한 가게들이 몇 년 전부터 하나둘 들어서면서 거리의 분위기를 바꿔놓았다.

광화문은 디타워 등이 들어선 뒤 변신에 성공했다. 젊은이들이 모이자 유명 브랜드들이 속속 점포를 내고 있다. 종로3가역에서 북쪽 골목에 자리잡고 있는 익선동은 차도 다닐 수 없는 골목길에 다양한 카페, 음식점, 액세서리 가게가 들어서며 젊은이들의 관광지가 됐다. 종로를 둘러싼 이 세 곳은 종로의 소비자들을 끌어들였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도 종로에는 악재였다. ‘인스타그래머블(instagrammable : 인스타그램에 올릴 만큼 매력이 있는)’ 요소를 갖춘 상권만이 2030세대를 사로잡을 수 있다. 하지만 종로는 사진을 찍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 하는 장소를 찾기 힘들다.

순수하게 상권이라는 단어로 보면 온라인 쇼핑의 영향도 받았다. 작년 주요 오프라인 유통업체는 마이너스 성장(-9.2%)을 한 데 비해 온라인 유통 매출은 21.6% 늘었다. 이호병 단국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온라인 소비활동이 늘어나며 종로 같은 서울 대표 상권이 위축됐다. 종로상권 침체의 원인은 온라인 유통 확대로 설명할 수 있다”고 진단했다.

인근 자영업자 어려움 호소

높은 임차료는 종로상권의 경쟁력을 떨어뜨린 주요인이다. 권강수 한국부동산창업정보원 이사는 “높은 임차료와 관리비로 프랜차이즈 매장이 하나둘씩 빠져나가면서 침체가 시작된 것”이라며 “빈 자리에 장기간 공실이 이어지며 침체는 더욱 깊어졌다”고 말했다.

한국감정원에 따르면 지난해 종로의 ㎡당 월평균 임대료는 3만1500원이었다. 서울 전체 평균(2만2400원)보다 9100원 비쌌다. 올 상반기에는 이 금액이 서울 전체 평균 수준까지 내려왔다. 하지만 이것도 높은 수준이다. 임차료를 내며 어렵게 장사를 하는 자영업자들이 감당하기 쉽지 않다.

젊음의거리에서 10년째 고깃집을 운영하는 김모씨(59)는 “2년 전과 비교해 한 달 매출이 40% 이상 떨어졌다”며 “임차료를 감당하기 쉽지 않다”고 말했다. 임차료가 떨어지는 속도보다 매출이 감소하는 속도가 더 빨라 종로를 뜨려는 상인이 많다고 김씨는 덧붙였다.

안효주 기자 j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