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사도 헷갈리는 '직장 내 괴롭힘'…진정 650건 넘었지만 처벌은 '깜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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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롭힘 방지法' 시행 두달…
'괴롭힘' 뚜렷한 기준 없어
갈등상황 다양하고 사실 불분명
'괴롭힘' 뚜렷한 기준 없어
갈등상황 다양하고 사실 불분명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근로기준법 개정안)이 시행된 지 두 달여가 흘렀다. 하지만 기업은 물론 근로자들의 혼란이 계속되고 있다. 기업은 ‘직장 내 괴롭힘’에 해당하는 행위의 범위를 두고 뚜렷한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 근로자들도 불만이 많다. 괴롭힘을 당했다고 느껴도 대응할 만한 시스템이 정착되지 않아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다. 관련 부처인 고용노동부에는 근로자들의 진정이 쏟아지지만 처벌로 이어진 사례는 아직까지 나오지 않았다. ‘직장 내 괴롭힘 1호 진정’으로 관심을 모은 MBC 아나운서들의 진정도 직장 내 괴롭힘으로 보기 어렵다며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괴롭힘’ 기준 모호해
27일 고용부에 따르면 근로기준법 개정안이 시행된 지난 7월 16일부터 9월 5일까지 52일간 직장 내 괴롭힘 진정 건수는 656건에 달했다. 시행 첫 30일간 379건, 그다음 22일간 277건을 기록했다.
현행 근로기준법에 따르면 ‘직장 내 괴롭힘’은 사용자 또는 근로자가 다른 근로자에게 △직장에서의 지위 또는 관계 등의 우위를 이용해 △업무상 적정범위를 넘어 △신체적·정신적 고통을 주거나 근무환경을 악화시키는 행위다. 업무상 적정범위, 정신적 고통 등의 범주가 어디까지 해당하는지를 놓고 괴롭힘 행위자와 피해자 간 이견이 생길 수밖에 없다는 게 노무사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최근 사내에서 ‘직장 내 괴롭힘 예방 초청 교육’을 연 코레일(한국철도공사) 관계자는 “직장 내 괴롭힘은 갈등 상황이 다양하고 사실관계가 불명확한 경우가 많다”며 “‘괴롭힘’을 판단하는 데 기업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말했다.
판단 기준이 뚜렷하지 않으니 괴롭힘 신고자와 행위자 간 갈등이 일어나기 일쑤다. 하수희 수컨설팅 대표는 “상사가 일을 가르치고자 선의로 과다한 업무를 주는 경우 부하직원은 ‘나를 괴롭힌다’고 여겨 괴롭힘의 범위를 놓고 시비가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일부 직장에선 직장 내 괴롭힘으로 지적받을까 두려워 상사가 부하직원에게 말을 걸지 않고, 부하직원도 상사를 ‘꼰대’로 여기며 소통 자체가 사라지는 일도 생겨나고 있다.
문강분 행복한일 노무법인 대표는 “성희롱은 성적 행위가 있었느냐를 놓고 보지만 직장 내 괴롭힘은 감정적인 문제라 그 판단이 쉽지 않다”며 “당사자 간 우위 관계, 업무상 결정범위, 고통 여부 등을 따져서 ‘직장 내 괴롭힘’ 여부를 판단해야 한다”고 말했다. 괴롭힘 신고자·행위자 간 의견이 충돌할 때는 관련 증거를 확보하기도 어려워 조사를 벌이는 기업으로서는 어려움이 크다는 게 문 대표의 이야기다.
“취업규칙 별 도움 안 돼”
관련 법령에도 허점이 많다. 대표이사에게 근로자가 괴롭힘을 당하는 경우 이를 제재하기가 쉽지 않다. 현행 근로기준법에선 회사 내에서 괴롭힘이 발생하면 회사가 마련한 취업규칙에 따라 ‘사내에서’ 적절한 조치를 취하도록 하고 있다. 그러나 최고 결정권자인 대표이사가 직원을 괴롭힌다면 가해자인 사용주가 스스로를 제재해야 하는 모순이 생긴다. 피해자는 고용노동청에 진정을 제기할 수 있지만 사용주가 조사 과정에서 출석에 응하지 않으면 이에 대해 법적 제재를 하기 사실상 어렵다.
취업규칙이 직장 내 괴롭힘을 막는 데 별다른 도움이 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 징계 등 처벌사항을 담거나 조사기구 구성을 강제하는 규정이 없어서다. 이용우 서울지방변호사회 인권이사는 “사용자에게 조치를 재량적으로 맡기다 보니 솜방망이 제재가 될 수 있다”며 “직장 내 성희롱에 대한 제재처럼 과태료 부과 등의 방안을 마련하는 것도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 적용을 두고 혼란이 계속되는 가운데 ‘1호 진정’으로 관심을 모은 MBC 아나운서 7명에 대해서는 고용부가 직장 내 괴롭힘으로 보기 어렵다고 결론을 내렸다. 이들 아나운서는 “사측이 업무 공간을 격리하고 사내 전산망을 차단했다”며 지난 7월 16일 고용부에 진정을 냈다. MBC는 자체 구성한 조사위원회의 권고에 따라 시정 조치를 했지만 이들에게 방송 업무를 주지는 않았다.
이에 대해 고용부는 “노사가 대화로 해결할 문제”라고 결론을 내렸다. 문 대표는 “‘괴롭힘’이 무엇인지를 직원마다 다르게 알고 있는 게 가장 위험하다”며 “괴롭힘의 범주에 대해 회사와 근로자들이 의견을 공유하며 합의하는 과정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주현 기자 deep@hankyung.com
‘괴롭힘’ 기준 모호해
27일 고용부에 따르면 근로기준법 개정안이 시행된 지난 7월 16일부터 9월 5일까지 52일간 직장 내 괴롭힘 진정 건수는 656건에 달했다. 시행 첫 30일간 379건, 그다음 22일간 277건을 기록했다.
현행 근로기준법에 따르면 ‘직장 내 괴롭힘’은 사용자 또는 근로자가 다른 근로자에게 △직장에서의 지위 또는 관계 등의 우위를 이용해 △업무상 적정범위를 넘어 △신체적·정신적 고통을 주거나 근무환경을 악화시키는 행위다. 업무상 적정범위, 정신적 고통 등의 범주가 어디까지 해당하는지를 놓고 괴롭힘 행위자와 피해자 간 이견이 생길 수밖에 없다는 게 노무사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최근 사내에서 ‘직장 내 괴롭힘 예방 초청 교육’을 연 코레일(한국철도공사) 관계자는 “직장 내 괴롭힘은 갈등 상황이 다양하고 사실관계가 불명확한 경우가 많다”며 “‘괴롭힘’을 판단하는 데 기업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말했다.
판단 기준이 뚜렷하지 않으니 괴롭힘 신고자와 행위자 간 갈등이 일어나기 일쑤다. 하수희 수컨설팅 대표는 “상사가 일을 가르치고자 선의로 과다한 업무를 주는 경우 부하직원은 ‘나를 괴롭힌다’고 여겨 괴롭힘의 범위를 놓고 시비가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일부 직장에선 직장 내 괴롭힘으로 지적받을까 두려워 상사가 부하직원에게 말을 걸지 않고, 부하직원도 상사를 ‘꼰대’로 여기며 소통 자체가 사라지는 일도 생겨나고 있다.
문강분 행복한일 노무법인 대표는 “성희롱은 성적 행위가 있었느냐를 놓고 보지만 직장 내 괴롭힘은 감정적인 문제라 그 판단이 쉽지 않다”며 “당사자 간 우위 관계, 업무상 결정범위, 고통 여부 등을 따져서 ‘직장 내 괴롭힘’ 여부를 판단해야 한다”고 말했다. 괴롭힘 신고자·행위자 간 의견이 충돌할 때는 관련 증거를 확보하기도 어려워 조사를 벌이는 기업으로서는 어려움이 크다는 게 문 대표의 이야기다.
“취업규칙 별 도움 안 돼”
관련 법령에도 허점이 많다. 대표이사에게 근로자가 괴롭힘을 당하는 경우 이를 제재하기가 쉽지 않다. 현행 근로기준법에선 회사 내에서 괴롭힘이 발생하면 회사가 마련한 취업규칙에 따라 ‘사내에서’ 적절한 조치를 취하도록 하고 있다. 그러나 최고 결정권자인 대표이사가 직원을 괴롭힌다면 가해자인 사용주가 스스로를 제재해야 하는 모순이 생긴다. 피해자는 고용노동청에 진정을 제기할 수 있지만 사용주가 조사 과정에서 출석에 응하지 않으면 이에 대해 법적 제재를 하기 사실상 어렵다.
취업규칙이 직장 내 괴롭힘을 막는 데 별다른 도움이 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 징계 등 처벌사항을 담거나 조사기구 구성을 강제하는 규정이 없어서다. 이용우 서울지방변호사회 인권이사는 “사용자에게 조치를 재량적으로 맡기다 보니 솜방망이 제재가 될 수 있다”며 “직장 내 성희롱에 대한 제재처럼 과태료 부과 등의 방안을 마련하는 것도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 적용을 두고 혼란이 계속되는 가운데 ‘1호 진정’으로 관심을 모은 MBC 아나운서 7명에 대해서는 고용부가 직장 내 괴롭힘으로 보기 어렵다고 결론을 내렸다. 이들 아나운서는 “사측이 업무 공간을 격리하고 사내 전산망을 차단했다”며 지난 7월 16일 고용부에 진정을 냈다. MBC는 자체 구성한 조사위원회의 권고에 따라 시정 조치를 했지만 이들에게 방송 업무를 주지는 않았다.
이에 대해 고용부는 “노사가 대화로 해결할 문제”라고 결론을 내렸다. 문 대표는 “‘괴롭힘’이 무엇인지를 직원마다 다르게 알고 있는 게 가장 위험하다”며 “괴롭힘의 범주에 대해 회사와 근로자들이 의견을 공유하며 합의하는 과정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주현 기자 dee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