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당서 딸 붙잡은 남성 죽도로 때려
서울남부지법 형사합의12부(부장판사 오상용)은 특수상해 및 특수폭행치상 혐의로 기소된 김모(48)씨에게 최근 무죄를 선고했다. 김씨는 작년 9월24일 오후 8시45분께 자신의 집 세입자인 이모씨(38)와 이씨의 모친 송모(64)씨를 1.5m 길이 죽도로 때려 각각 전치 6주와 3주 치료가 필요한 상해를 입힌 혐의를 받았다.
당시 술을 마신 상태였던 이씨는 어머니와 외출하려던 중 마당에서 빨래를 걷던 김씨의 딸(20)을 발견했다. 이씨가 “야”라고 불렀으나 딸은 대답하지 않았다. 이씨는 “어른을 보면 인사를 왜 안 하냐”며 욕설을 했고, 놀란 딸이 울며 아버지를 부르고 집으로 들어가려 하자 팔을 잡았다. 집에서 잠을 자고 있던 이씨는 밖을 보고 뛰쳐나가려 했다. 그러나 이씨 모친 송씨가 현관문을 막고 “아들이 공황장애가 있다, 술을 먹고 실수한 거다”라고 말했다. 김씨는 죽도를 들고 나와 이씨의 머리를 한 번 가격했고, 더 때리려 하다 이를 막던 송씨의 팔을 수 차례 때렸다. 그 과정에서 넘어진 이씨는 갈비뼈가 부러졌다.
국민참여재판으로 열린 1심에서 배심원단 7명은 김씨가 이씨를 폭행한 건과 송씨를 폭행한 건 모두에 대해 ‘만장일치’로 김씨 행동이 과잉방위가 아니라고 평결했다. 정당방위를 다룬 형법 제21조 3항의 ‘면책적 과잉방위’에 해당한다고 본 것이다. ‘야간 등 불안스러운 상태에서 공포, 경악, 흥분, 당황으로 인한 행위’일 때에는 정당방위로 인정한다는 조항이다.
재판부 역시 “피해자들의 행동은 피고인 딸에 대한 위협적 행동이었다”며 “평소 지병으로 몸이 좋지 않은 피고인은 자신보다 강해 보이는 피해자가 술에 취했고, 정신질환이 있다는 말도 들었기 때문에 딸을 보호하려 죽도를 들고 방위행위를 한 것으로 보인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만장일치’ 배심원 의견 존중”
법조계에서는 김씨가 정당방위로 인정받은 것이 이례적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형법 제21조는 정당방위에 대해 ‘자신 또는 타인의 법익에 대한 현재의 부당한 침해를 방위하기 위한 행위는 상당한 이유가 있는 때 벌하지 아니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실제 재판에서 ‘상당한 이유’가 있었다는 것을 인정받기란 쉽지 않다. 한 법조계 관계자는 “정당방위는 보통 상대방의 행위보다 같거나 적은 수준이어야 인정된다”며 “상대방이 흉기를 먼저 들었다면 이를 뺏는 행위 정도가 정당방위로 인정됐다”고 말했다.
2014년 집에 침입한 도둑을 집주인이 빨래 건조대 등으로 폭행해 뇌사 상태에 이르게 한 ‘도둑 뇌사 사건’에서도 1심, 2심 법원과 대법원은 모두 이를 정당방위로 인정하지 않았다. 이충윤 대한변호사협회 대변인(법무법인 해율)은 “이 사건은 피고인이 ‘위험한 물건’에 해당하는 죽도를 들고 상대방을 먼저 폭행했는데도 재판부가 정당방위를 적극적으로 해석했다”며 “그간 법원이 정당방위를 엄격하게 적용해왔던 만큼 이례적인 판결”이라고 말했다.
이 사건에서 김씨가 죽도를 든 점, 사건이 저녁 늦게 발생한 점 등이 고려됐다. 한 법조계 관계자는 “죽도가 아니라 칼이나 벽돌이었으면 흉기로 취급돼 정당방위가 나오지 못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재판부도 “죽도를 사용하긴 했지만 완충작용을 할 수 있도록 제작돼 있는 점, 피해자가 별다른 상해를 입지 않은 점 등에 비추어 보면 피고인의 행위가 사회 통념상 상당성의 범위를 초과했다고 단정하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또한 “설령 정당방위를 넘었다고 해도 야간에 딸이 건장한 성인 남성 등 사람들에게 위협을 받는 불안한 상태에서 공포 등으로 말미암아 저질러진 것으로 형법 21조 3항의 벌하지 않는 행위에 해당된다”고 덧붙였다.
특히 1심이 국민참여재판으로 열린 것도 판결에 영향을 미쳤다는 평가가 나온다. 재판부는 판결문을 통해 “7명의 배심원들은 오랜 시간 논의를 거쳐 피고인이 무죄라고 평결했다”며 “국민참여재판 제도의 입법 취지 등에 비추어 이러한 배심원들의 만장일치 의견은 최대한 존중하는 것이 옳다”고 설명했다. 김영미 법무법인 숭인 변호사(한국여성변호사회 공보이사)는 “이 사건처럼 유무죄를 다퉈볼 만한 사건, 국민의 법감정이 고려되는 사건에서는 국민참여재판이 효력을 발휘해 재판부도 배심원단 의견을 존중하는 편”이라고 말했다.
노유정 기자 yjro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