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기문 前 유엔 사무총장 "4차 산업혁명시대 지구적 'AI 격차' 문제 풀 글로벌 인재 키워야"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은 한국을 대표하는 국제사회 리더다. 아시아인 최초로 수장에 올라 10년간 이끈 유엔을 떠난 지 3년이 다 돼가지만 그의 무대는 여전히 글로벌이다. 반 전 총장은 지난해 24개국을 누볐다. 그가 맡고 있는 직책은 20개가 넘는다.

각종 갈등과 난제를 매끄럽게 조정해 ‘기름장어’라는 별명이 붙었지만 반 전 총장은 현안에 관해선 반발과 충돌을 피하지 않았다. 유엔 사무총장 재임 시절 강대국 간 이해관계가 엇갈린 2015년 파리기후협정 체결과 유엔 2030 지속가능개발목표(SDGs)의 산파 역할을 했고, 유엔 개혁에 앞장서온 것이 대표적이다. 중간 관리자급 이상 고위직에 여성 채용과 승진을 늘리는 것을 골자로 한 유엔 개혁작업은 반 전 총장의 뚝심이 없었다면 노조의 강경한 반발에 성공하지 못했을 것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오는 11월 6~7일 서울 광장동 그랜드워커힐호텔에서 열리는 ‘글로벌 인재포럼 2019’에서 특별강연을 맡은 반 전 총장은 한국경제신문과의 서면인터뷰에서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발생할 전 지구적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글로벌 인재 양성에 정부와 기업이 앞장서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2030년 펼쳐질 세상’을 연설 주제로 잡은 이유가 있는지요.

“인공지능(AI)으로 대표되는 4차 산업혁명의 물결은 10년 뒤 한국 사회를 크게 변모시킬 겁니다. 긍정적인 면도 있겠지만, 기존 일자리를 파괴하고 사회적 불평등을 심화하는 등의 문제도 피하기 어렵다고 봅니다. 이미 4차 산업혁명 시대의 불평등을 가리켜 ‘인공지능 격차(AI divide)’라는 말이 등장했죠. 10년 뒤 미래의 중장기적 비전을 제시하고 이에 따른 정책을 입안해야 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4차 산업혁명 시대 인재상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4차 산업혁명 시대에는 경제적 사회적 발전은 물론 불평등까지도 지구적 차원에서 이뤄질 겁니다. 앞으로 인재는 지구적 차원의 문제를 해결하는 역량을 갖춰야 한다고 봅니다. 이를 위해 빠른 변화에 대응할 수 있는 창조성은 물론 협동 능력을 키우는 교육제도가 필요해요. 혼자 문제를 푸는 시대는 지나갔기 때문이죠. 사물인터넷(IoT) 기술로 만물이 연결되는 초연결시대에는 소통과 공감에 기초한 협동이 필수적입니다.”

▷글로벌 인재가 되기 위한 구체적인 실천 목표는 무엇인가요.

“세계시민정신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세계 발전을 위해 어떤 일을 할 수 있는지를 생각해볼 필요가 있어요. 개인적 차원에선 외국의 문화 역사 등에 관심을 두는 열린 정신을 지니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를 위한 도구로 외국어 능력은 기본이 돼야 합니다. 자신의 전문분야를 갖춘 다음 영어, 중국어, 스페인어 등 외국어 능력까지 겸비한다면 금상첨화입니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 걸맞은 전문분야를 만들려면 정부와 기업도 적극적으로 나서야 합니다. 정부와 기업이 미래를 보고 과학기술 발전에 투자를 늘려야 한다고 봅니다.”

▷파리기후협정이 체결된 지 4년이 지났습니다.

“1992년 교토의정서는 중국 인도 등 온실가스 최대 배출국의 의무가 없었지만 파리협정에선 이 부분이 개선됐습니다. 세계 국가들이 다자간 협상을 통해 한 걸음 나아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사례죠. 하지만 최근 다자주의 규범이 흔들리고 있습니다. 중국과 미국의 대결,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를 비롯한 유럽의 분화 등 대단히 우려스러운 시기입니다. 특히 세계 강국인 미국이 앞장서 파리협정, 유엔인권이사회, 유네스코에서 탈퇴할 뜻을 나타낸 것은 세계의 앞날을 어둡게 하고 있습니다. 20세기 다자주의 규범이 깨질 때 두 차례 큰 전쟁을 경험했다는 교훈을 되새겨야 한다고 생각해요.”

▷SDGs에 대한 평가도 부탁드립니다.

“채택 4년이 지난 현재 세계적으로 보면 SDGs의 이행 속도와 결과는 만족스럽지 못합니다. 인류 보편적 문제를 해결하기로 유엔 전 회원국이 만장일치로 채택한 만큼 정부와 기업, 사회단체들이 협력해 이행 속도에 더욱 박차를 가해야 합니다. 다양한 종류의 노력이 필요하겠지만 역시 가장 기본이 되는 것은 재원입니다. 선진국들이 약속한 분담금을 성실히 내고 여유가 있다면 더 내놔야겠죠.”

▷한국의 역할은 없나요.

“한국도 더 큰 노력을 해야 합니다. 193개 유엔 회원국 중 한국의 위치는 국민총소득(GNI) 규모 또는 유엔 분담금 비율 기준으로 상위 12위 또는 13위에 해당합니다. 하지만 국제사회에 대한 실질적 기여는 이런 외형적 위치가 요구하는 것보다 훨씬 낮습니다. 실제로 많은 변화가 있어야 할 아프리카, 남미 등에서 관심이 줄고 있다는 점도 걱정입니다. 독일 베텔스만재단이 올해 발표한 SDGs 이행 점검표에 의하면 세계 20대 우수 이행국가 중 16개국이 모두 유럽 국가고 비유럽권에서는 뉴질랜드, 일본, 캐나다, 한국 등이 포함됐습니다. 반면 아프리카 등 개발도상국은 모두 하위권에 머물고 있는데 이에 깊이 우려하고 있습니다.”

▷여성의 고위직 진출에 각별한 관심을 둔 이유가 있습니까.

“인사(人事)는 만사(萬事)라는 말이 있습니다. 아무리 좋은 정책과 제도가 있어도 이를 운용하는 사람들의 능력, 태도에 따라 결과가 달라집니다. 따라서 인사의 대원칙인 인격과 능력에 따라 적재적소에 배치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유엔 사무총장 때 가장 기억에 남는 인사는 여성 최초 유엔군사령관을 임명했던 일이에요. 유엔 간부 모두가 들고일어나 여성은 군대를 지휘할 수 없다고 반대해 애를 먹었지만 밀어붙였습니다. 이 사건은 유엔 내에서 여성의 고위직 진출을 가로막는 ‘유리천장’을 깨는 계기가 됐어요. 지금은 상당히 많은 여성이 군사령관과 지역 기관장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한국도 여성의 고위직 진출 확대가 주요 관심사인 것 같은데요.

“한국은 양성평등이 규범적으로는 있지만 현실은 따로 돌아가고 있습니다. 30대 기업 임원 가운데 여성 비율은 3%에 불과하죠. 미 경제매체 포천은 기업 이사진에 여성이 많을수록 기업의 수익성이 높아진다는 보고를 낸 적이 있습니다. 국내 대표적 문제인 여성의 경력단절을 해결하기 위해 유연근로제의 활성화 등을 고민해야 할 때입니다.”

■ 반기문 前 유엔 사무총장 약력

△1944년 충북 음성 출생
△1970년 서울대 외교학과 졸업
△1970년 외무고시 3회 차석 합격
△1985년 하버드대 케네디행정대학원 행정학석사
△1996년 청와대 외교안보수석
△2004~2006년 외교통상부 장관
△2007~2016년 제8대 유엔 사무총장
△2019년~ 국가기후환경회의 위원장


김순신 기자 soonsin2@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