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9년 3418명에 불과하던 국내 대학의 외국인 유학생 수가 올해 16만165명으로 20년 만에 40배 넘게 증가했다. 지난 18일 외국인 유학생들이 연세대 신촌캠퍼스 백양로를 지나고 있다.  /김영우  기자  youngwoo@hankyung.com
1999년 3418명에 불과하던 국내 대학의 외국인 유학생 수가 올해 16만165명으로 20년 만에 40배 넘게 증가했다. 지난 18일 외국인 유학생들이 연세대 신촌캠퍼스 백양로를 지나고 있다. /김영우 기자 youngwoo@hankyung.com
서울의 한 사립대 국제교류처장 A씨는 한 해의 절반 이상을 해외에서 보낸다. 남들은 부럽다지만 정작 A씨는 죽을 맛이다. 외국인 유학생 유치가 그의 임무인데 갈수록 학교에서 정한 목표치를 채우기가 쉽지 않아서다. A씨는 “외국인 유학생은 재정난에 시달리는 한국 대학들의 마지막 동아줄이 됐다”며 “외국인 유학생이 없었다면 지방 사립대는 절반 이상이 문을 닫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국내로 유입되는 외국인 유학생이 가파르게 늘고 있다. 등록금 동결과 입학금 폐지, 강사법(고등교육법 개정안) 시행 등 대학의 재정 상황을 악화시키는 정책이 잇따르자 대학들이 앞다퉈 ‘돈이 되는’ 외국인 유학생 유치에 뛰어들고 있기 때문이다.

20일 교육부에 따르면 국내 외국인 유학생은 지난 4월 기준 16만165명으로 전년 대비 12.6%(1만7960명) 증가했다. 5년 전인 2014년(8만4891명)과 비교하면 두 배 가까이 많다. 이동은 국민대 국제교류처장은 “외국인 유학생은 재정적인 측면에서 각 대학에 큰 기여를 한다”며 “어학연수생까지 포함하면 전체 등록금 수입의 20%가량을 유학생에 의존하는 대학도 있다”고 말했다.

대학들의 유치 경쟁은 치열하지만, 외국인 유학생 입학 관문은 허술하기 짝이 없다. 교육부가 제시한 외국인 유학생 입학 기준은 한국어능력시험(TOPIK) 3급과 토플 530점이다. 이마저도 권장일 뿐 지켜야 할 의무는 없다. 서울의 한 사립대 경제학과 교수는 “상당수 대학은 재정적인 이유로 유학생을 무분별하게 유치해 제대로 관리도 못 하고 있다”며 “유학생들이 한국어가 서툴러 수업 진행이 어려운 경우가 적지 않다”고 말했다.

돈만 내면 입학, 말 안통하는 수업…'유학생 장사'로 멍드는 캠퍼스

서강대에서 경제학원론 수업을 맡고 있는 김모 교수는 요즘 고민이 많다. 강의실 절반가량을 메우고 있는 외국인 유학생들이 한국어가 서툴러 수업을 따라오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어 교재 대신 번역된 모국어 개론서를 책상 위에 펴놓고 있는 유학생들을 보면 한숨이 절로 나온다. 당장 중간고사를 어떻게 출제해야 할지도 걱정이다. 김 교수는 “우리뿐만 아니라 상당수 대학이 외국인 유학생들로 인해 정상적인 수업이 불가능한 상황”이라며 “최근엔 수가 많은 중국인 유학생이 아예 중국어로 강의해달라고 학교 측에 요구하기도 했다”고 털어놨다.
20년 만에 40배 늘어난 외국인 유학생

서울지역 대학의 경우 내국인 정원은 수도권 규제 때문에 확대가 사실상 불가능하다. 외국인 유학생은 다르다. 학위과정은 전체 정원의 10%까지, 비학위과정은 30%까지 뽑을 수 있다. 대학원은 교육국제화역량 인증을 받으면 제한 없이 뽑을 수 있다. 대학들이 앞다퉈 외국인 유학생 유치에 나선 이유다.

외국인 유학생이 본격적으로 늘어나기 시작한 것은 학령인구 감소세가 두드러지기 시작한 2000년대 초반부터다. 2009년 반값 등록금 정책이 시행되면서 외국인 유학생 증가에 더욱 가속도가 붙었다. 1999년 3418명에 불과하던 국내 대학의 외국인 유학생은 올해 16만165명으로 늘어났다. 20년 만에 40배 넘게 증가했다.

주요 대학의 외국인 유학생 비율도 갈수록 높아졌다. 서강대는 비학위과정으로 재학 중인 유학생을 포함한 외국인 유학생 비율이 23.9%에 달했다. 캠퍼스를 누비는 학생 네 명 중 한 명은 외국인이라는 얘기다. 서울 주요 10개 대학 중 서울대를 제외한 9개 대학이 모두 외국인 유학생 비율 10%를 넘어섰다.

외국인 유학생이 늘어나는 현상 자체는 한국의 대학 경쟁력이 높아진 결과로 긍정적인 변화라는 게 교육계의 시각이다. 문제는 재정난에 시달리는 대학들이 ‘돈벌이’ 수단으로 무분별하게 외국인 유학생을 받아들이면서 벌어졌다. 유학생 관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같이 수업을 듣는 한국 학생들이 피해를 보거나, 전체적인 수업의 질이 떨어진 것이다.

대학 수업 중 이뤄지는 조별 과제에서 외국인 유학생은 ‘기피 대상 1호’로 꼽힌다. 성균관대 글로벌경영학과 4학년 최지영 씨(22)는 “조별 과제를 하기 위해 모일 때마다 한국어가 서툴러 의사결정 과정에 빠지거나 과제를 대충해오는 외국인 유학생이 있어 과제를 이끌어가기가 힘들다”고 말했다. 이화여대 경제대학원 석사과정에 재학 중인 조영수 씨(29)는 “외국인 대학원생들의 전반적인 학업 이해 수준이 한국 학생보다 낮은 것은 사실”이라며 “같이 공부하다 보면 일방적으로 가르쳐준다는 느낌을 받게 된다”고 털어놨다.

외국인 유학생도 학교 측의 배려가 부족해 어려움이 적지 않다. 투르크메니스탄에서 연세대로 유학을 온 마야 씨(22)는 “한국의 수강신청 시스템은 너무 복잡하다”며 “외국인 유학생 수에 비해 영어전용강의가 적고, 교수들의 영어 구사 능력이 떨어져 수업을 이해하기 어려울 때도 있다”고 말했다. 서울대 언어학과 석사과정에 재학 중인 캐나다 출신 아브넬 에르난데스 씨(26)는 “부산외국어대 어학당에서 1년간 한국어 수업을 받고 석사과정을 시작했지만 수업을 절반 정도도 이해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전체 유학생 중 90%가 아시아계

외국인 유학생의 국적이 지나치게 편중된 점도 문제라는 지적이 나온다. 전체 외국인 유학생 가운데 중국인 유학생 비중은 44.4%(7만1067명)나 된다. 베트남인 유학생은 3만7426명으로 23.4%를 차지하고 있다. 아시아인이 외국인 유학생 중 90%를 넘는다.

전문가들은 대학들이 외국인 유학생을 유치하려면 제대로 된 교육서비스 체계를 갖춰야 한다고 조언한다. 한국에서 공부하려는 외국인 유학생 수요가 확인된 만큼 교육 프로그램을 정비하면 학령인구 감소 등으로 어려움을 겪는 대학들에 새로운 기회가 될 수 있다는 얘기다.

송기창 숙명여대 교육학과 교수는 “미국 등 선진국의 주요 대학 외국인 유학생 비율은 한국보다 훨씬 높다”며 “학교 차원에서 외국인 유학생 관리 시스템을 구축해 질 높은 교육 서비스를 제공한다면 외국인 유학생이 대학 발전에 기여하는 ‘윈윈 모델’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박종관/정의진 기자 pj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