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규직 됐으니 월급 올려라"…공기업 골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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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중고에 골병드는 공기업
(상) 정규직 전환 비용 '눈덩이'
정규직化 '과속' 후폭풍
(상) 정규직 전환 비용 '눈덩이'
정규직化 '과속' 후폭풍
비정규직에서 정규직으로 전환된 근로자들의 총파업 선언으로 ‘항공대란’ 가능성이 고조되던 한국공항공사가 지난 15일 극적으로 임금협상을 타결했다. 명절휴가비 두 배 인상, 복지포인트 50만원 지급, 임금 4.5% 인상 등 노동조합 요구를 회사가 대폭 수용한 결과다. 임금 인상률은 정부가 제시한 공공기관 가이드라인(1.8%)의 2.5배다.
정부의 공공부문 정규직 전환 정책에 따라 지난 1~2년간 정규직으로 바뀐 공기업 근로자들이 임금·단체협약 시즌이 돌아오자 잇달아 임금 인상, 본사 직고용 등을 추가 요구하고 있다. 이번엔 ‘정규직에 맞는 대우를 해달라’고 압박하면서 공공부문 추투(秋鬪)로 번지는 양상이다.
한국공항공사 비정규직 근로자들은 지난해 자회사 정규직으로 전환되자 올해 1월 노조를 결성했다. 새로 만든 노조의 운영 기간이 짧아 쟁의권을 인정받지 못하자 기존에 있던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소속 노조에 이중 가입하는 변칙을 동원하기도 했다.
전국철도노동조합은 정규직으로 전환된 근로자들의 처우 개선을 요구하며 오는 20일 무기한 파업에 들어갈 계획이다. 한국정보화진흥원 노조도 “이번에 전환된 정규직 임금을 더 큰 폭으로 올려줘야 한다”며 파업을 예고했다. 한국무역보험공사는 정규직으로 전환된 청소원들을 중심으로 큰 폭의 임금 인상 요구가 나오고 있다.
조준모 성균관대 경제학과 교수는 “애초 정규직 전환의 취지는 비정규직의 고용 안정성을 높이는 대신 호봉제 위주의 기존 정규직을 직무급 중심으로 바꿔 상생하자는 것”이라며 “정규직 전환자들의 처우만 기존 정규직 수준으로 높이는 식으로 진행되면 공공부문의 고비용 구조가 고착화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정부·노조 등쌀에
道公 '정규직 전환' 목표보다 6배 더 늘렸다
A공공기관은 지난 6월 발표된 ‘공공기관 경영평가’에서 C등급을 받았다. 경영성과 지표가 모두 우수했던 터라 저조한 성적을 놓고 안팎에서 의견이 분분했다. 구체적인 항목을 들여다보니 답이 나왔다.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실적이 다른 기관에 비해 낮다는 것이 이유였다. 전체 비정규직의 5%만 정규직으로 전환해 63%에 이르는 공공기관 평균 전환율을 크게 밑돈 것이다. 해당 공공기관 이사장은 “청와대 지시대로 비정규직을 모두 정규직으로 전환하면 예산이 거덜나 신규 사업을 못하게 된다”며 “낮은 평가등급과 비판을 받더라도 공공기관으로서 국민을 위해 일하는 것이 우선이라는 게 소신”이라고 말했다. “손실이 얼마든 정규직으로 바꿔라”
17일 고용노동부의 ‘공공부문 정규직 전환 추진실적’에 따르면 지금까지 334개 공공기관에서 15만1489명의 비정규직 중 9만5760명에 대한 정규직 전환이 결정됐다. 이 중 75%에 해당하는 7만1549명은 6월까지 이미 전환을 완료했다.
문제는 각 공공기관이 경영여건 및 목표를 고려하지 않고 급하게 정규직 전환에 매달리고 있다는 점이다. 국회 예산정책처가 3월 발간한 ‘2019 대한민국 재정’에 따르면 2013년부터 5년 연속 순손실을 내고 있는 공공기관은 23곳으로 누적 손실액은 9조5922억원에 달한다. 이들 공기업과 공단에서만 5032명의 정규직 전환이 결정됐다. 8조6797억원의 누적 손실을 낸 한국석유공사가 462명, 1401억원의 누적 손실을 본 근로복지공단은 1916명을 정규직으로 전환한다. 근로복지공단 관계자는 “892명의 파견·용역직이 정규직이 되면서 처우 개선에 따른 비용 증가는 불가피하다”며 “손실이 지속되고 있지만 정부 방침에 따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정부가 적극적으로 정규직 전환을 독려하자 99개 공공기관에서는 정규직 전환 결정 인원이 당초 계획 인원을 초과하는 일도 벌어졌다. 한국전력은 당초 계획 인원인 5107명보다 60% 많은 8180명을, 한국도로공사는 계획(1316명)보다 여섯 배 많은 7787명을 정규직으로 전환했다. 한국마사회 등 관련 공기업들은 “실제 전환 작업 과정에서 정규직 전환 기준을 대폭 완화해 목표를 초과 달성했다”고 설명했다. 특히 국토교통부 산하 기관 23곳 중에는 16곳이 목표 인원을 초과했다. 부처가 개별 공공기관의 여건을 무시한 채 일방적으로 압박한 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정규직에 맞게 임금 올려달라”
정부가 나서 실적을 부풀리기한 사례도 있다. 인천국제공항공사는 원래 전체 비정규직이 8260명이라고 보고했지만 정규직 전환 결정 인원은 이보다 1536명 많은 9796명이었다. 웬만한 중견기업 근로자만큼의 인원이 새로 추가된 것이다. 공사 관계자는 “제2여객터미널 준공으로 채용된 이들을 추가했다”며 “엄밀히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한 것은 아니지만 고용부에서 정규직 전환 실적으로 잡으라고 했다”고 설명했다.
정부 주도의 정규직 전환이 ‘속도전’으로 진행되다 보니 채용 과정의 공정성을 훼손한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정규직으로 바뀐 7만1549명 중 75.1%인 5만3751명이 경쟁 절차를 거치지 않고 단순 전환됐다. 올해 9월 감사원이 서울교통공사와 LH(한국토지주택공사) 등 5개 기관을 시범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정규직 전환자 3048명 중 11%인 333명이 재직자의 사촌 이내 친인척인 것으로 확인되기도 했다.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대거 전환하면서 발생하는 비용은 공기업들이 고스란히 떠안는다. 특히 이미 정규직으로 바뀐 근로자들이 잇따라 노조를 결성해 임금 인상과 추가 복지 개선을 요구하면서 부담은 더 커질 전망이다.
최근 청소 및 이송 관련 근로자들이 ‘100% 정규직 전환’을 내걸고 지난 7일부터 무기한 총파업에 들어간 분당서울대병원이 대표적이다. 병원이 ‘자회사 정규직’ 방식으로 전환하자 노조는 병원 측에 직접 고용을 요구하고 있다. 노조는 병원 종사자에게 필요한 신분검증 등 채용 절차도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지난 14일에는 이례적으로 의사협회가 나서 “병원 로비를 점거하고 진료 행위를 방해하고 있다”며 파업 집행부를 검찰에 고발했다.
노경목 기자 autonomy@hankyung.com
정부의 공공부문 정규직 전환 정책에 따라 지난 1~2년간 정규직으로 바뀐 공기업 근로자들이 임금·단체협약 시즌이 돌아오자 잇달아 임금 인상, 본사 직고용 등을 추가 요구하고 있다. 이번엔 ‘정규직에 맞는 대우를 해달라’고 압박하면서 공공부문 추투(秋鬪)로 번지는 양상이다.
한국공항공사 비정규직 근로자들은 지난해 자회사 정규직으로 전환되자 올해 1월 노조를 결성했다. 새로 만든 노조의 운영 기간이 짧아 쟁의권을 인정받지 못하자 기존에 있던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소속 노조에 이중 가입하는 변칙을 동원하기도 했다.
전국철도노동조합은 정규직으로 전환된 근로자들의 처우 개선을 요구하며 오는 20일 무기한 파업에 들어갈 계획이다. 한국정보화진흥원 노조도 “이번에 전환된 정규직 임금을 더 큰 폭으로 올려줘야 한다”며 파업을 예고했다. 한국무역보험공사는 정규직으로 전환된 청소원들을 중심으로 큰 폭의 임금 인상 요구가 나오고 있다.
조준모 성균관대 경제학과 교수는 “애초 정규직 전환의 취지는 비정규직의 고용 안정성을 높이는 대신 호봉제 위주의 기존 정규직을 직무급 중심으로 바꿔 상생하자는 것”이라며 “정규직 전환자들의 처우만 기존 정규직 수준으로 높이는 식으로 진행되면 공공부문의 고비용 구조가 고착화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정부·노조 등쌀에
道公 '정규직 전환' 목표보다 6배 더 늘렸다
A공공기관은 지난 6월 발표된 ‘공공기관 경영평가’에서 C등급을 받았다. 경영성과 지표가 모두 우수했던 터라 저조한 성적을 놓고 안팎에서 의견이 분분했다. 구체적인 항목을 들여다보니 답이 나왔다.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실적이 다른 기관에 비해 낮다는 것이 이유였다. 전체 비정규직의 5%만 정규직으로 전환해 63%에 이르는 공공기관 평균 전환율을 크게 밑돈 것이다. 해당 공공기관 이사장은 “청와대 지시대로 비정규직을 모두 정규직으로 전환하면 예산이 거덜나 신규 사업을 못하게 된다”며 “낮은 평가등급과 비판을 받더라도 공공기관으로서 국민을 위해 일하는 것이 우선이라는 게 소신”이라고 말했다. “손실이 얼마든 정규직으로 바꿔라”
17일 고용노동부의 ‘공공부문 정규직 전환 추진실적’에 따르면 지금까지 334개 공공기관에서 15만1489명의 비정규직 중 9만5760명에 대한 정규직 전환이 결정됐다. 이 중 75%에 해당하는 7만1549명은 6월까지 이미 전환을 완료했다.
문제는 각 공공기관이 경영여건 및 목표를 고려하지 않고 급하게 정규직 전환에 매달리고 있다는 점이다. 국회 예산정책처가 3월 발간한 ‘2019 대한민국 재정’에 따르면 2013년부터 5년 연속 순손실을 내고 있는 공공기관은 23곳으로 누적 손실액은 9조5922억원에 달한다. 이들 공기업과 공단에서만 5032명의 정규직 전환이 결정됐다. 8조6797억원의 누적 손실을 낸 한국석유공사가 462명, 1401억원의 누적 손실을 본 근로복지공단은 1916명을 정규직으로 전환한다. 근로복지공단 관계자는 “892명의 파견·용역직이 정규직이 되면서 처우 개선에 따른 비용 증가는 불가피하다”며 “손실이 지속되고 있지만 정부 방침에 따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정부가 적극적으로 정규직 전환을 독려하자 99개 공공기관에서는 정규직 전환 결정 인원이 당초 계획 인원을 초과하는 일도 벌어졌다. 한국전력은 당초 계획 인원인 5107명보다 60% 많은 8180명을, 한국도로공사는 계획(1316명)보다 여섯 배 많은 7787명을 정규직으로 전환했다. 한국마사회 등 관련 공기업들은 “실제 전환 작업 과정에서 정규직 전환 기준을 대폭 완화해 목표를 초과 달성했다”고 설명했다. 특히 국토교통부 산하 기관 23곳 중에는 16곳이 목표 인원을 초과했다. 부처가 개별 공공기관의 여건을 무시한 채 일방적으로 압박한 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정규직에 맞게 임금 올려달라”
정부가 나서 실적을 부풀리기한 사례도 있다. 인천국제공항공사는 원래 전체 비정규직이 8260명이라고 보고했지만 정규직 전환 결정 인원은 이보다 1536명 많은 9796명이었다. 웬만한 중견기업 근로자만큼의 인원이 새로 추가된 것이다. 공사 관계자는 “제2여객터미널 준공으로 채용된 이들을 추가했다”며 “엄밀히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한 것은 아니지만 고용부에서 정규직 전환 실적으로 잡으라고 했다”고 설명했다.
정부 주도의 정규직 전환이 ‘속도전’으로 진행되다 보니 채용 과정의 공정성을 훼손한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정규직으로 바뀐 7만1549명 중 75.1%인 5만3751명이 경쟁 절차를 거치지 않고 단순 전환됐다. 올해 9월 감사원이 서울교통공사와 LH(한국토지주택공사) 등 5개 기관을 시범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정규직 전환자 3048명 중 11%인 333명이 재직자의 사촌 이내 친인척인 것으로 확인되기도 했다.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대거 전환하면서 발생하는 비용은 공기업들이 고스란히 떠안는다. 특히 이미 정규직으로 바뀐 근로자들이 잇따라 노조를 결성해 임금 인상과 추가 복지 개선을 요구하면서 부담은 더 커질 전망이다.
최근 청소 및 이송 관련 근로자들이 ‘100% 정규직 전환’을 내걸고 지난 7일부터 무기한 총파업에 들어간 분당서울대병원이 대표적이다. 병원이 ‘자회사 정규직’ 방식으로 전환하자 노조는 병원 측에 직접 고용을 요구하고 있다. 노조는 병원 종사자에게 필요한 신분검증 등 채용 절차도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지난 14일에는 이례적으로 의사협회가 나서 “병원 로비를 점거하고 진료 행위를 방해하고 있다”며 파업 집행부를 검찰에 고발했다.
노경목 기자 autonom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