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적법 도급, 이젠 불법파견?"…親노동 지침에 기업 초비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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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법파견 새 가이드라인 논란
철통 보안만 강조한 고용부
도급과 파견, 현장서 구분 어려워
철통 보안만 강조한 고용부
도급과 파견, 현장서 구분 어려워
고용노동부는 이달 초 제조업의 불법파견 여부를 판단할 가이드라인 개정안과 관련해 양대 노총과 경제단체 관계자를 따로 불러 의견을 들었다. 고용부는 이 자리에서 지침이 공식 발표되기 전까지 철저하게 비밀을 유지해달라고 당부했다. 사전 유출로 불필요한 혼란을 막기 위한 조치라는 설명이었지만 산업현장에 미치는 파급효과를 감안하면 소통 없는 ‘깜깜이 행정’이라는 비판이 나왔다.
기업들은 사실상 불법파견 단속 기준이 되는 고용부의 새 지침 마련 소식에 초긴장 상태다. 지금까지 기존 정부 지침에 맞춰 적법한 사내하도급을 운영해 왔더라도 새 기준을 들이대면 판단이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정부가 불법파견으로 판단하면 원청은 해당 근로자를 직접고용해야 한다. 불복하면 1인당 최대 3000만원의 과태료가 부과된다. 물론 소송할 수 있지만 패소 땐 과태료는 물론 형사처벌(3년 이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 벌금)까지 받게 된다.
김희성 강원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법적 논란이 끊이지 않는 파견 단속 지침은 기업은 물론 전문가가 참여하는 공청회를 통해 마련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지적했다.
“도급과 파견, 현장에선 구분 어려워”
원청(사용사업주)이 소속 근로자가 아닌 근로자에게 업무를 맡긴다는 점에서 도급과 파견은 같다. 다만 도급은 해당 근로자가 고용계약을 맺은 회사로부터 업무 지시를 받는 반면 파견은 고용계약을 파견회사와 맺고 업무 지휘는 실제 일하는 원청에서 받는다. 즉 법으로 파견이 금지된 업종에서 원청이 도급계약을 맺은 회사의 근로자들에게 지휘·명령을 하면 불법파견이라는 얘기다.
현행 ‘파견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파견법)’은 경비, 청소, 주차관리, 자동차 운전, 통·번역 등 32개 업종에만 파견을 허용하고 있다. 주조·금형·용접 등 뿌리산업을 비롯한 제조업에는 금지돼 있다.
문제는 도급과 파견의 구분이 사전적으로는 가능하지만 실제 산업현장에서는 뒤섞여 있는 경우가 적지 않다는 점이다. 제조업만 해도 무수한 공정이 연계돼 하나의 완제품이 나오기 때문에 ‘지휘·명령’과 ‘협조 요청’을 명확히 가르기 힘들다. 대다수 도급계약이 원청은 대기업이고 하청(인력 제공)은 대부분 중소 영세기업으로 이뤄지는 이른바 ‘갑을관계’인 점도 불법파견 논란을 부추기는 원인으로 꼽힌다.
권혁 부산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사내하도급 근로자의 작업 과정에 원청이 개입했다고 해서 모두 파견으로 해석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고 지적했다. 현장소장 통한 지시만 해도 불법파견?
새 파견 판단 지침은 2015년 2월 대법원이 현대자동차 사내하도급 근로자에 대해 불법파견 판단을 내린 판결을 토대로 했다. 2007년부터 지금까지 근로감독관들이 활용해온 지침은 판단 기준이 비교적 단순했다. 우선 인력을 제공한 업체가 실체가 있는지를 판단하고, 실체가 없으면 위장도급 즉 불법파견으로 본다. 실체 존재 여부의 판단 기준은 채용·해고 결정권, 소요자금 조달·지급 능력 등이 있는지를 본다. 실체가 인정되더라도 해당 근로자가 원청의 지휘·명령을 받는다면 파견으로 본다.
하지만 새 지침이 나오면 불법파견 판단 사례가 크게 늘어날 가능성이 높다. 2015년 대법원은 원청이 간접적으로 상당한 지휘·명령만 해도 파견으로 판단했다. 또 △원청 소속 근로자와 공동작업을 하거나 △하청업체에 근로자 선발, 교육훈련, 작업시간, 휴가 결정권한이 없거나 △도급 업무가 원청 근로자 업무와 구별되는 전문성·기술성이 부족하거나 △하청업체가 독립된 기업 조직이나 설비를 갖추고 있지 않은 경우도 도급이 아니라 파견이라고 새 기준을 제시했다.
한 경제단체 관계자는 “새 지침대로라면 어제까지는 도급이라 해놓고 오늘부터는 불법파견이라는 해석이 나올 수 있다”며 “정부 정책 의지에 따라 현장 감독관들이 ‘코에 걸면 코걸이’ 식으로 과잉 판단할 가능성도 크다”고 지적했다.
불법파견과 관련한 정부의 단속 의지도 높아졌다. 고용부는 2017년 8월 파리바게뜨 제빵기사 5378명에 대해 직접고용 시정명령을 내린 것을 시작으로 행정조치를 잇달아 내놓고 있다. 지난해 롯데캐논, 삼화전기, 한국GM, LG유플러스에 이어 지난 10월 기아자동차 사내하도급 근로자 860명에 대해 불법파견이라고 판단했다.
백승현 기자/최종석 전문위원 argos@hankyung.com
기업들은 사실상 불법파견 단속 기준이 되는 고용부의 새 지침 마련 소식에 초긴장 상태다. 지금까지 기존 정부 지침에 맞춰 적법한 사내하도급을 운영해 왔더라도 새 기준을 들이대면 판단이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정부가 불법파견으로 판단하면 원청은 해당 근로자를 직접고용해야 한다. 불복하면 1인당 최대 3000만원의 과태료가 부과된다. 물론 소송할 수 있지만 패소 땐 과태료는 물론 형사처벌(3년 이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 벌금)까지 받게 된다.
김희성 강원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법적 논란이 끊이지 않는 파견 단속 지침은 기업은 물론 전문가가 참여하는 공청회를 통해 마련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지적했다.
“도급과 파견, 현장에선 구분 어려워”
원청(사용사업주)이 소속 근로자가 아닌 근로자에게 업무를 맡긴다는 점에서 도급과 파견은 같다. 다만 도급은 해당 근로자가 고용계약을 맺은 회사로부터 업무 지시를 받는 반면 파견은 고용계약을 파견회사와 맺고 업무 지휘는 실제 일하는 원청에서 받는다. 즉 법으로 파견이 금지된 업종에서 원청이 도급계약을 맺은 회사의 근로자들에게 지휘·명령을 하면 불법파견이라는 얘기다.
현행 ‘파견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파견법)’은 경비, 청소, 주차관리, 자동차 운전, 통·번역 등 32개 업종에만 파견을 허용하고 있다. 주조·금형·용접 등 뿌리산업을 비롯한 제조업에는 금지돼 있다.
문제는 도급과 파견의 구분이 사전적으로는 가능하지만 실제 산업현장에서는 뒤섞여 있는 경우가 적지 않다는 점이다. 제조업만 해도 무수한 공정이 연계돼 하나의 완제품이 나오기 때문에 ‘지휘·명령’과 ‘협조 요청’을 명확히 가르기 힘들다. 대다수 도급계약이 원청은 대기업이고 하청(인력 제공)은 대부분 중소 영세기업으로 이뤄지는 이른바 ‘갑을관계’인 점도 불법파견 논란을 부추기는 원인으로 꼽힌다.
권혁 부산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사내하도급 근로자의 작업 과정에 원청이 개입했다고 해서 모두 파견으로 해석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고 지적했다. 현장소장 통한 지시만 해도 불법파견?
새 파견 판단 지침은 2015년 2월 대법원이 현대자동차 사내하도급 근로자에 대해 불법파견 판단을 내린 판결을 토대로 했다. 2007년부터 지금까지 근로감독관들이 활용해온 지침은 판단 기준이 비교적 단순했다. 우선 인력을 제공한 업체가 실체가 있는지를 판단하고, 실체가 없으면 위장도급 즉 불법파견으로 본다. 실체 존재 여부의 판단 기준은 채용·해고 결정권, 소요자금 조달·지급 능력 등이 있는지를 본다. 실체가 인정되더라도 해당 근로자가 원청의 지휘·명령을 받는다면 파견으로 본다.
하지만 새 지침이 나오면 불법파견 판단 사례가 크게 늘어날 가능성이 높다. 2015년 대법원은 원청이 간접적으로 상당한 지휘·명령만 해도 파견으로 판단했다. 또 △원청 소속 근로자와 공동작업을 하거나 △하청업체에 근로자 선발, 교육훈련, 작업시간, 휴가 결정권한이 없거나 △도급 업무가 원청 근로자 업무와 구별되는 전문성·기술성이 부족하거나 △하청업체가 독립된 기업 조직이나 설비를 갖추고 있지 않은 경우도 도급이 아니라 파견이라고 새 기준을 제시했다.
한 경제단체 관계자는 “새 지침대로라면 어제까지는 도급이라 해놓고 오늘부터는 불법파견이라는 해석이 나올 수 있다”며 “정부 정책 의지에 따라 현장 감독관들이 ‘코에 걸면 코걸이’ 식으로 과잉 판단할 가능성도 크다”고 지적했다.
불법파견과 관련한 정부의 단속 의지도 높아졌다. 고용부는 2017년 8월 파리바게뜨 제빵기사 5378명에 대해 직접고용 시정명령을 내린 것을 시작으로 행정조치를 잇달아 내놓고 있다. 지난해 롯데캐논, 삼화전기, 한국GM, LG유플러스에 이어 지난 10월 기아자동차 사내하도급 근로자 860명에 대해 불법파견이라고 판단했다.
백승현 기자/최종석 전문위원 argo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