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게 한 종 이어 두 번째 '안구 없는 시각' 사례
눈이 없는 '붉은 거미불가사리'(red brittle star)가 몸의 색깔을 바꿔주는 색소 세포와 빛 감지 세포를 이용해 컴퓨터에서 생성되는 픽셀 이미지와 비슷하게 주변을 '볼 수 있는' 시력을 가졌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영국 옥스퍼드대학교와 외신에 따르면 이 대학 자연사박물관의 로렌 섬너-루니 박사가 이끄는 국제연구팀은 불가사리와 성게의 먼 친척인 '오피오코마 웬드티'(Ophiocoma wendtii)의 새로운 시각 메커니즘을 밝혀낸 연구 결과를 생물학 저널 '커런트 바이올로지'(Current Biology)를 통해 발표했다.

O.웬드티는 몸 색깔이 낮에는 짙은 적갈색을 띠다 밤에는 베이지색으로 바뀌어 30여년 전부터 생물학자들의 주목을 받아왔으며, 최근에는 온몸이 수천개의 빛 감지 세포로 덮여있다는 연구 결과가 나오기도 했다.

연구팀은 O.웬드티가 주변과 대조돼 포식자로부터 자신을 숨길 수 있는 곳을 찾아내는 것을 통해 단순히 빛만 감지하는 것이 아니라 시각 능력까지 갖췄다는 것을 처음으로 확인했다.

연구팀은 O.웬드티의 시력이 매우 낮은 수준이지만 열대 산호초 사이에서 은신처를 찾기에는 충분한 것으로 분석했다.

연구팀은 O.웬드티의 시력 메커니즘을 밝혀내기 위해 낮에 짙은 적색을 띠게 하는 색소세포의 역할에 초점을 맞춰 연구를 진행했다.

O.웬드티의 사촌 격인 O.푸밀라(pumila)도 온몸이 빛 감지 세포로 덮여있지만, 몸 색깔이 낮과 밤으로 변하지는 않고 시력도 갖고 있지 못한데 착안한 것이다.

연구팀은 O.웬드티처럼 색소세포를 가졌을 때와 그렇지 않았을 때의 빛 감지 세포 작동을 확인할 수 있는 디지털 모델을 구축해 실험했다.

그 결과, 색소세포를 갖고있을 때는 낮에 색소세포가 특정 빛 감지 세포를 가려 빛이 들어오는 각도를 좁힘으로써 컴퓨터에서 만들어지는 픽셀 이미지와 비슷한 방식으로 시력이 구축되지만, O.푸밀라처럼 색소세포가 아예 없거나 있어도 가동되지 않는 밤에는 빛이 들어오는 각도가 넓어지면서 시력이 무력화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팀은 O.웬드티 연구를 통해 몸 색깔을 바꾸는 색소 세포를 이용한 시력 메커니즘을 처음으로 확인하고, 거미불가사리의 먼 친척인 성게(sea urchin)의 한 종(種)과의 잠재적 유사성도 밝혀낸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이 성게 종은 O.웬드티와 유사한 시력 테스트를 통과했으며, 빛의 양에 반응해 몸 색깔도 바꾸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눈 없이 주변을 볼 수 있는 것으로 알려진 유일한 동물인 이 성게 종이 O.웬드티와 비슷한 방식을 이용하는지는 추가 연구가 필요하다.

섬너-루니 박사는 "이번 실험 결과는 거미불가사리가 주변을 볼 수 있다는 첫 증거뿐만 아니라 성게에 이어 눈이 없는 동물의 시각에 대한 두 번째 사례를 제공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