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의 아닌 과실로도 가중처벌…'스쿨존 공포'에 떠는 운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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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 리포트
운전자들 "과잉 처벌" 불만
어린이 사망·상해 사고 발생 땐
제한속도 지켰더라도 중형 받아
법조계서도 "형량 지나치다"
운전자들 "과잉 처벌" 불만
어린이 사망·상해 사고 발생 땐
제한속도 지켰더라도 중형 받아
법조계서도 "형량 지나치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우려가 잦아들고 야외활동이 늘어나면서 일명 ‘민식이법(도로교통법·특정범죄가중처벌법)’에 대한 논란이 커지고 있다. 민식이법은 지난 3월 25일부터 시행됐지만 개학이 연기됐고, 사회적 거리두기가 시행되며 파장이 크지 않았다. 이달 들어선 분위기가 달라졌다. 초등학교 개학을 앞둔 데다 교통량이 늘며 스쿨존(어린이보호구역)에서 사고가 많아질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민식이법에 대한 시선은 극명하게 엇갈린다. 운전자 사이에선 과잉 처벌이라는 불만이 있다. 반면 스쿨존 내 교통사고를 줄이려면 필요한 조치라는 의견도 많다.
시행 한 달 지나도 논란 계속
1일 기준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민식이법 개정을 요구하는 청원글이 10개가 넘는다. 민식이법 개정을 요구하는 한 청원글이 지난달 22일 총 35만4857건의 동의를 얻고, 마감한 이후에도 비슷한 내용의 청원글이 잇따르고 있다. 대부분 운전자의 우려와 혼란이 담겨 있다. 어린이 교통사고의 모든 책임을 운전자에게 부담하는 것은 부당하다는 지적이다. 민식이법은 스쿨존에서 어린이 교통사고를 줄이겠다는 취지로 개정된 도로교통법과 특정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이다. 스쿨존에서 안전운전 위반으로 만 12세 미만 어린이를 사망하게 하면 무기 또는 3년 이상의 징역에 처하는 게 골자다. 다치게 하면 1년 이상 15년 이하의 징역이나 500만원 이상 3000만원 이하의 벌금을 부과할 수 있다.
민식이법은 지난해 9월 충남 아산의 한 어린이보호구역에서 횡단보도를 건너던 김민식 군(9)이 사망한 사고를 계기로 발의됐다. 이 법은 스쿨존 내 교통사고를 줄여야 한다는 공감대에 힘이 실리면서 국회에서 거의 만장일치로 통과됐다. 그럼에도 논란은 계속되고 있다. 헌법이 보장하는 책임과 형벌 간 비례성 원칙에 어긋난다는 지적이 많다. 스쿨존 내 어린이 사망사고 시 받는 형량이 일명 ‘윤창호법’의 음주운전 사망 가해자 형량과 같다. 고의범이 아닌 과실범을 가중 처벌하는 것은 지나치다는 의견도 있다.
불안한 운전자들…보험 가입 잇따라
민식이법을 촉발한 운전자가 금고형을 선고받으면서 논란은 더욱 확산되고 있다. 대전지방법원 천안지원 형사2단독(재판장 최재원)은 지난달 27일 민식군을 차로 치어 숨지게 한 A씨(44)에게 금고 2년을 선고했다. 금고는 징역과 달리 강제노동 의무가 없지만 교도소에 구금된다는 점은 같다.
이 판결은 민식이법이 소급 적용되지 않았다는 점을 감안해도 처벌 강도가 높다는 게 법조계의 전언이다. 재판부는 “사고가 어린이보호구역 횡단보도에서 일어났고 인근에 초등학교와 중학교 등이 있으며, 아이들이 많이 다닐 수 있는 시간대였지만 피고가 제대로 확인하지 않은 과실이 있다”고 했다.
당시 차량의 속도는 22.5~23.6㎞/h로 빠르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피해자들이 반대편 차로에 대기 중인 공간에서 갑작스럽게 횡단보도로 뛰어나온 것을 고려하면 ‘운전자에게도 피하기 힘든 사고’였다는 얘기다. 재판부는 “피해자들이 갑자기 차량 사이로 뛰어나온 점도 인정되며 (피해자 측) 과실이 전혀 없다고 보기 어렵다”고 했다.
현승진 법률사무사 세웅 변호사는 “법조계에선 어린이 교통사고 처벌을 강화하는 입법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다른 범죄에 견줘 지나치게 형량을 높이면 또 다른 부작용이 있을 수 있다는 우려도 많다”며 “고의와 과실범은 분명 구분돼야 한다”고 말했다. 현 변호사는 “향후 민식이법이 적용되는 경우를 제한하거나 특정 경우에 가중처벌을 하는 등 수위를 조절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고 했다.
통상 교통사고는 운전자가 피할 수 없는 상황(불가항력)이었는지, 사고 또는 교통상황을 예상할 수 있었나(예견 가능성) 등을 놓고 안전운전 위반 여부를 따진다. 하지만 민식이법은 이 같은 점을 고려하지 않았다는 지적이 있다.
운전자들은 불안감을 토로하고 있다. 운전 경력 9년차인 직장인 김모씨(38)는 “당시 사고 블랙박스 영상을 보니 갑자기 뛰어나오는 어린이를 보긴 쉽지 않았을 것 같더라”며 “‘어린이는 원래 돌발행동을 많이 한다’면서 사고에 관한 모든 책임을 운전자에게 돌리는 것은 가혹하다”고 말했다.
민식이법의 영향으로 운전자보험 가입도 잇따르고 있다. 삼성화재·현대해상·KB손보 등 3개 보험사의 지난달 운전자보험 신규 계약 건수는 36만7556건에 달한다. 전년 동기(7만7981건)의 3.7배 수준이다. 한 보험사 관계자는 “민식이법 도입 후 처벌이나 보상에 대한 우려가 커지면서 관련 상품 가입 문의가 크게 늘었다”고 말했다. 민식이법이 적용되는 스쿨존은 매년 늘어나는 추세다. 스쿨존은 2018년 기준 1만6765곳으로 10년 전인 2008년 8999곳에 비해 두 배 가까이 불었다.
민식이법을 빌미로 ‘신고하지 않을 테니 합의금을 달라’고 요구하는 사례도 나타났다. 지난달 28일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집 앞 스쿨존에서 초등학교 5학년 학생이 갑자기 뛰어들어 사고가 났다”며 “학생 엄마가 민식이법을 거론하면서 신고하지 않을 테니 합의금 300만원과 병원비 전액을 달라고 한다”는 글이 올라오기도 했다.
운전자 경각심 높이는 효과도
민식이법의 긍정적인 영향력을 주목하는 시선도 있다. 경찰청 관계자는 “민식이법 시행 이후 스쿨존 내에서의 속도위반 단속량이 확연하게 줄었다”며 “스쿨존에선 제한 속도(30㎞)보다 더 낮게 운전하면서 전방을 주시하는 운전 습관이 정착되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스쿨존 내에선 매년 400건이 넘는 어린이 교통사고가 발생한다.
한상진 한국교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그동안 국내 운전자 사이에선 ‘어린이는 교통 약자’라는 인식이 부족했다”며 “민식이법은 스쿨존에서 운전을 조심해야 한다는 경각심을 줬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효과가 분명히 있다”고 말했다. 다만 운전자의 부주의로 보기 어려운 사례에 대해서도 강한 처벌을 적용하는 부분은 논란의 소지가 크다고 봤다. 한 위원은 “어린이가 갑자기 뛰어들었을 때 운전자가 피할 수 있는지 없는지를 과학적으로 분석할 수 있는 도구나 기법을 개발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정지은/최다은 기자 jeong@hankyung.com
시행 한 달 지나도 논란 계속
1일 기준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민식이법 개정을 요구하는 청원글이 10개가 넘는다. 민식이법 개정을 요구하는 한 청원글이 지난달 22일 총 35만4857건의 동의를 얻고, 마감한 이후에도 비슷한 내용의 청원글이 잇따르고 있다. 대부분 운전자의 우려와 혼란이 담겨 있다. 어린이 교통사고의 모든 책임을 운전자에게 부담하는 것은 부당하다는 지적이다. 민식이법은 스쿨존에서 어린이 교통사고를 줄이겠다는 취지로 개정된 도로교통법과 특정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이다. 스쿨존에서 안전운전 위반으로 만 12세 미만 어린이를 사망하게 하면 무기 또는 3년 이상의 징역에 처하는 게 골자다. 다치게 하면 1년 이상 15년 이하의 징역이나 500만원 이상 3000만원 이하의 벌금을 부과할 수 있다.
민식이법은 지난해 9월 충남 아산의 한 어린이보호구역에서 횡단보도를 건너던 김민식 군(9)이 사망한 사고를 계기로 발의됐다. 이 법은 스쿨존 내 교통사고를 줄여야 한다는 공감대에 힘이 실리면서 국회에서 거의 만장일치로 통과됐다. 그럼에도 논란은 계속되고 있다. 헌법이 보장하는 책임과 형벌 간 비례성 원칙에 어긋난다는 지적이 많다. 스쿨존 내 어린이 사망사고 시 받는 형량이 일명 ‘윤창호법’의 음주운전 사망 가해자 형량과 같다. 고의범이 아닌 과실범을 가중 처벌하는 것은 지나치다는 의견도 있다.
불안한 운전자들…보험 가입 잇따라
민식이법을 촉발한 운전자가 금고형을 선고받으면서 논란은 더욱 확산되고 있다. 대전지방법원 천안지원 형사2단독(재판장 최재원)은 지난달 27일 민식군을 차로 치어 숨지게 한 A씨(44)에게 금고 2년을 선고했다. 금고는 징역과 달리 강제노동 의무가 없지만 교도소에 구금된다는 점은 같다.
이 판결은 민식이법이 소급 적용되지 않았다는 점을 감안해도 처벌 강도가 높다는 게 법조계의 전언이다. 재판부는 “사고가 어린이보호구역 횡단보도에서 일어났고 인근에 초등학교와 중학교 등이 있으며, 아이들이 많이 다닐 수 있는 시간대였지만 피고가 제대로 확인하지 않은 과실이 있다”고 했다.
당시 차량의 속도는 22.5~23.6㎞/h로 빠르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피해자들이 반대편 차로에 대기 중인 공간에서 갑작스럽게 횡단보도로 뛰어나온 것을 고려하면 ‘운전자에게도 피하기 힘든 사고’였다는 얘기다. 재판부는 “피해자들이 갑자기 차량 사이로 뛰어나온 점도 인정되며 (피해자 측) 과실이 전혀 없다고 보기 어렵다”고 했다.
현승진 법률사무사 세웅 변호사는 “법조계에선 어린이 교통사고 처벌을 강화하는 입법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다른 범죄에 견줘 지나치게 형량을 높이면 또 다른 부작용이 있을 수 있다는 우려도 많다”며 “고의와 과실범은 분명 구분돼야 한다”고 말했다. 현 변호사는 “향후 민식이법이 적용되는 경우를 제한하거나 특정 경우에 가중처벌을 하는 등 수위를 조절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고 했다.
통상 교통사고는 운전자가 피할 수 없는 상황(불가항력)이었는지, 사고 또는 교통상황을 예상할 수 있었나(예견 가능성) 등을 놓고 안전운전 위반 여부를 따진다. 하지만 민식이법은 이 같은 점을 고려하지 않았다는 지적이 있다.
운전자들은 불안감을 토로하고 있다. 운전 경력 9년차인 직장인 김모씨(38)는 “당시 사고 블랙박스 영상을 보니 갑자기 뛰어나오는 어린이를 보긴 쉽지 않았을 것 같더라”며 “‘어린이는 원래 돌발행동을 많이 한다’면서 사고에 관한 모든 책임을 운전자에게 돌리는 것은 가혹하다”고 말했다.
민식이법의 영향으로 운전자보험 가입도 잇따르고 있다. 삼성화재·현대해상·KB손보 등 3개 보험사의 지난달 운전자보험 신규 계약 건수는 36만7556건에 달한다. 전년 동기(7만7981건)의 3.7배 수준이다. 한 보험사 관계자는 “민식이법 도입 후 처벌이나 보상에 대한 우려가 커지면서 관련 상품 가입 문의가 크게 늘었다”고 말했다. 민식이법이 적용되는 스쿨존은 매년 늘어나는 추세다. 스쿨존은 2018년 기준 1만6765곳으로 10년 전인 2008년 8999곳에 비해 두 배 가까이 불었다.
민식이법을 빌미로 ‘신고하지 않을 테니 합의금을 달라’고 요구하는 사례도 나타났다. 지난달 28일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집 앞 스쿨존에서 초등학교 5학년 학생이 갑자기 뛰어들어 사고가 났다”며 “학생 엄마가 민식이법을 거론하면서 신고하지 않을 테니 합의금 300만원과 병원비 전액을 달라고 한다”는 글이 올라오기도 했다.
운전자 경각심 높이는 효과도
민식이법의 긍정적인 영향력을 주목하는 시선도 있다. 경찰청 관계자는 “민식이법 시행 이후 스쿨존 내에서의 속도위반 단속량이 확연하게 줄었다”며 “스쿨존에선 제한 속도(30㎞)보다 더 낮게 운전하면서 전방을 주시하는 운전 습관이 정착되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스쿨존 내에선 매년 400건이 넘는 어린이 교통사고가 발생한다.
한상진 한국교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그동안 국내 운전자 사이에선 ‘어린이는 교통 약자’라는 인식이 부족했다”며 “민식이법은 스쿨존에서 운전을 조심해야 한다는 경각심을 줬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효과가 분명히 있다”고 말했다. 다만 운전자의 부주의로 보기 어려운 사례에 대해서도 강한 처벌을 적용하는 부분은 논란의 소지가 크다고 봤다. 한 위원은 “어린이가 갑자기 뛰어들었을 때 운전자가 피할 수 있는지 없는지를 과학적으로 분석할 수 있는 도구나 기법을 개발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정지은/최다은 기자 jeo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