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견 다른 위안부 피해자 목소리 외면…'정대협 비판' 재조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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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여성평화기금'과 2004년 심미자 할머니 등 사례
정대협 관계자 "견해차나 갈등 발생할 수 있어"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이용수(92) 할머니의 두 차례 기자회견을 계기로 정의기억연대(정의연)와 그 전신인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에 대해 오래 전부터 일각에서 제기되던 비판이 재조명되고 있다.
위안부 문제 해결 운동에 앞장서 온 정의연과 정대협이 피해자 할머니들 중 자신들과 의견을 달리한 이들의 목소리는 외면한다는 비판은 과거부터 있었다.
26일 시민운동계 등에 따르면 1990년 결성된 정대협은 이듬해 고(故) 김학순 할머니의 최초 피해 증언 이후 위안부 문제 공론화와 일본 정부의 사과·배상을 요구하는 운동의 중추가 됐다.
정대협은 일본군에 의해 성노예 범죄가 자행됐다는 사실에 대한 일본 정부의 사과와 피해자들을 위한 일본 정부의 법적 배상 등을 핵심 요구사항으로 삼고 수요시위 등 위안부 문제 해결 운동을 벌여 왔다.
올해 3월 기준으로 우리나라 정부에 등록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는 240명(사망 222명, 생존 18명)이다.
이들 가운데 '일본 정부에 의한 법적 배상'을 고집하는 정대협의 입장에 동의하는 피해자도 있었지만, 실현 가능성 등을 감안해 위로금 등 보상을 받는 것을 차선책으로 수긍하는 이도 있었다.
하지만 정대협은 단체 입장에 동의하는 피해자들을 중심으로 위안부 운동을 벌여 왔으며, 정대협의 입장이 곧 국내 위안부 피해자 전체를 대변하는 것처럼 됐다는 게 일각의 지적이다.
피해자들 사이의 이견이 두드러졌던 대표적 사안은 1990년대 중반 '여성을 위한 아시아평화국민기금' 문제였다.
일본은 1993년 위안부 강제연행을 인정하고 '사죄와 반성'을 표명한 고노(河野) 담화의 후속조치로 1995년 민간 모금 형식인 '여성을 위한 아시아평화국민기금'을 조성해 피해자들에게 지급하려 했다.
정대협은 해당 기금이 법적 배상을 피하기 위한 꼼수에 불과하다고 규탄하고 국내 위안부 피해자들의 기금 수령도 반대했다.
그러나 일부 피해자들이 기금을 수령하면서 균열이 발생했다.
아시아여성평화기금은 정대협을 비롯한 국내 시민사회단체의 비판 끝에 2007년 결국 해산했다.
정대협 중심의 위안부 운동에 대한 비판은 과거부터 있었으나 최근 이 할머니가 대구에서 7일과 25일 등 두 차례 연 기자회견을 계기로 다시 주목받고 있다.
이 할머니는 25일 기자회견에서 "내가 무엇이든지 바른말을 하니까 (정대협이) 전부 감췄다.
(2015년 12월 위안부 합의 당시) 10억엔이 왔을 때도, 내가 알았으면 돌려보냈을 것"이라며 "정대협에 있는 할머니만 피해자다.
나눔의 집에 있는 할머니들만 피해자다.
전국의 할머니를 도우라고 했는데 거기 있는 할머니만 도왔지"라고 말했다.
정의연과 정대협이 단체 입장에 가까운 피해자만 지원하고, 입장이 다른 피해자들에게는 위안부 문제해결 방식에 대해 협의하려는 노력을 제대로 하지 않았다는 취지의 비판이다.
이에 앞서 2004년 고(故) 심미자 할머니 등 위안부 피해자 33명은 '세계평화무궁화회' 명의로 낸 성명에서 "언제 죽을지 모르는 위안부 할머니들을 역사의 무대에 앵벌이로 팔아 배를 불려온 악당"이라며 정대협을 강한 어조로 비판했다.
이들은 당시 성명에서 "윤정옥 (당시) 정대협 대표는 '아시아여성평화기금을 받으면 자원해 나간 공창(公娼)이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며 "가해자가 피해자에게 주는 위로금을 당신들이 뭔데 '공창' 운운하며 우리를 두 번 울리는 것이냐"고 되물었다.
위안부 피해자들을 위해 결성된 단체가 자신들과 의견이 일치하는 피해자들과만 함께하고, 입장이 다른 피해당사자들의 목소리는 배제했다는 비판이었다.
최근에는 심 할머니 등 정대협과 관계가 불편하던 이들의 이름이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의 이름이 새겨진 남산 '기억의 터' 조형물 '대지의 눈'에는 빠져 있는 것으로 드러나 논란이 되기도 했다.
박유하 세종대 교수가 2013년에 펴내 논란을 일으킨 『제국의 위안부 -- 식민지 지배와 기억의 투쟁』에도 정대협의 운동 방식에 관한 비판이 나온다.
박 교수는 자신의 책에서 "지원단체(정대협)가 말하는 '당사자'들이란 어디까지나 지원단체의 생각에 따르는 이들에 한정될 뿐"이라며 "'당사자'는 하나가 아니지만, 지원단체와 의견을 달리하는 '위안부'들의 존재는 우리 사회에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박 교수는 정대협 활동을 정면으로 비판했던 심미자 할머니에 관해서도 언급했다.
그는 같은 책에서 "그녀(심미자 할머니)는 일찍부터 정대협과 갈등을 겪었고 세상에 호소하기도 했지만 공론화되는 일은 없었다"며 "(이같은 주장이) 우리 사회에 조금도 알려지지 않았다는 사실은 당사자와 정대협 간 힘의 차이를 보여준다"고 분석했다.
박 교수는 "'정대협의 생각'과 다른 말을 하는 이들은 단순히 비판받는 정도를 넘어 '민족에 대한 사죄'를 해야 할 정도가 됐다"며 "위안부 문제가 한국 사회에서 커다란 관심을 얻고 그에 따른 힘을 얻으면서 정대협은 권력화된 것"이라고 평가했다.
정의연 관계자는 이 단체가 심미자 할머니 등 자신들과 의견을 달리하는 피해자들을 배제해 왔다는 비판에 대해 "정대협과 정의연이 30여년간 위안부 피해자들과 함께 운동을 이어오면서 피해자뿐 아니라 운동을 함께 한 활동가들 사이에서도 여러 차례 견해차나 갈등이 발생할 수 있다"는 말했다.
그는 "심미자 할머니의 (2004년) 당시 성명도 이같은 과정에서 불거진 일 중 하나라고 본다"고 말했다.
/연합뉴스
정대협 관계자 "견해차나 갈등 발생할 수 있어"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이용수(92) 할머니의 두 차례 기자회견을 계기로 정의기억연대(정의연)와 그 전신인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에 대해 오래 전부터 일각에서 제기되던 비판이 재조명되고 있다.
위안부 문제 해결 운동에 앞장서 온 정의연과 정대협이 피해자 할머니들 중 자신들과 의견을 달리한 이들의 목소리는 외면한다는 비판은 과거부터 있었다.
26일 시민운동계 등에 따르면 1990년 결성된 정대협은 이듬해 고(故) 김학순 할머니의 최초 피해 증언 이후 위안부 문제 공론화와 일본 정부의 사과·배상을 요구하는 운동의 중추가 됐다.
정대협은 일본군에 의해 성노예 범죄가 자행됐다는 사실에 대한 일본 정부의 사과와 피해자들을 위한 일본 정부의 법적 배상 등을 핵심 요구사항으로 삼고 수요시위 등 위안부 문제 해결 운동을 벌여 왔다.
올해 3월 기준으로 우리나라 정부에 등록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는 240명(사망 222명, 생존 18명)이다.
이들 가운데 '일본 정부에 의한 법적 배상'을 고집하는 정대협의 입장에 동의하는 피해자도 있었지만, 실현 가능성 등을 감안해 위로금 등 보상을 받는 것을 차선책으로 수긍하는 이도 있었다.
하지만 정대협은 단체 입장에 동의하는 피해자들을 중심으로 위안부 운동을 벌여 왔으며, 정대협의 입장이 곧 국내 위안부 피해자 전체를 대변하는 것처럼 됐다는 게 일각의 지적이다.
피해자들 사이의 이견이 두드러졌던 대표적 사안은 1990년대 중반 '여성을 위한 아시아평화국민기금' 문제였다.
일본은 1993년 위안부 강제연행을 인정하고 '사죄와 반성'을 표명한 고노(河野) 담화의 후속조치로 1995년 민간 모금 형식인 '여성을 위한 아시아평화국민기금'을 조성해 피해자들에게 지급하려 했다.
정대협은 해당 기금이 법적 배상을 피하기 위한 꼼수에 불과하다고 규탄하고 국내 위안부 피해자들의 기금 수령도 반대했다.
그러나 일부 피해자들이 기금을 수령하면서 균열이 발생했다.
아시아여성평화기금은 정대협을 비롯한 국내 시민사회단체의 비판 끝에 2007년 결국 해산했다.
정대협 중심의 위안부 운동에 대한 비판은 과거부터 있었으나 최근 이 할머니가 대구에서 7일과 25일 등 두 차례 연 기자회견을 계기로 다시 주목받고 있다.
이 할머니는 25일 기자회견에서 "내가 무엇이든지 바른말을 하니까 (정대협이) 전부 감췄다.
(2015년 12월 위안부 합의 당시) 10억엔이 왔을 때도, 내가 알았으면 돌려보냈을 것"이라며 "정대협에 있는 할머니만 피해자다.
나눔의 집에 있는 할머니들만 피해자다.
전국의 할머니를 도우라고 했는데 거기 있는 할머니만 도왔지"라고 말했다.
정의연과 정대협이 단체 입장에 가까운 피해자만 지원하고, 입장이 다른 피해자들에게는 위안부 문제해결 방식에 대해 협의하려는 노력을 제대로 하지 않았다는 취지의 비판이다.
이에 앞서 2004년 고(故) 심미자 할머니 등 위안부 피해자 33명은 '세계평화무궁화회' 명의로 낸 성명에서 "언제 죽을지 모르는 위안부 할머니들을 역사의 무대에 앵벌이로 팔아 배를 불려온 악당"이라며 정대협을 강한 어조로 비판했다.
이들은 당시 성명에서 "윤정옥 (당시) 정대협 대표는 '아시아여성평화기금을 받으면 자원해 나간 공창(公娼)이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며 "가해자가 피해자에게 주는 위로금을 당신들이 뭔데 '공창' 운운하며 우리를 두 번 울리는 것이냐"고 되물었다.
위안부 피해자들을 위해 결성된 단체가 자신들과 의견이 일치하는 피해자들과만 함께하고, 입장이 다른 피해당사자들의 목소리는 배제했다는 비판이었다.
최근에는 심 할머니 등 정대협과 관계가 불편하던 이들의 이름이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의 이름이 새겨진 남산 '기억의 터' 조형물 '대지의 눈'에는 빠져 있는 것으로 드러나 논란이 되기도 했다.
박유하 세종대 교수가 2013년에 펴내 논란을 일으킨 『제국의 위안부 -- 식민지 지배와 기억의 투쟁』에도 정대협의 운동 방식에 관한 비판이 나온다.
박 교수는 자신의 책에서 "지원단체(정대협)가 말하는 '당사자'들이란 어디까지나 지원단체의 생각에 따르는 이들에 한정될 뿐"이라며 "'당사자'는 하나가 아니지만, 지원단체와 의견을 달리하는 '위안부'들의 존재는 우리 사회에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박 교수는 정대협 활동을 정면으로 비판했던 심미자 할머니에 관해서도 언급했다.
그는 같은 책에서 "그녀(심미자 할머니)는 일찍부터 정대협과 갈등을 겪었고 세상에 호소하기도 했지만 공론화되는 일은 없었다"며 "(이같은 주장이) 우리 사회에 조금도 알려지지 않았다는 사실은 당사자와 정대협 간 힘의 차이를 보여준다"고 분석했다.
박 교수는 "'정대협의 생각'과 다른 말을 하는 이들은 단순히 비판받는 정도를 넘어 '민족에 대한 사죄'를 해야 할 정도가 됐다"며 "위안부 문제가 한국 사회에서 커다란 관심을 얻고 그에 따른 힘을 얻으면서 정대협은 권력화된 것"이라고 평가했다.
정의연 관계자는 이 단체가 심미자 할머니 등 자신들과 의견을 달리하는 피해자들을 배제해 왔다는 비판에 대해 "정대협과 정의연이 30여년간 위안부 피해자들과 함께 운동을 이어오면서 피해자뿐 아니라 운동을 함께 한 활동가들 사이에서도 여러 차례 견해차나 갈등이 발생할 수 있다"는 말했다.
그는 "심미자 할머니의 (2004년) 당시 성명도 이같은 과정에서 불거진 일 중 하나라고 본다"고 말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