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첫 소방헬기는 40년전 '까치'…삼풍·성수대교 참사때 활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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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9년 12월 서울소방서 2대 도입이 최초…현재는 전국에 31대
대형 화재나 사고 수습 현장에서 빼놓을 수 없는 장비가 된 소방헬기는 우리나라에 언제 도입됐을까.
첫 소방헬기는 무슨 이름을 달고 어떤 활약을 했을까.
23일 소방청에 따르면 우리나라 최초 소방항공대는 서울시에 설치됐다.
항공대 설치 조례는 1983년 4월에 제정됐지만 실제로 소방헬기를 도입해 운항하기 시작한 것은 1979년 12월부터다.
우리나라 최초의 소방헬기를 도입하게 되기까지는 수많은 가슴 아픈 사고들이 있었다.
서울은 1970년대 급속하게 도시화가 진행되며 고층 건물이 크게 늘었지만 소방력은 그에 못 미쳤다.
163명이 사망한 1971년 대연각호텔 화재, 88명이 숨진 청량리역 대왕코너 화재 등 대형 참사 때마다 소방력 보강 필요성이 지적됐으나 소방차 구입비용도 해외 차관에 의지하던 시절이라 소방헬기 도입은 거론조차 되지 못했다.
그러다 1979년 4월 충무로 라이온스 호텔 화재 이후 소방헬기 도입 논의가 본격화했다.
당시 투숙객 5명이 숨지고 28명이 다쳤는데 사망자 중 2명이 육군 소속 헬기를 동원한 구조작업 도중 밧줄을 놓쳐 추락해 사망한 것이 계기가 됐다.
이에 서울시는 사고 20여일 뒤 '대형화재예방종합대책'을 발표하면서 서울 시내 31개 고층 건물에 헬기 착륙장을 만들고 전용헬기 2대를 도입해 항공소방대를 창설하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이후 공군 협조를 받아 소방대원들에게 공수훈련과 인명구조 출동 비행훈련 등을 실시했고 그해 12월에는 미국 휴즈(현 보잉)사에서 제작한 소방헬기 2대를 도입했다.
기종은 흔히 '잠자리 비행기'로 불리던 민수용 500MD다.
한 대는 면허생산을 하던 대한항공에 발주해 당시 국산 대형 소방차 7대 값과 맞먹던 1억5천만원 예산으로 제작했다.
나머지 한 대는 한국화재보험협회로부터 기증받았다.
한국 최초의 소방헬기인 이 두 대는 '까치 1호'와 '까치 2호'로 명명됐다.
까치 1·2호는 중량 673㎏에 최고속도 시속 280㎞, 항속거리는 509㎞였다.
최대 5인이 탑승할 수 있었고 인양줄(호이스트)과 인명구조낭을 장착했다.
까치 1·2호는 다양한 임무를 수행했다.
인명구조와 소화약제 공중살포 등 기본적인 구조·화재진압 활동부터 사이렌을 이용한 공중통제, 서치라이트 활용 수색, 공중방역과 산림방제, 홍수지역 정찰 및 구조, 공중 교통통제 등에 투입됐다.
1980∼90년대 서울의 재난 현장에는 어김없이 '까치'들이 있었다.
1985년 중구 다동 롯데빌딩 화재현장에서 5명을, 1984년 9월 풍납동·성내동 수해 때는 630명을 구조하는 등 1천명 이상을 구했다.
산불출동과 방역방제 활동은 수천회에 이른다.
1994년 10월 성수대교 붕괴, 같은 해 12월 아현동 가스폭발, 1995년 6월 삼풍백화점 붕괴 등 대형참사 때 공중지휘 통제를 맡았던 것도 이 헬기들이다.
까치 1·2호는 이후 여러 시·도가 소방헬기를 도입하면서 지역명과 번호를 붙이는 방식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이 가운데 '소방1호' 헬기는 1996년 8월 군자동 장안빗물펌프장 인근에서 항공방제 작업을 하던 중 중랑천변에 추락해 반파되면서 폐기됐다.
당시 기장은 중상을 입었다.
나머지 한대는 '서울005호'라는 이름으로 2005년 6월까지 활약하다 그해 8월 4일 항공대원들의 거수경례를 받으며 퇴역했다.
이 헬기는 25년간 3천91차례 출동해 2천983시간45분간 비행하면서 모두 942명을 구조했다.
지금은 서울보라매시민안전체험관에 전시돼있다.
현재 중앙119구조본부 소속 5대와 시·도 소방본부 소속 26대 등 모두 31대의 '까치 후배'들이 전국에서 활약하고 있다.
/연합뉴스
첫 소방헬기는 무슨 이름을 달고 어떤 활약을 했을까.
23일 소방청에 따르면 우리나라 최초 소방항공대는 서울시에 설치됐다.
항공대 설치 조례는 1983년 4월에 제정됐지만 실제로 소방헬기를 도입해 운항하기 시작한 것은 1979년 12월부터다.
우리나라 최초의 소방헬기를 도입하게 되기까지는 수많은 가슴 아픈 사고들이 있었다.
서울은 1970년대 급속하게 도시화가 진행되며 고층 건물이 크게 늘었지만 소방력은 그에 못 미쳤다.
163명이 사망한 1971년 대연각호텔 화재, 88명이 숨진 청량리역 대왕코너 화재 등 대형 참사 때마다 소방력 보강 필요성이 지적됐으나 소방차 구입비용도 해외 차관에 의지하던 시절이라 소방헬기 도입은 거론조차 되지 못했다.
그러다 1979년 4월 충무로 라이온스 호텔 화재 이후 소방헬기 도입 논의가 본격화했다.
당시 투숙객 5명이 숨지고 28명이 다쳤는데 사망자 중 2명이 육군 소속 헬기를 동원한 구조작업 도중 밧줄을 놓쳐 추락해 사망한 것이 계기가 됐다.
이에 서울시는 사고 20여일 뒤 '대형화재예방종합대책'을 발표하면서 서울 시내 31개 고층 건물에 헬기 착륙장을 만들고 전용헬기 2대를 도입해 항공소방대를 창설하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이후 공군 협조를 받아 소방대원들에게 공수훈련과 인명구조 출동 비행훈련 등을 실시했고 그해 12월에는 미국 휴즈(현 보잉)사에서 제작한 소방헬기 2대를 도입했다.
기종은 흔히 '잠자리 비행기'로 불리던 민수용 500MD다.
한 대는 면허생산을 하던 대한항공에 발주해 당시 국산 대형 소방차 7대 값과 맞먹던 1억5천만원 예산으로 제작했다.
나머지 한 대는 한국화재보험협회로부터 기증받았다.
한국 최초의 소방헬기인 이 두 대는 '까치 1호'와 '까치 2호'로 명명됐다.
까치 1·2호는 중량 673㎏에 최고속도 시속 280㎞, 항속거리는 509㎞였다.
최대 5인이 탑승할 수 있었고 인양줄(호이스트)과 인명구조낭을 장착했다.
까치 1·2호는 다양한 임무를 수행했다.
인명구조와 소화약제 공중살포 등 기본적인 구조·화재진압 활동부터 사이렌을 이용한 공중통제, 서치라이트 활용 수색, 공중방역과 산림방제, 홍수지역 정찰 및 구조, 공중 교통통제 등에 투입됐다.
1980∼90년대 서울의 재난 현장에는 어김없이 '까치'들이 있었다.
1985년 중구 다동 롯데빌딩 화재현장에서 5명을, 1984년 9월 풍납동·성내동 수해 때는 630명을 구조하는 등 1천명 이상을 구했다.
산불출동과 방역방제 활동은 수천회에 이른다.
1994년 10월 성수대교 붕괴, 같은 해 12월 아현동 가스폭발, 1995년 6월 삼풍백화점 붕괴 등 대형참사 때 공중지휘 통제를 맡았던 것도 이 헬기들이다.
까치 1·2호는 이후 여러 시·도가 소방헬기를 도입하면서 지역명과 번호를 붙이는 방식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이 가운데 '소방1호' 헬기는 1996년 8월 군자동 장안빗물펌프장 인근에서 항공방제 작업을 하던 중 중랑천변에 추락해 반파되면서 폐기됐다.
당시 기장은 중상을 입었다.
나머지 한대는 '서울005호'라는 이름으로 2005년 6월까지 활약하다 그해 8월 4일 항공대원들의 거수경례를 받으며 퇴역했다.
이 헬기는 25년간 3천91차례 출동해 2천983시간45분간 비행하면서 모두 942명을 구조했다.
지금은 서울보라매시민안전체험관에 전시돼있다.
현재 중앙119구조본부 소속 5대와 시·도 소방본부 소속 26대 등 모두 31대의 '까치 후배'들이 전국에서 활약하고 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