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화에서 17년째 홍보를 하고 있는 배재현 한화커뮤니케이션 부장(왼쪽)은
한화에서 17년째 홍보를 하고 있는 배재현 한화커뮤니케이션 부장(왼쪽)은 "다시 입사해도 홍보를 하고 싶다"고 말했다. 박원 한화큐셀 파트장은 "업에 대한 전문성을 지닌 사람이 홍보전문가가 될 수 있다"고 조언했다.
지금으로부터 20년전인 2000년대 초. 평일 오후 5시만 돼면 어김없이 서울 동아일보 사옥 앞으로 각 기업 홍보맨들이 몰려들었습니다. 이유는 각 신문사에서 발행한 다음날 가판을 보기 위해서죠. 당시만해도 스마트폰이 대중화 되지 않았기에 각사 홍보팀의 대리·과장들은 소속사 기사들을 찾아서 팩스로 또는 전화로 본사 차·부장에게 알렸습니다. 가판으로 발행되는 13부 안팎의 신문을 보노라면 저녁 8시가 훌쩍 넘습니다. 때론 안좋은 기사라도 실리는 날이면 홍보부장,임원 등과 함께 해당 신문사로 찾아가 '기사의 톤 다운'을 요구하기도 해야 했습니다. 이것이 기업 홍보팀 막내들의 주된 업무였습니다.

동아일보 사옥 앞에서의 가판 확인은 노무현 정부 말에 사라졌습니다. 지금은 스마트폰에 온라인 PDF서비스가 일반화 돼 사무실에서 손끝으로 클릭하면 해당 회사 기사들이 주르륵 뜨기에 더 이상 동아일보까지 갈 필요가 없어진 것이지요. 배재현 한화 홍보부장은 당시를 회상하면서 "최종판이 나오는 자정까지 확인후 퇴근할 때도 많았다"며 "신혼때는 집에 신문을 가지고 가서 아내와 함께 다시 읽으면서 잘못된 게 없는지를 확인하기도 했다"고 말했습니다. 세월이 흘러 방식은 바뀌었지만 여전히 지금도 홍보팀의 주된 업무중 하나는 각 언론사 기자들이 작성한 자사 기사를 확인하고 보고 하는 일 입니다. 2017년부터 홍보업무를 한 박원 한화큐셀 홍보파트장은 "원래 휴대폰없이도 사는 사람이었는데, 홍보를 하면서 틈만나면 스마트폰을 만지는 사람이 됐다"며 "딸이 '아빠는 맨날 핸드폰 만지고 노는 사람'"이라고 놀릴 정도"라고 말했습니다.

스마트폰으로 인해 '달라진 홍보맨의 세계'를 한화 홍보맨 2인을 통해 들여다 봤습니다. 인터뷰에는 17년째 홍보를 하고 있는 배재현 한화커뮤니케이션위원회 부장(46)과 '4년차 홍보맨' 박원 한화큐셀 파트장(36)이 응해 주셨습니다.
휴가중 새벽 2시 기자 전화 응대?
▶직장내 어떤 일을 하다가 홍보일을 하게 됐는지요
△배재현(배) : 2002년 한화생명에 영업관리직으로 입사했다. 2004년말 사보업무를 하고 싶어 가고 싶은 부서에 '홍보부'를 적어 홍보팀으로 발령받았다. 도중 보험영업 지점장으로 외도를 한 후 다시 7년 6개월째 홍보를 하고 있다.
△박원(박) : 2011년 한화시스템(옛 한화S&C) 구매팀으로 들어왔다. 한화글로벌 탤런트 프로그램에 선발돼 일본 한화큐셀재팬에서 마케팅업무를 했다. 이후 독일로 넘어가 2015년 하반기부터 독일법인에서 PM(프로덕트 매니지먼트), 마케팅, 해외PR 등의 업무를 맡아서 했다. 2017년 귀국후 한화큐셀 한국본사 글로벌마케팅팀(홍보,상표권,마케팅,대관업무)에서 홍보를 시작했다.

▶사내 홍보부는 어떻게 구성되어 있나요
△배 ; 한화그룹 전체의 홍보를 총괄하는 한화커뮤니케이션위원회가 있다. 그룹 홍보·브랜드 정책 등을 지원한다. 각 계열사의 임원·차부장급 홍보맨 17명이 일을 하고 있다.
△박 : 한화큐셀홍보는 사업·현업에 도움을 주기 위한 국내사업본부 직할조직이다. 팀장은 한국을 총괄하는 임원이다. 현재 언론홍보는 3명이다. 태양광 산업의 저변확대, 태양광 인식제고 등에 힘쓰고 있다. 재생에너지 초기 단계여서 회사실적·솔루션 등 회사자체 홍보를 한다. 산업통상자원부 등 유관기관과의 협력도 하고 있다.

▶온라인의 영향으로 홍보의 업무영역이 바뀌었나요
△배 : 미디어환경이 변했다. 과거에는 신문위주 홍보였다면 지금은 온라인 매체도 많아졌다. 1인미디어 SNS까지 비중이 높아져서 기업 홍보팀에서 유튜브,블로그,페북 등 자체 채널을 직접 운영하기도 한다.

▶홍보란 무엇인가요
△배 : 홍보는 사람이다. 논리적으로 설명해서 좋은 기사를 내고 위기관리를 논리적으로 할 수도 있지만 기자와의, 사람과의 일이다. 좋은 아이템이 있어도 사람을 만나야 이뤄진다.
△박 : 언론홍보에 국한하면 사람(네트워크)이 맞다. 광의적 의미로 홍보는 '사람+컨텐츠'다. 넓게보면 컨텐츠가 중요하다. 컨텐츠를 기획하는 컨텐츠 양상능력이 중요하다.

▶처음 홍보를 할때와 지금의 홍보는 어떻게 달라졌습니까
△배 : 홍보 처음 시작할 2000년 초에는 가판을 보러 동아일보사 앞에 직접 갔다. 저녁 5시30분이면 홍보쟁이 200명정도가 몰려왔다. 신문 가판 기사를 사진찍어 킨코스에 가서 팩스로 회사로 보냈다. 지금은 인터넷으로 검색을 하면 다 나오지만 옛날에는 종이신문보다 우리회사 기사를 놓치는 경우도 다반사였다. 때문에 퇴근했다가 다시 10시반에 회사로 소집되기도 했다. 동아일보 앞에서 가판을 보다보면 7~8시가 된다. 보통 주요신문 12부정도를 봤다. 노무현정부 말에 가판이 없어졌다. 지금도 한명은 7시30분까지 가판 확인한다. 오타나 수정할 기사를 요청하기 위해 신문사로 직접 가기도 했다. 때론 최종판(밤12시)까지 확인후 퇴근할때도 있었다. 지금은 온라인에서 ‘새로고침’만 하면 수정된 기사가 뜨지만...13부를 집에가서 다시 아내와 가판을 확인하기도 했다.
△박 : 처음은 그룹 홍보팀에서 태양광 홍보업무를 했다. 태양광에 대한 사업적인 깊이는 그룹홍보에서는 다루기 힘들기 때문에 태양광 컨텐츠, 큐셀홍보를 많이 했다. 독일과 달리 한국은 재생에너지에 대한 이해도가 그렇게 높지 않았다. 때문에 기자를 대상으로 태양광 강의를 진행하기도 했다. (전공인 교육학과가 이때 효과를 봤다) 태양광 강의 덕분인지 심도 깊은 기사가 나오게 됐다.


▶홍보도 각 산업별로 하는 업무가 다를것 같습니다
△배 : 한화생명에 있을때 보험 출입 기자는 50~60명밖에 안됐다. 금융업의 주된 홍보는 금융제도 홍보다. 보험사는 B2C기업 이기때문에 부정적인 기사가 나오면 영업에서 곧바로 전화가 온다. "그 기사때문에 계약서에 사인도 못하고 있다. 홍보팀은 뭐하냐"고 설계사들이 화를 낸다. 지금 한화그룹 홍보팀에서는 한번 자료를 만들면 출입기자 600명에게 보낸다.
△박 ; 계열사인데도 300명에게 메일을 보낸다. B2B업종은 홍보하기가 어렵다. 용어도 어렵고 이를 설명하기도 쉽지 않다. 우리가 매일 전기를 사용하지만, 어떻게 생산하고 오는 과정 등 새로운 소재가 개발되면 기존 소재와 치열한 이권싸움이 있다. 신소재에 대해 바로 홍보하는 게 어렵다. 태양광은 태양광에 대한 오해를 불식시키기 위해 연구한다. 보도자료는 주1회 정도다.

▶홍보맨의 주된 임무중 하나가 보도자료 작성인데
△배 : 한화생명에 처음 배치받았을 때 보험사 용어를 보도자료에 그대로 썼다가 욕을 바가지로 얻어 먹었다. 그 당시에는 직접 보도자료를 작성해서 부장에게 검사를 받으면 '빨간펜의 홍수'였다. 다시 초등학생으로 돌아간 기분이었지만 그렇게 자료 작성법을 배웠다. 요즘엔 스마트폰이 생겨 보도사진을 찍는데 편리해 졌지만, 한번 찍으면 수백장씩 찍게 돼 그 가운데 가장 마음에 드는 사진 몇장을 고르는데 많은 시간이 들 정도다.
△박 : 요즘에는 언론사용, SNS 카드뉴스용 보도자료를 다 다르게 작성해야 한다. 스마트폰이란 좋은 도구가 있지만 보도자료 작성은 도제식으로 교육한다. 특히 한화큐셀의 태양광 에너지 관련 용어는 우리가 사용하는 용어가 전세계 유일한 용어가 되고 있다는 자부심도 있다.

▶그럼 보도자료를 잘 쓸 수 있는 노하우가 있나요
△배 : 신문이 가장 모범답안이다. 홍보팀에 신참이 들어오면 무조건 신문 열심히 읽으라고 한다. 때론, 좋은 기사를 필사도 한다. 신문을 많이 읽다 보면 다른 회사 기사를 보면서 인사이트를 얻어 우리회사 아이템을 찾기도 한다.
△박 : 기자들의 이해를 돕기위해 추가적인 소스를 제공하기도 한다. 업계 동향은 물론 그래프, 관련 자료까지 추가해서 전달하는 식이다. 단순한 스트레이트 기사를 박스기사로 만드는 비법이다.
휴가중 새벽 2시 기자 전화 응대?
▶홍보맨의 24시가 궁금합니다
△배 : 홍보맨의 하루는 옛날이나 지금이나 크게 바뀐 것은 없다. 당직자는 새벽 4시에 출근한다. 6명이서 주 1회 순환 당직을 선다. 출근해서는 조간신문 스크랩(회사중심)을 한다. 매체가 많다보니 거의 7시에 끝난다. (비당직자는 보통 7~8시 출근한다.) 비당직자들은 출근 후 각자 맡은 매체의 신문 뉴스 검색한다.(홍보팀 안에는 신문 종합지, 경제지, 방송사 등을 나눠 해당 언론사 기자를 대응 하고 있다.) 언론보고가 끝나면 보도자료 등 보고 문서를 만든다. 점심은 거의 100% 기자랑 만나서 한다. 기자 미팅전에는 기자가 쓴 최근 기사를 보면서 대화주제를 생각한다. 오후에는 기자요청 자료 찾으면서 회사 관련 모니터링은 계속 한다. 오후 5시30분~7시까지는 신문 가판을 검색한다. 가판당직자는 방송사 뉴스 모니터링을 10시까지 해야 한다. 방송뉴스까지 끝나야 하루가 무사히 끝난다. 물론 회사 관련 뉴스는 홍보팀 단톡방에 공유한다. 옛날 만큼은 아니지만 저녁은 주로 기자들과 술자리가 있다. 내 휴대폰 네이버 뉴스창에는 '#한화' 등을 입력해 놨다. 그럼 알아서 웹이 매칭을 해 준다. (가끔 '#한화'로 검색어를 해 놓으면 '한화 US달러' '발생한화재'가 검색되어 시간을 잡아먹기도 한다고)
△박 : 홍보팀도 유연근무제를 실시한다. 85제(오전 8시출근 5시퇴근) 96제(오전 9시출근 6시퇴근)를 시행중이다. 점심도 1~2시간을 선택할수 있다는게 장점이다. 우리는 당직은 없지만 수시로 회사 관련 뉴스를 체크 한다. 휴대폰을 항상 손에 달고 있다. 주말 명절때도 습관적으로 포털 뉴스를 검색한다. 아내가 매일 “핸드폰으로 뭘하냐"고 물을 정도다. 아들도 “아빠는 맨날 핸드폰 만지고 논다”고 말한다. 이 때문에 집에서 남편과 아내 둘다 홍보하면 안된다. 저는 두시간 동안 전화통화 안되도 별 상관 안하는 사람이었는데 홍보일을 하면서 변했다. 포털 검색어는 회사 용어뿐이다.

▶홍보맨의 장단점은 뭔가요
△배 : 회사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진다. 매 시간 뉴스를 접하기 때문에 세상의 뉴스 트렌드를 따라 잡을 수 있다. 이는 사회적으로도 큰 자산이다. 다만, 24시간 쏟아지는 뉴스로 실시간 대응을 해야 하는 어려움도 있다. 심지어 주말뿐 아니라 휴가중에도 이슈 대응을 해야 한다. 한번은 휴가때 프랑스 파리로 여행을 갔는데 새벽 2시에 국제전화가 걸려와 대응을 한 때도 있었다. 휴가중이라고 전화를 꺼놓을 수가 없다. 김영란법,주 52시간 근무제와 코로나19로 저녁자리도 1차로 끝나는 경우가 많다. 저녁 술은 평균 주 2회정도 마신다. 술을 잘 마시는 홍보맨이 장점은 될 수 있다. 아직까지는 네트워킹 매개체로서 술이 일반적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술을 많이 마셨다고 다음날 출근을 면제 받지는 않는다. 때문에 체력이 좋아야 한다. 인천송도에 사는 홍보직원은 당직때는 새벽 2시30분에 일어나기도 한다. 최근 계열사는 새벽 5시 출근하면 오후 2시 퇴근하기도 한다. 옛날보다 많이 좋아졌다.

▶'워라밸'이 안되니 요즘 신입사원들에게는 홍보부는 기피부서일 것 같습니다
△배 : 과거에는 승진도 잘되고 핵심부서였다. 요즘엔 워라밸의 영향으로 기피부서 1위다. 똑같이 근무하지만 근무외에도 스마트폰을 만져야 하고 기자미팅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박 : 퇴근후 2~3회 술자리를 통한 네트워킹을 해야 하니 신세대들은 피곤해 하는 분위기다. 젊은 친구들은 인간관계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다. 비중이 줄어드는 것은 확실한 것 같다. 오고는 싶어하는데 자신없어 하는 친구가 많다. 물리적으로 저질 체력에 여가시간이 없다는 점에 기피한다. 사실 요즘 인기있는 해외사업팀, 기획관련부서도 일은 많으면서 워라밸이 없기는 마찬가지다.
최근 대기업 홍보실은 코로나19로 인해 격일 또는 격주로 재택근무를 시행중이다. 롯데월드타워에 있는 롯데지주 홍보실의 모습이다.
최근 대기업 홍보실은 코로나19로 인해 격일 또는 격주로 재택근무를 시행중이다. 롯데월드타워에 있는 롯데지주 홍보실의 모습이다.
▶홍보맨의 향후 전망은
△배 : 홍보는 크게 컨텐츠 생산과 리스크매니지먼트 두종류다. 홍보도 마케팅의 일종이다. 마케팅 기획으로 나가야 한다. 다만, 업에 대한 이해가 뛰어나야 한다. 신입직원 홍보맨을 뽑지 않는 이유다. 요즘엔 마케팅출신이 홍보로 많이 온다. 앞으로는 홍보전문가보다는 마케팅 전문가들이 홍보를 할 것 같다. 사원때는 현업의 업에 대한 이해도를 넓힌후 대리정도때 홍보로 오면 적절 할 것 같다.
△박 : 결국 업에 대한 전문성을 가지고 업에 대해 일정수준 지식을 쌓을려면 업을 잘 알아야 한다. 기업 이미지 제고는 재료가 있어야 한다. 현업을 잘 아는 사람이 홍보를 해야 베스트다. 역설적이지만 홍보전문가가 되려면 홍보만 해선 안된다. 하지만, 홍보전문가는 나중에 회사내에서 뭐든 할 수 있게 된다.

인터뷰 말미에 다시 몇년전으로 돌아간다면 '홍보를 다시 할 것인가'를 묻자 배 부장은 "10년이상 홍보를 해 보니 적성에 잘 맞는 것 같고, 다른 일은 잘 할 수 없을 것 같기도 하다"며 "다시태어나도 홍보를 할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홍보를 하고 싶어하는 대학생들과 후배들을 위한 한마디 요청에 박 파트장은 "장작이 있어야 불도 활활 잘 타오른다"며 "업의 전문가가 되고 싶은 사람이 지원했으면 한다"고 조언했습니다.
공태윤 기자 true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