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범계 법무부 장관(사진)이 한명숙 전 국무총리 사건 모해위증교사 의혹에 대해 취임 후 첫 수사지휘권을 발동했다. 박 장관은 과거 한 전 총리 사건 재판에서 검찰로부터 위증을 교사받았다는 의혹이 있는 김모씨에 대해 “대검찰청 부장검사회의를 열어 기소 타당성을 논의하라”고 지시했다. 헌정 사상 법무부 장관의 수사지휘권 발동은 이번이 네 번째로, 문재인 정부 들어서만 세 번째다. 이번 사안은 대검찰청이 이미 ‘무혐의’ 처분한 사안을 장관이 재검토하라며 수사 지휘를 내린 것이어서 지난해에 이어 법무부와 대검의 갈등이 재점화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한명숙 사건’ 두 번째 수사 지휘

법무부, 또 수사지휘권 발동…한명숙 구하기?
이정수 법무부 검찰국장은 17일 서울고등검찰청에서 브리핑을 열고 “법무부 장관은 검찰총장 직무대행에게 모든 부장이 참여하는 대검 부장회의를 개최하고 재소자 김씨에 대한 기소 가능성을 심의하라고 지휘한다”고 발표했다. 이어 “한동수 대검 감찰부장, 허정수 감찰3과장, 임은정 검사로부터 사안 설명 및 의견을 듣고 충분한 토론과정을 거치기 바란다”고 덧붙였다.

박 장관은 회의 심의 결과를 토대로 이 사건 공소시효 만료일인 오는 22일까지 김씨의 입건 및 기소 여부를 결정하라고 지시했다. 위증을 교사했다는 의혹은 당시 검찰 수사팀 검사들이 받고 있지만, 증언이 ‘거짓’이라는 점이 먼저 밝혀져야 교사 여부를 판단할 수 있는 만큼 우선 김씨에 대해서만 기소 여부의 타당성을 가리라고 한 것이다.

이를 두고 검찰 안팎에선 사실상 기소하라는 신호로 해석하고 있다. 또 법무부는 “(한 전 총리 사건 수사에서) 위법하고 부당한 수사 관행이 있었다고 판단한다”며 법무부와 대검의 합동 감찰도 지시했다.

이 사건은 2011년 한 전 총리 뇌물사건 재판의 증인이었던 한모씨와 최모씨 등이 지난해 4월 “수사팀 검사의 위증교사가 있었다”는 진정을 법무부에 내면서 불거졌다. 한 전 총리는 2010년 고 한만호 한신건영 대표로부터 불법 정치자금 9억원을 받은 혐의로 기소돼 2015년 대법원에서 징역 2년이 확정됐다. 그런데 최씨 등은 수사팀이 한 대표의 동료 재소자 2명을 포섭해 한 전 총리 측에 불리한 진술을 하도록 위증을 교사했다고 주장했다.

이에 서울중앙지검 인권감독관실은 지난해 7월 수사팀 검사들의 위증교사 의혹을 검토한 뒤 무혐의 결론을 냈다. 그러자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이 수사지휘권을 발동해 한동수 감찰부장이 재감찰하도록 했다. 대검이 지난 5일 당시 검찰 수사팀이 증인에게 위증을 강요했다는 의혹에 대해 “혐의를 인정할 만한 증거가 부족하다”며 재차 무혐의 결론을 내자, 이번엔 박 장관이 대검의 감찰 기록을 전달받아 검토한 뒤 수사지휘권을 재차 발동한 것이다.

“與 ‘제 식구 구하기’ 나섰다” 비판

이 사건의 공소시효는 오는 22일 만료된다. 따라서 박 장관이 한명숙 구하기의 마지막 수단으로 수사지휘권을 발동했다는 분석이다. 하지만 법조계 안팎에선 “제 식구를 구하려 직권남용을 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한 검찰 출신 변호사는 “법무부 장관이 수사지휘권을 발동한다고 하더라도 검찰총장 또는 총장 직무대행이 법리상 부당하다고 판단하면 따르지 않을 권한이 있다”며 “검찰이 이미 무혐의로 결론 낸 사건을 재수사하라며 수사 지휘를 내린 건 처음으로, 장관의 직권남용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한 현직 검사는 “현재 대검 부장 대다수가 ‘윤석열 징계’에 앞장선 친여권 성향의 인물이어서 공정성에 문제가 있을 수 있다”며 “‘사건의 공정성’을 이유로 장관이 수사지휘권을 행사한 것이라면서 부장회의에서 기소 여부를 판단하라는 건 어불성설”이라고 주장했다. 일각에선 “사실상 기소하라는 신호의 수사지휘권 행사보다 전문수사자문단이나 외부인이 참여하는 검찰수사심의위원회 소집을 지시하는 게 옳은 것 아니냐”는 의견도 나왔다.

안효주/이인혁 기자 j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