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유학시절 '칭찬왕' 지도교수 통해 스승상 배워
'천재가 되는 법'은 해결할 문제 항상 생각하는 것
내게 맞는 직장선택...함께 일하고 싶은 동료돼야
지난 29일 여성과학기술인의 10대 진로멘토링 ‘걸즈 엔지니어 톡’에 출연한 임혜숙 과학정보통신부 장관은 “삶의 가치관이 무엇이냐”는 한 학생의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걸즈 엔지니어 톡(Girl's Engineering Talk)은 지난해부터 10대 여중·고생들의 공학 분야 진출을 위해 과기부와 한국여성과학기술인육성재단(WISET)이 추진하는 이공계 전문가 강연이다.
과기부 첫 여성장관인 임 장관은 이날 30분 강연을 통해 여중·고생들에게 자신의 살아온 길, 선택의 갈림길에서 어떻게·왜 그 선택을 했는지를 사진과 글로 보여줬다. 그는 강연 초두에 “저의 이야기가 여러분들이 앞으로 선택의 갈림길에서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면서 강연을 시작했다. 강의 주제는 ‘Imagine Your Next’. 강연에서 임 장관은 자신의 삶의 궤적을 통해 매 순간 어떤 결정을 내렸고, 어떤 깨달음을 얻었는지 이야기했다. ◆세차례 국비유학 낙방했지만…
강연은 대학시절부터 장관이 되기까지의 삶의 궤적을 보여주는 한장의 슬라이드로 시작했다.
‘서울대 제어계측공학과 졸업→삼성HP 연구원→서울대 대학원 석사→미국 텍사스주 오스틴대 박사→Bell Lab연구원→이화여대 교수→대한전자공학회 첫 여성회장→국가과학기술연구회 이사장→과기부 장관’
언뜻 그의 이력만 보면 ‘꽃길’만 있었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그 이면에는 남모를 아픔도 많았다.
해외유학은 꿈도 꾸지 못하는 평범한 가정에서 태어난 임 장관 삶의 터닝 포인트는 ‘뉴스 한 줄’이었다. 그는 “대학 졸업 무렵 집으로 가는 버스안에서 들은 ‘올해도 정부는 국비유학생 100명을 선발합니다’란 문구에 가슴이 뛰었다”고 했다. 임 장관은 “아, 나도 유학을 갈 수 있겠구나란 생각에, 매일 밤마다 미국 대학 캠퍼스에서 책을 끼고 활보하는 꿈을 꿨다”고 했다.
하지만, 그 꿈을 이루기 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졸업 무렵 응시한 국비유학 장학생 선발 시험에서 보기좋게 탈락한 것. 졸업후 삼성HP 연구원 생활을 하면서도 꿈을 접을 순 없었다. 직장생활중 도전한 두번째 국비유학 시험에서도 낙방했다. 두번의 탈락에도 물러설 수 없었다. 임 장관은 뒤늦게 왜 낙방했는지를 알고는 삼성에 과감히 사표를 던졌다. 그는 “당시 국비유학생의 대부분은 석사학위자였었다”면서 “당장 회사를 그만두고 서울대 대학원에 지원했다”고 말했다. 3전4기. 마침내 석사학위를 취득하고서야 꿈에도 그리도 미국 유학길에 오를 수 있었다.
미국 텍사스주 오스틴대에서는 좋은 스승을 만나는 복을 얻었다. 임 장관은 “지도교수님은 ‘칭찬왕’이었다”며 “작은 결과에도 항상 ‘슈퍼 엑설런트(Super Excellent)’라며 칭찬을 아끼지 않으셨다”고 했다. 그 덕에 더 열심히 공부할 수 있었다.
미국에서의 첫 직장은 미국의 전화사업 기업체인 벨시스템이 경영하는 연구소 ‘Bell Lab’이었다. 이후 헤드헌터의 도움으로 두번째 직장 시스코시스템즈로 옮겼다. 임 장관은 거기서 컴퓨터 네트워크라는 신기술을 배우게 됐다고 했다. 그리고 한국의 후배들을 위해 2002년 이화여대로 자리를 옮겼다.
임 장관은 이대 공대학장과 한국전자공학회장을 맡으면서 '공직의 꿈'을 꿨다고 했다. “공대학장과 전자공학회장을 하면서 좋은 논문을 쓰는 것도 보람있지만, 이공계 발전을 위한 정책을 만드는 것도 중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그리고 올해 1월 25개 정부 출연연구소를 이끄는 국가과학기술연구회 이사장이 됐다. 이어서 올 5월에는 우리나라 과학기술의 현재와 미래를 책임질 과기부 장관에 올랐다. 임 장관은 “과기부의 영역은 나노기술부터 우주과학까지 영역이 무한대”라며 “미래한국을 좌우하는 부처장으로서 굉장히 책임감을 느낀다”고 말했다. ◆임 장관이 공개한 ‘직장생활 성공 방정식’
이공계 출신의 임 장관은 강연에서 자신만의 공부 노하우를 공개하기도 했다. 그는 “천재가 되는 법을 소개하겠다”면서 노벨물리학상 수상자인 리처드 파인만 교수의 말을 인용했다. “해결해야 할 문제를 머릿속에 넣고 끊임없이 생각하고 새로운 방법이 생각나면 그걸 적용하는 거예요. 어쩌다 한번 그 적용이 잘 되면 사람들은 ‘어, 이 친구가 어떻게 이걸 해냈지? 하면서 천재네’하고 말할 겁니다.” 임 장관은 파인만처럼 이대교수시절 풀리지 않는 문제가 있으면 머리에 넣어두고 양치질을 하거나 차안에서 심지어 잠을 잘때도 생각하곤 했다. 그래서 아침에 눈을 뜨면 밤새 떠오른 아이디어를 빨리 학교에 가서 제자들에게 이야기 해주고 싶어 날마다 아침이 설렜다고 했다.
올해 58세인 임 장관은 그동안의 삶에서 깨달은 ‘직장생활의 성공 방정식’도 소개했다. 그는 “직장선택에서는 자신의 가치관에 맞는 ‘나’다운 ‘나’에게 맞는 일을 선택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입사후에는 그 직장에서 내가 꼭 필요한 이유와 다른 이와 차별화된 나만의 가치는 무엇인지를 고민해야 한다고 했다. 또한, 일할때는 동료와 경쟁이 아닌 함께 성장하는 관계라는 마인드로 일할 필요가 있다고 전했다. 그는 “결국은 함께 일하고 싶은 사람이 되는 것이 중요하다”며 “그러기 위해선 상대를 먼저 이해하고 공감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강연이 끝난후 10대들은 “큰 동기부여가 됐다” “직접 현장에서 듣지 못해 아쉽다” 등의 반응을 보였다. 질의 응답시간에 “향후 전망이 되는 공학분야가 어딘가요”란 질문에 그는 “우주기술, 통신 네트워크 G6, 바이오, 반도체 기술이 될 것”이라고 했다. 임 장관은 “미래 사회에서 SW기술은 누구나 배워야 하는 기본 언어”라며 “데이터 활용 능력을 키우면 금상첨화”라고 덧붙였다.
공태윤 기자 true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