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막바지다. 무더위가 한풀 꺾이면서 날씨가 시원해졌다. 장질환은 사람들이 방심하기 쉬운 ‘늦여름’을 노린다. 다른 계절에 비해 비교적 고온다습한 환경을 통해 살모넬라균, 비브리오균 등 세균이 퍼진다. 최근 급성 장염 환자가 늘고 있는 이유다. 위장이 세균에 감염되면 구토, 설사, 전신 무기력 등의 증상이 나타난다.

만약 복통, 설사 등의 증상이 수주간 계속된다면 ‘염증성 장질환’을 의심해볼 필요도 있다. 크론병 등 면역체계에 이상이 생겨 만성적으로 장에 염증이 생기는 질병이다. 최근 서구화된 식사습관 등으로 인해 10~30대 젊은 층 환자가 늘고 있다. 여름철 세균으로 인한 급성 장염과 크론병 등 각종 장질환의 원인과 증상을 살펴봤다.

장염 걸리면 고열·오한도 동반

여름철에 자주 생기는 급성 장염은 바이러스 등 세균에 의해 생긴다. 쉽게 말하면 오염된 음식이나 물을 먹어서 생기는 것이다. 세균의 종류는 다양하다. 황색포도구균·노로바이러스는 구토 증상을 일으키고, 클로스트리듐·로타바이러스·아데노바이러스 등은 설사를 유발한다. 최근 경기 성남시 김밥 전문점에서 발생한 집단 식중독의 원인이었던 살모넬라균은 복통과 발열, 혈변 등을 동반하기도 한다.

급성 장염에 걸리면 고열, 두통, 오한 등도 나타난다. 언뜻 느끼기엔 코로나19 증상과 비슷하지만, 급성 장염은 배꼽 주위를 눌렀을 때 아픈 것이 특징이다. 배꼽 주변이 아니라 오른쪽 아랫배에 통증이 느껴지는 맹장염과는 구분된다. 장염에 걸리면 복부에 가스가 차서 소화가 잘 안 되고, 배 속이 가득 찬 듯한 팽만감이 느껴진다. 장에 염증이 생기면서 수분과 전해질이 흡수되지 않아 설사가 잦아진다.

대부분 이들 증상은 수일 내로 자연스럽게 사라진다. 하지만 복통이 심하거나 38도 이상의 고열이 나면 병원을 찾는 게 좋다. 특히 영유아 및 아동, 노인, 산모, 기저질환자 등 고위험군은 증상이 악화되는지 잘 살펴봐야 한다. 구토와 설사가 계속되면 탈수 증상이 나타나거나 전해질이 부족해 기절하는 경우도 있다. 나트륨, 칼륨 등 전해질은 신경과 근육을 조절하고 체내 수분 균형을 유지하는 역할을 한다. 전해질이 부족해지면 온몸에 힘이 빠지고 무기력해진다.

2030대는 크론병 주의보

이런 증상이 저절로 사라지지 않고 수주간 지속된다면 염증성 장질환을 의심해볼 필요가 있다. 크론병이 대표적이다. 염증이 장의 일부분에만 생기는 급성 장염과 달리, 크론병은 입에서 항문까지 장의 모든 부위에서 염증이 드문드문 나타난다. 크론병에 걸리면 복통, 구토, 설사와 함께 혈변, 발열, 피로, 빈혈, 항문 주위의 만성적인 통증, 빈혈, 체중 감소 등이 동반된다. 간혹 피부에 1~5㎝ 정도의 홍반이 발생하거나 눈부심, 시력 저하 등이 함께 나타나기도 한다.

크론병은 20~30대 환자가 많다. 지난해 크론병으로 병원을 찾은 환자 2만5476명 중 40%(1만355명)가 20~30대였다. 성별로 보면 남성이 1만7251명으로 여성 환자(8225명)의 2배 이상이었다. 특히 크론병은 대장과 소장의 연결점인 회맹부에 발병하는 경우가 가장 많다. 회맹부는 비타민D 흡수와 대사를 담당한다. 크론병에 걸리면 관절통·관절염·골다공증 등 뼈가 약해지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박상형 서울아산병원 소화기내과 연구팀에 따르면 염증성 장질환 환자들은 일반인에 비해 척추·고관절 골절 등 주요 골절 위험성이 약 24% 높았다.

크론병의 원인은 아직 정확히 밝혀지지 않았다. 전문가들은 서구화된 식생활, 흡연, 항생제 남용, 스트레스 등이 복합적으로 면역체계에 악영향을 미쳐 발병하는 것으로 추정한다. 특히 흡연자는 수술 후에도 크론병이 재발할 가능성이 높다는 설명이다. 가족력도 영향을 미친다. 질병관리청에 따르면 크론병 환자의 약 25%는 가족이나 가까운 친척이 염증성 장질환을 앓고 있었다.

크론병 환자, 항염증약 꾸준히 복용해야

장질환은 어떻게 치료해야 할까. 급성 장염은 무엇보다 ‘먹는 것’에 유의해야 한다. 설사가 지속되면 ‘아예 금식하는 것이 낫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자칫 탈수로 이어질 수 있다. 장염 환자는 물 대신 전해질이 풍부한 스포츠 음료를 마시는 것이 좋다. 죽처럼 가벼운 음식을 먹어 위장에 부담이 가지 않도록 하고, 가급적 우유·치즈 등 유제품은 피해야 한다.

장염은 예방도 중요하다. 고기와 생선 등은 구입한 뒤 반드시 한 시간 안에 냉장 보관해야 하고, 여기서 흘러나오는 육즙은 다른 음식과 닿지 않도록 보관해야 한다. 48시간 안에 요리하지 않을 경우엔 냉동 보관이 필수다. 냉장실 온도는 4도 이하, 냉동실 온도는 영하 18도 이하가 적당하다. 살모넬라균이 번식하기 쉬운 계란은 냉장고에서 가장 온도가 높은 문 쪽에 보관하지 말고, 가급적 안쪽에 두는 것이 좋다.

급성 장염이 아니라 크론병이라면 염증을 완화할 수 있는 약물을 꾸준히 복용해야 한다. 지정선 가톨릭대 인천성모병원 소화기내과 교수는 “크론병은 완치보다는 지속적으로 관리해야 하는 만성적 재발성 질환”이라며 “증상이 호전됐다고 치료를 중단하면 대부분 재발하고 합병증의 위험이 증가한다”고 말했다. 장 내 염증이 심하지 않다면 항염증제인 ‘설파살라진’, ‘메살라민’ 등을 먼저 사용한다. 다만 두통, 구토, 복통 등이 부작용으로 나타날 수 있다.

염증이 심하다면 부신피질호르몬 분비를 억제하는 ‘히드로코르티손’, ‘덱사’, ‘메드론’ 등을 쓸 수 있다. 항염증 효과가 뛰어나 증상 완화에 도움이 된다. 하지만 장기간 투여하면 얼굴이 붓거나 여드름, 식욕 및 체중 증가, 속쓰림 등 부작용이 나타날 수 있다. 혈관이 약해져서 상처가 잘 낫지 않고 면역력이 떨어질 수도 있어 복용 후에는 예후를 잘 지켜봐야 한다.

크론병이 빠른 속도로 진행되면 응급수술이 필요할 때도 있다. 수술은 병변 부분을 잘라낸 뒤 건강한 부분의 장을 연결하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지 교수는 “크론병은 장의 섬유화 및 협착을 일으켜 창자 막힘, 장 내 천공(미세한 구멍) 등으로 이어져 수술이 필요한 경우도 흔하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