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의료가 담당하는 환자 비율이 10%도 채 되지 않는 한국은 코로나19와 같이 대규모 감염병 재난이 생겼을 때 대처하기가 너무 힘든 구조입니다.”

'이건희 회장 주치의' 이종철 창원보건소장 6일 퇴임…"50년 의료인생, 고향 보건소서 마쳐 행복"
경남 창원보건소 근무를 끝으로 50년 의료인의 길을 마무리하는 이종철 창원보건소장(73·사진)은 한국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국내 공공의료의 현주소를 알고 싶다면 보건소를 보라”고 말했다.

통합 전 마산이 고향인 이 소장은 2018년 2월 창원보건소장으로 부임해 4년 임기를 6일 마무리한다. 창원시가 개방형 직위로 공모한 창원보건소장 자리에 그가 응시했다는 소식만으로도 당시 지역에서는 큰 화제였다. 4급 보건소장에 어울리지 않을 화려한 이력 때문이었다.

서울대와 대학원을 졸업한 이 소장은 1977년 서울대병원 내과 전공의를 시작으로 한양대 및 성균관대 의과대학 교수, 삼성서울병원장, 삼성의료원장 등을 지냈다. 고(故) 이건희 삼성 회장의 주치의로도 이름을 알렸다.

1973년에 의대를 졸업해 올해로 50년째 의료인의 길을 걸어왔다. 이 소장은 “퇴직 후에는 고향에 오고 싶다는 것과 어렵고 힘든 이웃에 도움을 주는 의사이고 싶다는 두 가지 생각뿐이었다”며 “보건소는 내 생각에 딱 들어맞는 곳이었다”고 회고했다.

그가 공공의료에 본격적으로 관심을 갖게 된 건 삼성의료원장직에서 물러난 뒤 미국 존스홉킨스대 보건대학원에서 보건학을 공부하면서부터다. 이 소장은 “존스홉킨스대 첫 강의를 지금도 잊을 수 없다”고 했다.

“한국처럼 급속하게 경제발전을 이룬 나라에서 일어날 수 있는 첫 번째 현상이 빈부격차이며, 돈의 격차에 따라 수명이 달라진다는 사실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어요. 정확하게 상위 20%와 하위 20%의 건강수명은 11년이나 차이가 나지요.” 이 소장은 “이 격차를 줄이는 역할을 하는 게 공공의료이자 정부의 책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지역 보건소장으로 근무한 지난 4년은 그에게 국내 공공의료 민낯을 그대로 보여줬다. 이 소장은 “민간의료가 하기 싫은 것, 이익이 나지 않는 것, 초기 투자가 많이 필요한 것은 공공 부문에서 할 수밖에 없다”며 “하지만 우리 의료 현실은 민간과 공공 비중이 9 대 1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또 “인구 100만 명이 넘는 창원에 보건의료에 대한 컨트롤타워 역할을 할 보건국이 없다”며 “보건의료 분야 인적 자원을 배출할 의대나 약대, 치대, 한의대조차 없는 곳이 창원”이라고 안타까워했다.

의료 현장에서 신종플루와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에 이어 코로나19까지 경험한 그였기에 공공의료 강화는 더 절실하게 다가온다. 이 소장은 “공공의료의 첨병이라고 할 수 있는 보건소를 보면 안쓰럽기 그지없다”며 “지금 당장 역학조사관을 키우고 현장을 지키고 있는 직원에게 더 많은 기회와 보상을 제공해 일할 의욕을 북돋워야 한다”고 말했다. 퇴임 이후의 삶에 대해 이 소장은 “의료인으로 다양한 경험을 한 저는 축복받은 사람”이라며 “우리나라 공공 및 민간의료가 어떻게 나아가면 좋을지 글을 쓰고 기회가 되면 후배 의료인에게 도움도 주고 싶다”고 말했다.

창원=김해연 기자 hay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