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이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건설공사 발주자를 중대재해처벌법 적용 대상에서 제외하기로 하면서 공사를 의뢰했다는 이유만으로 처벌받지 않을까 우려했던 기업들은 걱정을 덜 전망이다. 다만 발주자가 공사에 대한 실질적 지배력이 있다고 판단되는 경우엔 중대재해법을 적용할 수도 있어 “100% 안심할 수 없다”는 의견도 나온다.

발주자, ‘중대재해 공포’ 덜 듯

"실질적 공사관리 안하는데…발주자 처벌 과도"
산업계에선 중대재해법 시행 전부터 “건설공사 발주자도 법 적용 대상에 포함될 공산이 크다”는 우려가 끊이지 않았다. 공사를 의뢰한 주문자이긴 하지만 공사현장에서 설계 변경 요구 등을 통해 영향력을 발휘한다는 의견도 적지 않았기 때문이다.

산업안전보건법 등 기존의 산업재해 관련 법이 발주자에 여러 안전보건 확보 의무를 요구하고 있기도 하다. 수사기관에서 법을 넓게 해석하면 발주자에도 중대재해법을 들이댈 여지가 있다는 의견에 힘이 실렸다.

외국에서 발주자에 더 많은 책임을 부여하는 쪽으로 안전보건 관리 체계가 바뀌고 있다는 것도 이런 분위기 조성에 한몫했다는 평가다. 미국에선 발주자가 자체 안전관리 지침을 마련하고, 근로자와 공사 건물에 대한 건설현장 감독관의 점검 결과를 확인해야 한다. 영국에서도 발주자가 산업안전보건청으로부터 안전 관리 매뉴얼을 별도로 제공받고 종합안전관리자를 통해 건설현장 점검 결과를 보고받도록 돼 있다.

검찰이 주목한 건 공사현장에 대한 발주자의 지배력이다. 대검은 ‘중대재해법 벌칙 해설’을 통해 “발주는 민법상 도급계약의 일종이지만 발주자는 종사자가 직접 노무를 제공하는 사업 또는 사업장에 대한 실질적인 지배·관리·운영을 하는 자가 아닌 주문자”라고 선을 그었다.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중대해재법을 적용하기 어렵다고 판단한 것이다. 그동안 “중대재해에 엄정 대처하겠다”고 목소리를 높여 온 것과는 대조적인 모습이다.

법 시행 초기부터 잘못된 판단을 내릴 경우 뒤따를 후폭풍이 만만치 않다는 점을 고려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법조계 관계자는 “검찰이 건설 공사 발주자를 재판에 넘긴 뒤 패소하면 ‘무리한 기소’라는 비판을 받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법조계 “무조건 면책 아니야”

검찰의 이 같은 기본 방침에도 불구하고 발주자가 모든 사고에서 중대재해법 적용을 피할 수 있다고 장담하긴 어렵다는 의견도 적지 않다. 건설공사에 대한 실질적인 지배력이 있다고 판단될 때는 검찰이 발주자에도 중대재해법을 들이댈 여지가 있어서다.

기업이 운영 중인 사업장 안에 건물을 짓는 공사를 발주하는 경우가 대표적이다. 검찰은 중대재해법 해설서에 “기업이 사업장 내에서 이뤄지는 건설공사를 발주한 경우 그 시설, 장비, 장소 등에 대해 실질적으로 지배·운영·관리하는 책임이 있을 수 있다”고 명시했다.

법조계에선 기업이 기존 공장을 증축하거나 유지·보수하기 위해 외부 업체에 공사를 의뢰했는데 공사현장에서 사고가 발생할 경우 발주자에 대한 중대재해법 적용 여부를 두고 법리해석 다툼이 벌어질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있다. 공장 건물 지붕을 보수하려던 작업자가 추락해 사망하거나, 공사현장 근처에서 해당 공사와 관련이 없는 크레인이 오작동해 현장에 있는 작업자가 사고를 당하는 경우 등이 대표적인 사례로 거론된다.

한 대형 로펌 변호사는 “수많은 조건이 동시에 충족돼야 하기 때문에 발주자까지 중대재해에 대해 책임을 질 가능성은 작지만 100% 안심할 수 없다”며 “발주자들도 사전에 법이 적용될 조건 등을 면밀히 살피고 대비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김진성/최진석 기자 jskim1028@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