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명 계약했는데…"옵션 못주겠다"
고려대 3학년에 재학 중인 김승현 씨(24)는 최근 집주인의 계약 위반으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2020년 10월 김 씨는 이듬해 2월부터 2022년 3월까지를 거주 기간으로 하는 원룸 임대차 계약을 맺고, 특약으로 가스·냉장고·세탁기를 옵션으로 받기로 했다. 그러나 집주인은 가스 등 옵션을 일절 제공하지 않았다. 집 주인은 "입주가 늦어져 4개월 동안 방이 비었는데 무슨 옵션이냐"고 오히려 큰소리를 쳤다. 김 씨는 결국 가스, 냉장고, 세탁기를 직접 설치해야 했다.지난달 계약 기간이 끝나자 역시나 보증금 반환을 둘러싼 분쟁이 벌어졌다. 특약사항으로 이주 예정 기일을 명시했음에도 불구하고 집주인 A씨는 보증금을 돌려줄 수 없다고 버텼다. 수시로 예비 세입자를 데려와 방 구경을 시켜줘야 한다며 문을 열어달라고 요구하기도 했다. 김 씨는 “임대인이 멋대로 예비 세입자에게 ‘이 친구(김 씨)가 가져온 가스와 세탁기 모두 드리겠다’고 말했다”며 하소연했다.
김 씨는 계속된 집주인과의 마찰에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할 수 있다는 불안감까지 겹쳐 극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렸지만 어쩔 수 없었다. 소송은 막막하고, 언제 어떤 식으로 보복을 받을지 모른다고 두려웠다. 집주인의 횡포에 피해를 당하는 대학생은 비단 김 씨 뿐만이 아니다. 서울시 전월세보증금지원센터(지원센터)가 접수한 임대차 관련 상담 건수는 2020년 3만 9335건, 지난해엔 3만 4865건의 상담 실적을 기록했다. 주택도시보증공사(HUG)가 임대인을 대신해 임차인에게 보증금을 우선지급한 건수도 2020년 4415건, 지난해 5036건에 달한다. 신동철 서울시 주택정책과 주무관은 “대학생들의 경우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하거나 유지수선 비용을 보증금에서 임의로 공제해 분쟁을 겪는 사례들이 많다”고 설명했다.
전화·문자 기록 철저히 남겨야
대학생 혼자 임대인과의 다툼을 감당하기는 쉽지 않다. 소송을 통한 해결은 비용이 많이 들고 절차가 복잡하다. 보증금이 소액일 경우 정식 소송을 하면 배보다 배꼽이 더 큰 경우도 많다.전문가들은 대한법률구조공단, LH한국토지주택공사, 한국부동산원 등에서 제공하는 주택임대차 분쟁조정위원회의 조정 절차를 적극적으로 이용할 것을 조언한다. 6개월에서 길게는 1년까지 걸리는 소송에 비해 조정 절차는 접수 후 최장 90일, 보통 30일 전후로 분쟁을 해결할 수 있다. 대학생의 경우 비용도 2만~3만원 안팎으로 저렴하다. 조정이 성립될 경우 집행권원으로 인정돼 판결과 비슷한 효력을 얻는다. 최재석 법률구조공단 서울조정위원회 사무국장은 “임대인과 임차인간 감정적 문제도 해결하려고 노력한다”며 “학생 혼자 속앓이 하지 말고 적극적으로 분쟁 조정 절차를 이용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다만 조정절차는 당사자 모두의 양보가 전제돼야 하는 만큼 완전한 보상을 얻고 싶다면 소송을 통한 해결을 생각해봐야 한다. 고형석 법무법인 차율 대표변호사는 “조정 절차는 물론 재판 과정에서도 임대인과 주고받은 전화, 문자 하나하나가 중요한 자료로 사용된다”며 기록을 철저히 보관할 것을 당부했다. 고 변호사는 “학교에서 제공하는 법률서비스를 이용한다면 학생 입장에서 느끼는 법적 절차에 대한 부담감을 줄일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광식 기자 bumer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