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 체력단련 이벤트! "같이 운동하자는 것도 직장내 괴롭힘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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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경 CHO INSIGHT
<사례>
“아니, 제가 당장 스벤데 500을 치라고 한 것도 아니고, 무슨 보충제 영양제를 사라고 강요한 것도 아녜요. 업무 관련도 없는 걸 가지고. 이게 어떻게 직장 내 괴롭힘이 됩니까?”
“다 좋은데 말이죠…….” 고충처리담당자는 한숨을 푹 쉬었습니다.
사건은 이렇게 시작됐습니다. 어느날 회사에서 ‘체력단련비’를 지원한다는 이벤트 공고가 내려왔습니다. 무려 개인별로 3년분에 달하는 프리미엄 헬스장 이용료 또는 그에 준하는 수준의 금품을 지원하겠다는 것인데요, 단, 조건이 있었습니다. ①원하는 직원들끼리 회사의 건강문화 증진을 위한 프로젝트팀을 구성하고, ②팀 활동내역을 ‘Before-After' 방식으로 제출하라는 것이었습니다. 반드시 근육질의 몸을 만들어야 하는 것은 아니고, 가령 당수치, 요산수치, 혈압 같은 지표들이 개선되는 것도 포함이었습니다.
공고가 내려온 직후, 회사에는 무수히 많은 프로젝트 팀이 생겼습니다. 그중 A와 B는 총 6명으로 구성된 '헬서팀' 소속이었고, B는 헬서팀의 팀장이었습니다.
B는 회사 내에서 운동을 열심히 하기로 유명한 사람이었습니다. B는 15년차 차장으로 업무에 치여 바쁜 와중에도, 매일 점심시간에 헬스장에 들러 운동을 하거나 늦게까지 야근을 하고도 헬스장에 들렀다가 퇴근하는 사람이었습니다. 물론 B는 “헬스는 고립”이라며 그 누구에게도 운동을 강요치 않았고, 혼자서 묵묵히 도를 닦듯이 운동에 매진할 뿐이었습니다.
그런데 B가 직접 헬서팀을 구성해 팀장을 맡게 되면서는 조금 달랐습니다. B는 “일단 헬서팀에 참여하게 된 이상 저를 따라와주셔야 합니다”라며, 팀원들에게 직접 프로그램과 식단을 짜주고, 자신과 함께 운동하도록 하는 등 열정적으로 팀원들을 이끌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래서 A는 엄청나게 후회했습니다. 비록 본인이 자발적으로 헬서팀에 참여하기는 했지만, 이렇게 고될 것이라고는 상상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B가 짜준 운동 프로그램은 A에게 너무 가혹한 구성이었고, 심지어 주말도 없이 매일 운동하는 B를 따라다녀야 했기에 운동량은 지나치게 많았습니다. A는 출근길엔 좀비, 퇴근길엔 피곤한 좀비같은 행색이 되고 말았습니다.
물론 A는 직접 프로그램이나 식단까지 짜주는 B의 열정에 대해서는 감사한 마음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B의 명령에 따라 모든 일정을 B에게 맞추어야 했던 것입니다. 점심시간엔 늘 운동을 했고, B의 업무가 밀리면 계속 기다리다가 퇴근시간을 함께 맞추어야만 했고, 주말에도 회사 근처 헬스장으로 출근해야 했습니다. 하루는 A가 부서장에게 연차 신청 결재를 올렸는데, 어떻게 알았는지 B가 메신저로 “내일 같이 운동해야죠. 연차휴가 취소하세요”라고 해 A가 연차휴가 신청을 취소하는 일까지 생겼습니다.
일이 이렇게까지 되자 A는 체력적으로 너무 힘들었고, 심지어 연차휴가도 제대로 못 쓰게 하는 것은 직장 내 괴롭힘으로까지 느껴져, 결국 고충처리담당자에게 이 사실을 신고하고 말았습니다.
이 사건, B가 A에게 직장 내 괴롭힘을 했다고 볼 수 있을까요?
<판단>
세상 대부분의 일에는 '중도'라는 것이 있습니다. 적당한 선을 지키면 된다는 의미입니다.
위 사실관계에서 회사에서 주최한 이벤트에 참여하기 위해 자발적으로 팀을 구성하고 함께 운동을 한다는 것까지만 선을 긋는다면, 직장 내 괴롭힘이라는 요소가 끼어들 여지는 없을 것입니다. 물론 회사에서 이벤트를 주최했기 때문에 구성된 팀이기는 하나, 업무상 지휘명령으로 운영되거나 각 담당직무와 관련되는 등의 여지가 적어 업무관련성이 배제될 여지가 있고, 설사 업무관련성이 인정되더라도 적정범위를 초과했다고 보기는 어렵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A는 정해진 근로시간 이후에 비자발적으로 회사에 남아 있어야 한다거나 주말에도 나가야 하는 등 개인시간을 지나치게 빼앗겼고, 상급자의 명령에 의해 연차휴가를 취소함으로써 근로기준법 제60조에서 보장하는 연차휴가 사용권(시기지정권)까지도 박탈되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A가 알아서 자기 시간을 챙겨야 한다고 볼 수도 있겠지만, 상급자-하급자, 팀장-팀원 관계에서 B의 명령을 A가 따르지 않기란 쉽지 않을 것입니다.
즉, B는 굳이 넘지 않아도 될 선을 넘으면서까지 A의 권리를 침해하였고, 업무상 적정범위를 초과한 행위로써 A의 근무환경을 악화시킨 것으로 인정될 만한 상황을 만들어버린 것입니다. 따라서 직장 내 괴롭힘에 해당된다고 판단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물론 B의 행위가 중징계에 이를 정도로 아주 중한 수준의 직장 내 괴롭힘이라고 보이지는 않습니다. A가 B에게 갖는 감사한 마음도 있는 것으로 보이는 바, 통상 이와 같은 경우 사건 초기의 감정이 소강된 이후에는 화해의 여지가 있을 것으로 예측하기도 합니다. 경우에 따라 양 당사자가 동의한다는 전제에서, A가 헬서팀에서 탈퇴하거나, B가 헬서팀 운영을 조금 덜 타이트하게 하는 등 직장 내 괴롭힘 성립 여부를 결론내리기 이전에 양 당사자가 선택할 수 있는 조정안 역시 다양할 것입니다.
재차 강조하자면, '중도'를 지킴으로써 직장 내 괴롭힘으로 인정될 수 있는 많은 행위들이 예방될 수 있을 것입니다. 회사에서도 위 사례처럼 조직문화 형성을 위한 이벤트를 기획할 때에는 직원들이 지나치게 이벤트에 과몰입하지 않도록 하는 조치가 필요합니다. 이벤트 참여 보상을 적정한 선으로 통제하거나, 이벤트 참여 시 유의사항을 배포하는 것도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곽영준 행복한일연구소/노무법인 노무사
“아니, 제가 당장 스벤데 500을 치라고 한 것도 아니고, 무슨 보충제 영양제를 사라고 강요한 것도 아녜요. 업무 관련도 없는 걸 가지고. 이게 어떻게 직장 내 괴롭힘이 됩니까?”
“다 좋은데 말이죠…….” 고충처리담당자는 한숨을 푹 쉬었습니다.
사건은 이렇게 시작됐습니다. 어느날 회사에서 ‘체력단련비’를 지원한다는 이벤트 공고가 내려왔습니다. 무려 개인별로 3년분에 달하는 프리미엄 헬스장 이용료 또는 그에 준하는 수준의 금품을 지원하겠다는 것인데요, 단, 조건이 있었습니다. ①원하는 직원들끼리 회사의 건강문화 증진을 위한 프로젝트팀을 구성하고, ②팀 활동내역을 ‘Before-After' 방식으로 제출하라는 것이었습니다. 반드시 근육질의 몸을 만들어야 하는 것은 아니고, 가령 당수치, 요산수치, 혈압 같은 지표들이 개선되는 것도 포함이었습니다.
공고가 내려온 직후, 회사에는 무수히 많은 프로젝트 팀이 생겼습니다. 그중 A와 B는 총 6명으로 구성된 '헬서팀' 소속이었고, B는 헬서팀의 팀장이었습니다.
B는 회사 내에서 운동을 열심히 하기로 유명한 사람이었습니다. B는 15년차 차장으로 업무에 치여 바쁜 와중에도, 매일 점심시간에 헬스장에 들러 운동을 하거나 늦게까지 야근을 하고도 헬스장에 들렀다가 퇴근하는 사람이었습니다. 물론 B는 “헬스는 고립”이라며 그 누구에게도 운동을 강요치 않았고, 혼자서 묵묵히 도를 닦듯이 운동에 매진할 뿐이었습니다.
그런데 B가 직접 헬서팀을 구성해 팀장을 맡게 되면서는 조금 달랐습니다. B는 “일단 헬서팀에 참여하게 된 이상 저를 따라와주셔야 합니다”라며, 팀원들에게 직접 프로그램과 식단을 짜주고, 자신과 함께 운동하도록 하는 등 열정적으로 팀원들을 이끌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래서 A는 엄청나게 후회했습니다. 비록 본인이 자발적으로 헬서팀에 참여하기는 했지만, 이렇게 고될 것이라고는 상상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B가 짜준 운동 프로그램은 A에게 너무 가혹한 구성이었고, 심지어 주말도 없이 매일 운동하는 B를 따라다녀야 했기에 운동량은 지나치게 많았습니다. A는 출근길엔 좀비, 퇴근길엔 피곤한 좀비같은 행색이 되고 말았습니다.
물론 A는 직접 프로그램이나 식단까지 짜주는 B의 열정에 대해서는 감사한 마음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B의 명령에 따라 모든 일정을 B에게 맞추어야 했던 것입니다. 점심시간엔 늘 운동을 했고, B의 업무가 밀리면 계속 기다리다가 퇴근시간을 함께 맞추어야만 했고, 주말에도 회사 근처 헬스장으로 출근해야 했습니다. 하루는 A가 부서장에게 연차 신청 결재를 올렸는데, 어떻게 알았는지 B가 메신저로 “내일 같이 운동해야죠. 연차휴가 취소하세요”라고 해 A가 연차휴가 신청을 취소하는 일까지 생겼습니다.
일이 이렇게까지 되자 A는 체력적으로 너무 힘들었고, 심지어 연차휴가도 제대로 못 쓰게 하는 것은 직장 내 괴롭힘으로까지 느껴져, 결국 고충처리담당자에게 이 사실을 신고하고 말았습니다.
이 사건, B가 A에게 직장 내 괴롭힘을 했다고 볼 수 있을까요?
<판단>
세상 대부분의 일에는 '중도'라는 것이 있습니다. 적당한 선을 지키면 된다는 의미입니다.
위 사실관계에서 회사에서 주최한 이벤트에 참여하기 위해 자발적으로 팀을 구성하고 함께 운동을 한다는 것까지만 선을 긋는다면, 직장 내 괴롭힘이라는 요소가 끼어들 여지는 없을 것입니다. 물론 회사에서 이벤트를 주최했기 때문에 구성된 팀이기는 하나, 업무상 지휘명령으로 운영되거나 각 담당직무와 관련되는 등의 여지가 적어 업무관련성이 배제될 여지가 있고, 설사 업무관련성이 인정되더라도 적정범위를 초과했다고 보기는 어렵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A는 정해진 근로시간 이후에 비자발적으로 회사에 남아 있어야 한다거나 주말에도 나가야 하는 등 개인시간을 지나치게 빼앗겼고, 상급자의 명령에 의해 연차휴가를 취소함으로써 근로기준법 제60조에서 보장하는 연차휴가 사용권(시기지정권)까지도 박탈되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A가 알아서 자기 시간을 챙겨야 한다고 볼 수도 있겠지만, 상급자-하급자, 팀장-팀원 관계에서 B의 명령을 A가 따르지 않기란 쉽지 않을 것입니다.
즉, B는 굳이 넘지 않아도 될 선을 넘으면서까지 A의 권리를 침해하였고, 업무상 적정범위를 초과한 행위로써 A의 근무환경을 악화시킨 것으로 인정될 만한 상황을 만들어버린 것입니다. 따라서 직장 내 괴롭힘에 해당된다고 판단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물론 B의 행위가 중징계에 이를 정도로 아주 중한 수준의 직장 내 괴롭힘이라고 보이지는 않습니다. A가 B에게 갖는 감사한 마음도 있는 것으로 보이는 바, 통상 이와 같은 경우 사건 초기의 감정이 소강된 이후에는 화해의 여지가 있을 것으로 예측하기도 합니다. 경우에 따라 양 당사자가 동의한다는 전제에서, A가 헬서팀에서 탈퇴하거나, B가 헬서팀 운영을 조금 덜 타이트하게 하는 등 직장 내 괴롭힘 성립 여부를 결론내리기 이전에 양 당사자가 선택할 수 있는 조정안 역시 다양할 것입니다.
재차 강조하자면, '중도'를 지킴으로써 직장 내 괴롭힘으로 인정될 수 있는 많은 행위들이 예방될 수 있을 것입니다. 회사에서도 위 사례처럼 조직문화 형성을 위한 이벤트를 기획할 때에는 직원들이 지나치게 이벤트에 과몰입하지 않도록 하는 조치가 필요합니다. 이벤트 참여 보상을 적정한 선으로 통제하거나, 이벤트 참여 시 유의사항을 배포하는 것도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곽영준 행복한일연구소/노무법인 노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