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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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층(높이 300m)짜리 초대형 랜드마크인 부산 롯데타워(조감도) 건립을 놓고 롯데그룹과 부산시의 기(氣) 싸움이 점입가경이다. 롯데는 타워 경관 디자인을 부산시 입맛에 맞게 바꿔가며 승인을 기대하고 있지만, 시는 “20년 넘게 차일피일 미뤄온 타워를 진짜 건립하겠다는 더 명확한 의지를 보여 달라”며 건축허가를 내주지 않고 있어 갈등이 커지고 있다. 특히 부산시는 타워 건립 약속을 믿고 2008년 영업허가를 내준 롯데백화점 광복점의 영업 연장도 불허하는 방안까지 검토하고 있다. “롯데가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는 이유에서다. 백화점 직원 3000여 명의 집단 실업 가능성이 불거지는 등 파장이 커지고 있다.

백화점 영업이 볼모가 된 타워 건립

29일 롯데쇼핑에 따르면 부산시는 31일 마감인 백화점 영업 연장 승인 시한에 관해 “검토 중인 사안이며, 롯데 측이 제출한 계획안을 바탕으로 실시계획인가를 거쳐 연장 여부를 결정할 것”이라는 입장을 되풀이하고 있다. 백화점 직원 3000여 명과 납품업체·협력업체를 포함하면 수만 명의 생계가 시의 영업 연장 허가에 달려 있는 것이다.

롯데쇼핑 관계자는 “롯데타워 사업 추진을 위한 작업에 착수했는데도, 부산시는 진정성이 없다며 비판적인 태도를 고수하고 있어 난감하다”고 토로했다.

롯데타워는 지난 26일 부산시로부터 일단 조건부 경관심의 가결 판정을 얻었다. 부산시는 조건으로 △골조 공사 과정에서 경관 자문을 받을 것 △백화점 연결 부위에 대한 디자인 자문을 받을 것 등을 내세웠다.

롯데는 타워 경관 심의가 통과하면 백화점 영업도 연장될 것으로 내심 기대했지만, 시의 영업 연장 허가가 즉각 나오지 않자 당황하고 있다. 부산시는 “경관 심의와 백화점 영업 연장 허가는 별개의 문제”라며 선을 긋고 있다.

백화점 영업 연장권을 손에 쥔 부산시는 롯데그룹의 타워 건립 추진 의지 표명이 최우선이라는 입장이다. 롯데 측이 실제로는 타워 건립 의지가 없으면서도 디자인 변경 등으로 시간을 끌며 백화점 영업 이득만 장기간 취하고 있다는 게 시의 판단이다. 시 관계자는 “백화점 연장에 관한 결과의 책임은 롯데그룹에 있다”고 못 박았다.

양측의 기싸움이 해결의 실마리를 찾지 못하면서 졸지에 백화점 직원들과 협력사 직원들의 앞날이 안갯속으로 빠졌다. 현재 롯데백화점 광복점에는 2000명의 판매직군을 포함해 직원 3000명이 970여 개 매장에서 일하고 있다. 롯데쇼핑 관계자는 “부산시가 지난 1월부터 강경 모드로 급선회해 이에 따라 사안을 추진했고 의지를 분명히 했다”며 “앞날을 전혀 예측할 수 없어 관련 대책을 세우는 것도 쉽지 않은 상황”이라고 말했다.

시 “더 명확한 건립 의지 보여라”

롯데타워 건립은 애초에 롯데백화점 광복점 영업과 한묶음으로 설계된 사업이다. 2000년 롯데그룹이 부산시로부터 해당 터를 사들인 뒤 롯데백화점 건립과 함께 107층 규모의 초고층 건물을 지을 목적으로 건축허가 신청을 냈다. 롯데백화점이 2008년 먼저 문을 연 뒤 초고층 건물이 지어지지 않아 갈등의 불씨가 된 것이다. 건축허가가 완료되지 않은 상황에서 시는 매년 5월 31일 백화점 연장 승인을 내줘왔다.

강경 대응에 나선 부산시도 진땀을 빼기는 마찬가지다. 시민의 일자리를 담보로 랜드마크의 조속한 건립을 촉구하는 ‘이중 상황’이 벌어져서다. 김필한 부산시 건축주택국장은 “20년 이상 미뤄온 사업을 더는 놔둘 수 없다는 판단 때문에 롯데 측을 압박하는 수단을 택했지만, 일자리가 엮인 상황이라 압박감이 크다”며 “그래도 최고경영자(CEO)가 시민을 상대로 타워 추진 계획을 발표하는 등 더 명확하고 구체적인 건립 의지를 확인해야 한다는 입장에는 변함이 없다”고 밝혔다.

부산=민건태 기자 mink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