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수논문 선정된 후 표절 논란
4차산업혁명委 위원장 역임한
윤성로 지도교수 "책임 통감
1저자 단독 행동…표절 몰랐다"
서울대, 27일 연구조사委 개최
워낙 빠르게 변하는 AI 연구
논문 발표에 급급, 검증엔 소홀
10개 넘는 연구 논문 문장 그대로 베껴
문제가 된 논문은 윤성로 서울대 전기정보공학부 교수 연구팀이 지난 23일 ‘국제 컴퓨터 비전 및 패턴 인식 학술대회(CVPR)’에서 발표한 논문이다. 제목은 ‘E2V-SDE: From Asynchronous Events to Fast and Continuous Video Reconstruction via Neural Stochastic Differential Equations’이다. 영상 속에서 움직이는 물체나 빛에 관한 정보를 기존 기술보다 빠르게 인식하는 방법을 다뤘다. 서울대 박사과정생 김모씨가 제1저자를 맡았고, 윤성로 교수는 교신저자로 이름을 올렸다. 교신저자는 논문 내용에 대한 학계의 질의에 답변해주거나, 연락을 담당하는 대표성을 띤 저자를 말한다. 윤 교수는 지난 5월까지 장관급인 4차산업혁명위원회 위원장을 지냈다.표절 논란이 불거지기 전만 해도 이 논문은 뛰어난 연구로 주목받았다. 올해 CVPR에서는 전체 발표 논문 중 우수한 4%만 구두 발표 논문으로 선정했는데, 윤 교수팀 논문이 여기에 뽑혔다.
표절 의혹이 처음 제기된 것은 24일. 유튜브에 7분16초 길이의 영상이 게시되면서다. 게시자 미상의 이 영상은 윤 교수팀의 논문이 10편 이상의 다른 논문에서 문장을 그대로 가져왔다는 사실만을 그래픽 형태로 보여줬다. 표절 대상이 된 논문은 2018년 미국 캘리포니아대, 2020년 프랑스 소르본대, 2021년 KAIST, 2021년 영국 옥스퍼드대 연구진이 발표한 논문 등이다.
윤 교수팀 논문의 첫 페이지 마지막 구절은 2019년 캐나다 토론토대 연구팀이 발표한 논문에서 53단어로 구성된 세 문장을 그대로 가져왔다. 이처럼 그대로 가져온 문장 중에는 어느 논문에서 내용을 인용했다고 적시한 경우도 있지만, 다섯 단어 이상으로 구성된 문장 자체를 똑같이 베낀 행위는 명백한 표절이다.
윤 교수 “1저자 단독 행동…책임지겠다”
윤 교수팀은 표절을 시인하면서도 1저자에게 책임을 돌렸다. 윤 교수는 “책임을 회피하지 않겠다”면서도 “1저자의 단독 행동”이라고 해명했다. “여러 공저자가 함께 글을 만들어 1저자에게 보냈는데, 해당 학생이 보내준 글 대신 임의로 다른 논문에 나와 있는 표현을 베껴 넣었다”는 주장이다. 공저자들도 표절을 시인하고 사과하면서도 “표절 사실을 몰랐다”고 했다.학계에서는 ‘꼬리 자르기’라는 비판이 나온다. 서울대 자연과학대에서 박사과정을 밟고 있는 대학원생 A씨(25)는 “각종 연구사업 실적을 입력할 때 교신저자는 1저자와 동급인 주저자로 취급한다”며 “윤 교수가 표절을 1저자 책임으로 돌리는 게 이해가 안 된다”고 했다. 이어 “혹시 1저자의 표절 사실을 몰랐다고 하더라도 교신저자의 책임은 여전히 남는다”고 덧붙였다. 표절을 고발한 유튜브 영상에도 “공저자들은 논문의 공은 나누면서 표절의 과실은 나누지 않는 거냐”는 비판 댓글이 달렸다.
연구 검증 소홀한 AI학계도 도마에
논문 검증에 손을 놓은 AI학계도 도마에 올랐다. AI 분야는 워낙 빠르게 연구 내용이 변하기 때문에 연구 내용을 경쟁적으로 발표하는 데 급급할 뿐 연구 검증을 소홀히 한 지 꽤 됐다는 지적이 나온다.남범석 성균관대 소프트웨어학과 교수는 이날 개인 SNS를 통해 “CVPR을 비롯한 AI학회들은 한 해 2000편이 넘는 논문을 뽑아낸다”며 “매일 5~6편씩 읽어야 하는 양인데, 실제로 읽고 검증하는 게 가능할 리 없다”고 했다. 이어 “(논문을 읽는) 리뷰어가 있다 해도 리뷰어 수가 수백 명인데 ‘퀄리티 컨트롤’이 될 리가 없다”고도 했다.
‘공장식 연구실’도 문제로 지적됐다. 인공지능 분야처럼 학생 수요는 높은 데 비해 교수가 부족한 연구 분야는 한 교수가 많은 학생을 지도하기 때문에, 연구 지도나 검증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다는 얘기다. 윤 교수의 인공지능 연구실은 박사과정생만 37명이다. 석사과정과 박사후 연구원 등을 포함하면 총 51명의 학생이 윤 교수의 지도를 받는 상황이다.
최예린/이광식 기자 rambut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