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참을 수밖에"…연예인 갑질에 우는 패션 어시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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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로 감독하자 법 위반 55건 적발
“실장님, 팀장님이 무리한 업무를 요구하거나 실수에 대해 지나친 타박을 하는 팀도 있고, 연예인이나 매니저 갑질도 비일비재합니다. 제재하거나 고발하기가 어려운 부분이 많아 대부분 참고 넘어갑니다.”
고용노동부가 패션스타일리스트 등을 대상으로 실시한 근로 실태 설문조사에서 한 패션 어시스턴트가 작성한 답변 내용이다. 고용노동부는 연예매니지먼트 분야를 대상으로 근로 감독한 결과, 12개 사에서 총 55건의 법 위반을 적발했다고 13일 발표했다.
연예매니지먼트 분야는 업무 특성상 청년 근로자들이 많다. 또 연예인 일정에 맞춰져 일정하지 않은 근무 시간과 도급 관계 등 구조적 특성 탓에 노동환경이 열악한 분야로 손꼽히고 있다. 연예기획사는 패션 스타일리스트와 도급계약을 맺고, 패션 어시스턴트는 패션 스타일리스트와 근로계약을 맺는 구조다.
이번 근로감독은 소속 연예인이 많은 연예기획사 2개 사와 해당 기획사와 일정금액 이상의 도급 관계에 있는 패션 스타일리스트 10개 사를 대상으로 진행했다. 동종 업계에 대한 영향력을 고려했다는 설명이다. 특히 노동환경이 열악한 로드매니저(연예기획사)와 패션 어시스턴트(패션 스타일리스트)를 대상으로 중점 점검했다.
근로감독 결과 연예기획사는 총 12건의 노동관계법 위반사항이, 패션 스타일리스트 업체의 경우 총 43건의 법 위반 사항이 적발됐다. 연예기획사에서는 연장근로수당 1600여만원 미지급, 연장근로시간 위반, 성희롱 예방 교육 미실시 등이 적발됐다.
연예기획사 로드매니저의 경우 연예인의 일정에 따른 유동적 근무시간이 문제 됐다. 특히 사업장 밖에서 계속 근무하는 업무 특성상 근로기준법 제58조에 따른 '사업장 밖 간주근로시간제'를 도입·운영 중이었으나 도입 과정에서 적법한 절차를 지키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사업장 밖 간주근로시간제는 근로자대표 서면합의가 있는 경우 서면합의 한 시간을 근로한 것으로 간주하는 제도다. 한 기획사는 근로자 대표가 아니라 사용자가 지명한 근로자가 합의에 나서 문제가 됐다.
패션 스타일리스트사들의 경우엔 주로 패션 어시스턴트와의 근로계약서 미작성, 임금 명세서 미교부 등 기초노동질서 위반이 적발됐다.
근로계약서 미작성 등 근로조건 명시 의무 위반이 7개소였고, 임금 명세서 미교부와 근로자명부 미작성 사업장도 각각 6개소였다. 이는 연예인 일정에 따라 근로일이나 근로시간이 변동되는 경우가 많아 필요할 때마다 출근하는 업무 특성이 영향을 줬다는 설명이다. 특히 패션 스타일리스트 업체는 영세한데다 연예기획사로부터 충분한 인건비가 포함된 도급비를 받지 못하는 구조적 요인도 있었다.
다만 이번 근로감독 결과는 2020년도에 실시한 것에 비하면 상당히 개선됐다는 설명이다. 당시 패션 스타일리스트 6개 사를 대상으로 실시한 근로감독 결과 감독 대상 사업장 모두 최저임금을 미준수했지만, 이번 근로감독에서는 최저임금 위반 사업장은 없었다.
고용부는 이 외에도 로드매니저, 패션 어시스턴트를 대상으로 근로여건을 설문 조사한 결과도 발표됐다. 로드매니저 124명, 패션어시스턴트 16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 조사에서 69명이 응답했다(응답률 49.3%).
로드매니저의 경우는 모두 근로계약을 체결하고 임금명세서도 교부받았다고 응답했으나, 패션 어시스턴트는 3명(20%), 7명(46.7%)이 각각 근로계약서 미체결 및 임금명세서를 교부받지 못했다고 응답했다.
근로시간과 관련해 로드매니저 중 13명(24.1%), 패션 어시스턴트 중 3명(20%)이 연예인 일정 등으로 인해 주 52시간을 초과해 근무한다고 응답했다.
또 로드매니저 중 1명(1.9%), 패션어시스턴트 중 3명(20%)이 본인 또는 동료가 '직장 내 괴롭힘' 피해 경험이 있고, 로드매니저 중 1명(1.9%), 패션 어시스턴트 중 2명(20%)이 본인 또는 동료가 '성희롱 피해'가 있었다고 응답했다.
일부 로드매니저들은 “업계 전반적인 인식 변화 및 체질 개선, 복지 및 임금 상향이 이뤄져야 한다", “일을 줄일 수 없다는 건 아는데 일 한 만큼 돈을 받았으면 좋겠다” “근무 중의 부당한 일이나, 고충 등이 있을 때는 이를 듣고 해결해 줄 수 있는 군대의 '마음의 소리' 같은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호소했다. 최소한 정기적인 휴가제도가 필요하다는 의견도 보였다.
고용부는 노동시장에 MZ세대의 진입이 본격화되면서 청년 노동권 보호에 나선다는 방침이다. 지난해 2월 기준으로 MZ세대(1982~2012년생)의 비중은 전체 인구 대비 36.7%(약 1800만명), 경제활동인구 대비 45%(약 1250만명)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따라 고용부는 청년이 아르바이트를 많이 하는 편의점, 카페 등 소규모 사업장을 대상으로 분기별로 특정 1주간 48개 지방관서에서 동시 집중 지도점검에 나선다는 방침이다. 지도점검은 △서면근로계약 체결 △최저임금 준수 △임금체불 예방 △임금 명세서 교부 등 기초 고용질서를 위주로 실시할 계획이다.
3분기 이후부터는 경쟁심화 및 근로조건 저하, 소규모 가맹점 운영방식 등으로 청년의 노동환경이 열악하다는 우려가 계속 제기돼 온 '프랜차이즈 분야'에 대한 기획 감독을 본격적으로 착수한다.
이정식 고용부 장관은 “이번 연예매니지먼트 근로감독은 청년 보호를 위한 시작점"이라며 "현재 채용절차법 현장 지도‧점검(5.16.~7.22.)을 실시하고 있으며, 앞으로도 정기점검은 물론 수시점검도 적극적으로 실시하겠다"고 밝혔다.
곽용희 기자 ky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