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산 '아메리칸 타운' 50년 만에 사라지나…아파트 건립 계획
-
기사 스크랩
-
공유
-
댓글
-
클린뷰
-
프린트
기지촌·유흥가 기능 퇴색…"애환 딛고 활기찬 터전 되길"
전북 군산시 미성동 15통 임사 2마을. '아메리칸 타운(A타운)'으로도, '국제 문화마을'로도 불린다.
이곳은 3㎞가량 떨어진 군산 미군기지 장병들의 유흥을 위해 1970년대 국가가 계획적으로 조성한 마을이다.
이 A타운이 50여 년 만에 사라질 전망이다.
A타운 부지 1만5천여㎡(약 5천 평)를 사들인 건설업체가 지역주택조합 형식으로 지하 3층·지상 48층짜리 대규모 아파트(940여 세대)를 지을 계획이기 때문이다.
고층 아파트 건립에 따른 인근 공군 제38전투비행전대의 비행안전에 대한 문제 등이 해소되지 않아 군산시의 승인을 받지 못한 상태지만, 아파트 건립 소식에 주민과 업주들이 하나둘씩 떠나면서 A타운은 사실상 개점 휴업상태다.
현재 A타운에는 미국 장병을 위한 20여 개의 클럽이 다닥다닥 붙어있다.
마을 입구에 '정상 영업을 한다'는 안내문이 붙어있지만, 실제 영업을 하는 곳은 10곳 정도다.
이마저도 업주 3∼4명이 빈 클럽을 임대해 2∼3개씩 운영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불고기와 치킨 등을 파는 8∼9개의 레스토랑은 문을 여는 둥 마는 둥 거의 닫혀있다.
유흥시설 외에도 슈퍼마켓 등을 운영하는 주민 예닐곱 명이 거주하며 마을의 흥망성쇠를 함께 하고 있다.
마을 어귀에서 자영업을 하는 A씨는 "20년 전만 해도 주말 밤이면 A타운은 형형색색의 화려한 네온사인들로 불야성을 이뤘다.
당시 여성 종사자들이 수백 명에 달했다"고 전했다.
그는 A타운을 '군산 외곽에 집과 술집, 편의시설을 만든 뒤 성매매 여성들을 불러들여 주한 미군이 달러를 쓰게 만든 계획형 마을'이라고 정의했다.
그래서 당시에는 '기지촌 여성 = 달러 버는 애국자'로 잘못 인식했다고 한다.
이어 "요즘엔 미군은 거의 없다.
한국인이 호기심에 가끔 찾아와 술을 마시고 간다"고 말했다.
군산 미군 부대 장병들이 셔틀버스로 유흥산업이 번창한 오산의 아메리칸 타운이나 쇼핑이 편리한 수도권으로 빠져나가면서 미군을 찾아보기 힘들다고 했다.
그에 따르면 문을 여는 10곳의 클럽에는 여전히 우즈베키스탄 여성 40∼50명이 종사하고 있다.
수년 전에는 필리핀 여성이 있었고, 수십 년 전에는 한국 여성들이 그 자리를 지켰다.
인근 마을 주민 B씨는 "이곳은 송탄이나 동두천의 기지촌과 달리 기지촌 여성에 대한 통제가 엄청 심했다"고 회고했다.
욕실도 없는 4평 안팎의 쪽방에 기지촌 여성들을 가두고 성매매를 강요했다고 한다.
방 번호가 붙은 이른바 '닭장 집'에 집단수용하고 집 근처에는 높은 담을 치고 경비가 지켰을 정도였으니 인권유린의 현장이기도 했다.
B씨는 "400∼500명의 여성이 1980년대까지 이 '닭장 집'에 사실상 갇혀 살았다"면서 "A타운이 그 기능을 잃으면서 닭장 집들은 빈방들이 됐고, 이후 폐허로 변했다"고 덧붙였다.
B씨는 "우리의 아픈 역사와 애환이 깃든 현장에 아파트가 들어선다니 만감이 교차한다"며 "이곳이 아픔을 딛고 에너지 넘치는 군산의 새로운 터전이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연합뉴스
이곳은 3㎞가량 떨어진 군산 미군기지 장병들의 유흥을 위해 1970년대 국가가 계획적으로 조성한 마을이다.
이 A타운이 50여 년 만에 사라질 전망이다.
A타운 부지 1만5천여㎡(약 5천 평)를 사들인 건설업체가 지역주택조합 형식으로 지하 3층·지상 48층짜리 대규모 아파트(940여 세대)를 지을 계획이기 때문이다.
고층 아파트 건립에 따른 인근 공군 제38전투비행전대의 비행안전에 대한 문제 등이 해소되지 않아 군산시의 승인을 받지 못한 상태지만, 아파트 건립 소식에 주민과 업주들이 하나둘씩 떠나면서 A타운은 사실상 개점 휴업상태다.
현재 A타운에는 미국 장병을 위한 20여 개의 클럽이 다닥다닥 붙어있다.
마을 입구에 '정상 영업을 한다'는 안내문이 붙어있지만, 실제 영업을 하는 곳은 10곳 정도다.
이마저도 업주 3∼4명이 빈 클럽을 임대해 2∼3개씩 운영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불고기와 치킨 등을 파는 8∼9개의 레스토랑은 문을 여는 둥 마는 둥 거의 닫혀있다.
유흥시설 외에도 슈퍼마켓 등을 운영하는 주민 예닐곱 명이 거주하며 마을의 흥망성쇠를 함께 하고 있다.
마을 어귀에서 자영업을 하는 A씨는 "20년 전만 해도 주말 밤이면 A타운은 형형색색의 화려한 네온사인들로 불야성을 이뤘다.
당시 여성 종사자들이 수백 명에 달했다"고 전했다.
그는 A타운을 '군산 외곽에 집과 술집, 편의시설을 만든 뒤 성매매 여성들을 불러들여 주한 미군이 달러를 쓰게 만든 계획형 마을'이라고 정의했다.
그래서 당시에는 '기지촌 여성 = 달러 버는 애국자'로 잘못 인식했다고 한다.
이어 "요즘엔 미군은 거의 없다.
한국인이 호기심에 가끔 찾아와 술을 마시고 간다"고 말했다.
군산 미군 부대 장병들이 셔틀버스로 유흥산업이 번창한 오산의 아메리칸 타운이나 쇼핑이 편리한 수도권으로 빠져나가면서 미군을 찾아보기 힘들다고 했다.
그에 따르면 문을 여는 10곳의 클럽에는 여전히 우즈베키스탄 여성 40∼50명이 종사하고 있다.
수년 전에는 필리핀 여성이 있었고, 수십 년 전에는 한국 여성들이 그 자리를 지켰다.
인근 마을 주민 B씨는 "이곳은 송탄이나 동두천의 기지촌과 달리 기지촌 여성에 대한 통제가 엄청 심했다"고 회고했다.
욕실도 없는 4평 안팎의 쪽방에 기지촌 여성들을 가두고 성매매를 강요했다고 한다.
방 번호가 붙은 이른바 '닭장 집'에 집단수용하고 집 근처에는 높은 담을 치고 경비가 지켰을 정도였으니 인권유린의 현장이기도 했다.
B씨는 "400∼500명의 여성이 1980년대까지 이 '닭장 집'에 사실상 갇혀 살았다"면서 "A타운이 그 기능을 잃으면서 닭장 집들은 빈방들이 됐고, 이후 폐허로 변했다"고 덧붙였다.
B씨는 "우리의 아픈 역사와 애환이 깃든 현장에 아파트가 들어선다니 만감이 교차한다"며 "이곳이 아픔을 딛고 에너지 넘치는 군산의 새로운 터전이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