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년대는 배경·학벌 적극 어필"…요즘 취업 잘 되는 자소서는? [곽용희의 인사노무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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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소서가 아니라 '자소설'이라는 조소 어린 단어가 만들어질 정도로, 청년들에게는 취업용 자기소개서 작성이 가장 어려운 일이다.
도대체 '라떼' 선배들은 시대별로 어떤 점을 잘 어필해서 입사 했을까. 또 요즘 회사들은 어떤 자소서를 선호할까.
이종구 경희대 교수가 지난 4월 발표한 '한국 대기업의 시대별 자기소개서 형태의 전개 양상과특징 비교분석에 관한 탐색적 연구'를 분석해 봤다.
다만 워낙 채용인력이 대규모다 보니 자소서의 영향력은 미미했다. 필기시험을 통과하면 사실상 면접에서 큰 실수만 하지 않으면 합격이던 시절이었다고 한다.
자소서는 분량 제한도 없었고 형식도 자유로웠다. 출신 배경과 대학, 신상 정보를 적극 활용해도 당시 정서에서는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요즘은 상상하기 어렵지만, 학력은 물론 가족관계, 가정환경, 외모 등 '출신성분'을 홍보할 수 있는 수단이었다. 맞춤법의 중요성도 커졌다.
공정성과 신뢰성에서 완벽했다고는 볼 수 없지만, 이전 시대보다는 체계화됐다. 1970년대는 단순 이력서 겸 자기소개서 한 장만 보는 기업이 태반이었다.
필기시험이 폐지되고 공채 전형은 서류와 면접만으로 구성되기 시작했다. 자소서가 면접의 기초 자료로 활용되면서 중요성도 커졌다. 맞춤법은 물론 문장의 유려함도 중요한 요소였다.
다만 최근처럼 '직무역량'이라는 개념이 보편화되기 전인 만큼, 자소서는 주로 '업무 적응 능력'을 어필하는 도구로 활용됐다.
기업들도 자유 형식으로 자필 작성하던 자기소개서에 점차 '구성 항목'을 두기 시작했다. 지금도 보급형 자소서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성장 과정', '성격', '학교생활', '지원동기' 등 항목이 이때 등장했다. 이 항목들은 중요한 '업무 적응 능력' 중 하나인 '융화력', '친화력'을 평가하기 위한 역할도 겸했다. 효율적 평가를 위해 작성 분량도 제한되기 시작했다.
컴퓨터가 대중화된 90년대 후반부터는 직접 방문 대신 이메일 접수방식이 보편화된 것도 특징이다.
IMF 사태에 살아남아 2000년대 초반 대규모 구조조정을 겪고 채용 여력이 바닥난 기업들은 공채에서 소수의 우수 인재 선발에 초점을 맞췄다. '업무 적응 능력' 보다 회사에 도움이 될 '스펙'이 중요시됐다. 취업시장에서 스펙(specification)이라는 말이 등장한 시기도 이때다.
1990년대 자기소개서에 비해 그 양식과 항목이 좀 더 구체적이고 체계적으로 변모했다. 구직자들도 자기소개서에 화려한 '스펙'을 담는 데 온 힘을 쏟았다. 스펙 중심의 서류 전형이 강조되다 보니, 상대적으로 자소서의 비중은 약해지고 되레 '지원서'가 중시됐다.
지원 직무에 대한 '경험'과 '지식'이 취업경쟁력으로 부상했다. 고용노동부와 대한상의 등이 개발, 보급한 NCS 등 핵심 직무역량 평가모델도 변화의 실마리가 됐다.
점차 지원한 직무와 관련된 경력 이외의 스펙은 평가 대상에서 제외됐다. 자소서에서도 스펙 관련 항목이 아니라 지원 직무에 대한 역량을 검증할 수 있는 양식으로 개편됐다.
자소서에 담긴 '이력' '경력' '직무 지식'이 서류전형의 합격을 좌우하는 핵심 요소가 되면서 자소서의 중요성도 여느때보다 커졌다.
이런 현상은 고용부와 한국고용정보원이 지난달 19일 발표한 ‘청년 채용 이슈 조사’ 결과에서도 드러났다. 대·중견기업 752곳의 채용 담당자를 설문 조사한 결과, 입사지원서에서 가장 중요시하는 요소는 ‘직무 관련 근무 경험(34.4%)'이었다. ‘전공의 직무 관련성’이 33.9%로 뒤를 이었다. 면접에서도 ‘직무 관련 근무 경험’을 가장 중요시한다는 기업이 55.5%였다.
반면 직무와 무관한 단순 스펙은 주요 고려 대상이 아니다. △직무 무관 봉사활동(16.4%) △기자단 서포터즈 활동(16.2%) △공모전(6.6%) △어학연수(6.1%) 은 채용에 도움이 되지 않는 '단순 스펙'이었다.
또 지난달 21일 인공지능(AI) 자기소개서 평가 서비스 ‘프리즘’을 운영하는 무하유가 올해 상반기 292곳의 기업·기관 자기소개서 43만건을 평가한 결과, 상위 10% 입사지원자의 자기소개서선 ‘성과 창출’ 역량을 나타내는 문장이 가장 많이 포함됐다고 한다.
이종구 교수는 "스펙은 입사하는 순간까지만 적용되고 이후는 성과와 생산성을 보장할 수 없다"며 "직무역량과 사업이해력이 높을수록 기업경쟁력을 배가시킬 수 있으므로, 잠재능력을 가진 구직자들을 위한 한층 진화된 자기소개서의 개발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곽용희 기자 kyh@hankyung.com
도대체 '라떼' 선배들은 시대별로 어떤 점을 잘 어필해서 입사 했을까. 또 요즘 회사들은 어떤 자소서를 선호할까.
이종구 경희대 교수가 지난 4월 발표한 '한국 대기업의 시대별 자기소개서 형태의 전개 양상과특징 비교분석에 관한 탐색적 연구'를 분석해 봤다.
○1980년대 "학벌·신상 적극 어필"
1980년대 취업시장은 호황기였다. '대규모 정기 공채, 범용형 인재 채용'이 대세였다. '고도 산업화' 시대가 도래하기 전인만큼 '특이형' 인재보다 팀워크에 도움이 되는 '협력·인화·성실' 덕목을 갖춘 '보통형' 인재상을 선호했다.다만 워낙 채용인력이 대규모다 보니 자소서의 영향력은 미미했다. 필기시험을 통과하면 사실상 면접에서 큰 실수만 하지 않으면 합격이던 시절이었다고 한다.
자소서는 분량 제한도 없었고 형식도 자유로웠다. 출신 배경과 대학, 신상 정보를 적극 활용해도 당시 정서에서는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요즘은 상상하기 어렵지만, 학력은 물론 가족관계, 가정환경, 외모 등 '출신성분'을 홍보할 수 있는 수단이었다. 맞춤법의 중요성도 커졌다.
공정성과 신뢰성에서 완벽했다고는 볼 수 없지만, 이전 시대보다는 체계화됐다. 1970년대는 단순 이력서 겸 자기소개서 한 장만 보는 기업이 태반이었다.
○1990년대, '성장 과정' '지원동기' 항목 등장
1990년대엔 3저 호황기에 편승해 팽창했던 대졸 취업시장이 악화됐다. 'IMF 사태'도 일어났다. 기업들도 구조조정을 염두에 두다 보니 '소수 수시 채용'으로 트렌드가 바뀌었다. 가성비가 좋은 특이형 인재가 선호됐고 선별형 채용 방식이 도입됐다.필기시험이 폐지되고 공채 전형은 서류와 면접만으로 구성되기 시작했다. 자소서가 면접의 기초 자료로 활용되면서 중요성도 커졌다. 맞춤법은 물론 문장의 유려함도 중요한 요소였다.
다만 최근처럼 '직무역량'이라는 개념이 보편화되기 전인 만큼, 자소서는 주로 '업무 적응 능력'을 어필하는 도구로 활용됐다.
기업들도 자유 형식으로 자필 작성하던 자기소개서에 점차 '구성 항목'을 두기 시작했다. 지금도 보급형 자소서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성장 과정', '성격', '학교생활', '지원동기' 등 항목이 이때 등장했다. 이 항목들은 중요한 '업무 적응 능력' 중 하나인 '융화력', '친화력'을 평가하기 위한 역할도 겸했다. 효율적 평가를 위해 작성 분량도 제한되기 시작했다.
컴퓨터가 대중화된 90년대 후반부터는 직접 방문 대신 이메일 접수방식이 보편화된 것도 특징이다.
○2000~2014년, '스펙'의 등장
2000년대는 디지털화로 지식기반 산업이 떠올랐지만, 저성장·고비용·저효율·저고용 시대를 맞이했다. 2008년엔 글로벌 금융위기로 취업시장도 크게 위축됐다.IMF 사태에 살아남아 2000년대 초반 대규모 구조조정을 겪고 채용 여력이 바닥난 기업들은 공채에서 소수의 우수 인재 선발에 초점을 맞췄다. '업무 적응 능력' 보다 회사에 도움이 될 '스펙'이 중요시됐다. 취업시장에서 스펙(specification)이라는 말이 등장한 시기도 이때다.
1990년대 자기소개서에 비해 그 양식과 항목이 좀 더 구체적이고 체계적으로 변모했다. 구직자들도 자기소개서에 화려한 '스펙'을 담는 데 온 힘을 쏟았다. 스펙 중심의 서류 전형이 강조되다 보니, 상대적으로 자소서의 비중은 약해지고 되레 '지원서'가 중시됐다.
○2014년 이후 '직무 역량'의 시대
2014년 이후부터는 '직무역량 평가'가 중요시되기 시작했다. 스펙을 쌓는 데 구직자들의 시간·경제적 비용 낭비가 심각했고, 스펙이 좋아도 기업이 선호하는 우수 인재와 거리가 있다는 점도 슬슬 드러났다.지원 직무에 대한 '경험'과 '지식'이 취업경쟁력으로 부상했다. 고용노동부와 대한상의 등이 개발, 보급한 NCS 등 핵심 직무역량 평가모델도 변화의 실마리가 됐다.
점차 지원한 직무와 관련된 경력 이외의 스펙은 평가 대상에서 제외됐다. 자소서에서도 스펙 관련 항목이 아니라 지원 직무에 대한 역량을 검증할 수 있는 양식으로 개편됐다.
자소서에 담긴 '이력' '경력' '직무 지식'이 서류전형의 합격을 좌우하는 핵심 요소가 되면서 자소서의 중요성도 여느때보다 커졌다.
이런 현상은 고용부와 한국고용정보원이 지난달 19일 발표한 ‘청년 채용 이슈 조사’ 결과에서도 드러났다. 대·중견기업 752곳의 채용 담당자를 설문 조사한 결과, 입사지원서에서 가장 중요시하는 요소는 ‘직무 관련 근무 경험(34.4%)'이었다. ‘전공의 직무 관련성’이 33.9%로 뒤를 이었다. 면접에서도 ‘직무 관련 근무 경험’을 가장 중요시한다는 기업이 55.5%였다.
반면 직무와 무관한 단순 스펙은 주요 고려 대상이 아니다. △직무 무관 봉사활동(16.4%) △기자단 서포터즈 활동(16.2%) △공모전(6.6%) △어학연수(6.1%) 은 채용에 도움이 되지 않는 '단순 스펙'이었다.
또 지난달 21일 인공지능(AI) 자기소개서 평가 서비스 ‘프리즘’을 운영하는 무하유가 올해 상반기 292곳의 기업·기관 자기소개서 43만건을 평가한 결과, 상위 10% 입사지원자의 자기소개서선 ‘성과 창출’ 역량을 나타내는 문장이 가장 많이 포함됐다고 한다.
이종구 교수는 "스펙은 입사하는 순간까지만 적용되고 이후는 성과와 생산성을 보장할 수 없다"며 "직무역량과 사업이해력이 높을수록 기업경쟁력을 배가시킬 수 있으므로, 잠재능력을 가진 구직자들을 위한 한층 진화된 자기소개서의 개발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곽용희 기자 ky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