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0억 횡령 '간 큰' 우리은행 직원…잔액까지 다 털어갔다 [오현아의 법정설명서]
지난 4월 한 우리은행 직원이 600억대 횡령을 한 사실이 알려졌습니다. 전씨는 약 10년에 걸쳐 700억원대를 횡령했으나, 올해까지 이 사실을 그 누구도 알지 못했습니다.

대체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질 수 있었을까요? 지난달 30일 법원은 전씨와 범행을 공모한 전씨의 동생 등에 대한 판결을 내놨는데요. 해당 판결문을 통해 전씨의 범죄가 어떻게 가능했는지 자세히 살펴보고자 합니다.

기업인수금 통장·도장 동시 관리...횡령 불씨 당겼다

출처=게티이미지뱅크
출처=게티이미지뱅크
전씨는 기업 인수합병(M&A)에 사용되는 금액을 관리하는 부서에 근무하던 직원이었습니다. 전 씨는 2012년 첫번째 횡령 당시, 부서와 관련된 모든 통장과 도장을 관리하는 업무를 맡았습니다.

전씨가 관리하던 통장과 도장 중에는 이란 가전업체 '엔텍합'과 한국 '대우일렉트로닉스' 인수작업에 관련된 것도 있었습니다. 엔텍합은 2011년 계약금 578억원을 지불한 후, 대우일렉트로닉스와 인수 과정에 들어갔습니다. 두 회사의 인수 계약금 578억은 매각주관사인 우리은행이 보관하고 있었죠.

그러나 이후 대우일렉트로닉스 채권단인 한국자산관리공와 엔텍합 간에 분쟁이 생기며 인수는 없던 일이 됩니다. 이에 엔텍합 과 대우일렉트로닉스는 국내서 소송을 이어갑니다.

전씨는 이를 이용했습니다. 엔텍합과 대우일렉트로닉스의 법정 다툼으로 인해 계약금 중 일부를 '법원공탁금'으로 내야 한다며 자신이 관리하던 통장과 도장을 들고 본점 영업부로 갑니다. 전씨는 아무 저항없이 173억3325만원을 자기앞수표로 출금했습니다. 이게 전씨의 첫 횡령이었습니다.

전씨는 "제가 은행원이다 보니 제 계좌로 입금을 하면 금융감독원이나 금융정보분석원에서 이상거래로 분류를 해 횡령을 의심할 수 있었다"며 이를 동생에게 건네 동생 명의의 계좌에 넣어뒀습니다.

3년 후 또 다시 148억원 횡령...
직장 상사 '출금 근거' 요청에 캠코 명의 사문서 위조도

700억 횡령 '간 큰' 우리은행 직원…잔액까지 다 털어갔다 [오현아의 법정설명서]
전씨의 범행은 3년동안 들키지 않습니다. 그는 기업개선부 과장으로 승진하며, 대우 일렉트로닉스 인수계약금이 담긴 계좌 등을 관리하는 업무를 맡게 됩니다.

그는 두번째 횡령을 기획합니다. 이젠 통장과 도장을 다른 직원으로부터 받아야 하기 때문에 상사의 허락이 필요했습니다. 전씨는 자신의 상급자에게 "해당 계좌에 있는 금액 중 148억793만원을 신탁예치금 전환 목적으로 출금해야한다"고 주장합니다. 그리고 해당 금액을 수표로 출금, 동생에게 전달했습니다.

상급자 B씨는 출금 5일 후 관련 근거에 대한 추가보고를 요구합니다. 전씨는 '기존 법원 예치금 중 173억3325만원의 계좌이체 및 수표지급된 148억792만원을 정히 수령하여 신탁예치했음을 확인합니다'는 내용의 문서를 작성해 프린트 했습니다.

이를 이전에 가지고 있던 해당업체 대표이사 명의의 문서 사본에 제목, 본문, 전화란에 풀칠을 해 누더기 문서를 만듭니다. 이후 해당 문서를 복사해, 조작의 흔적을 지웠습니다.

세번째 횡령...유한회사까지 설립해 잔액 전부 빼돌려

회삿돈 614억 원을 횡령한 혐의로 구속된 우리은행 직원 A씨가 지난 5월 6일 오전 서울 중구 남대문경찰서에서 서울중앙지검으로 송치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회삿돈 614억 원을 횡령한 혐의로 구속된 우리은행 직원 A씨가 지난 5월 6일 오전 서울 중구 남대문경찰서에서 서울중앙지검으로 송치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그는 2017년경 부서가 바뀌면 횡령 사실이 드러날 것을 우려해 '금융위원회' 명의의 문서를 위조하기로 마음먹습니다. 앞서 누더기 문서를 만든 방식을 그대로 이용합니다. 이번에는 '이번 사건이 2급 기밀에 취급하는 사건으로, 이번 사건의 종결이 예상되는 2018년 말까지 인사이동이나 업무변동이 없도록 요청을 드린다'는 내용을 적어서 풀로 붙인 것이죠.

결국 2018년까지 근무를 하게 된 전씨는 세번째 횡령을 실행에 옮겼습니다. 이번엔 해당 계좌에 있던 293억원의 잔액을 전부 빼돌리기로 합니다. 전씨의 동생은 미리 '대우 일렉트로닉스'의 앞글자를 따 유한회사를 만들어 뒀습니다.

수법은 같았습니다. 전씨는 상급자에게 "잔액의 전부를 캠코에 이관해야한다"고 보고하고, 전씨의 동생 명의의 회사 계좌에 남은 금액 전부를 이체합니다. 이 과정에서 캠코, 즉 한국자산관리공사 사장의 명의로 된 문서도 위조했죠.

총 세번의 횡령과 문서위조는 올해까지 들키지 않습니다. 그 사이 이란 엔텍합과 한국 정부 사이 투자자-국가간소송(ISDS)은 한국정부의 패소로 끝났습니다. 올 초 엔텍합 측에 배상금을 송금하고자 계좌를 열어봤을 때, 이미 계좌는 텅 빈 상태였습니다.

전씨와 전씨의 동생은 횡령자금을 해외에 설립한 페이퍼 컴퍼니로 반출했습니다. 또 횡령금 가운데 318억원을 옵션거래로 잃었다고 합니다. 법원은 전씨에게 징역 13년, 전씨의 동생에게 징역 10년을 각각 선고했습니다. 또한 각각에게 323억원의 추징명령을 내렸습니다.

檢, "숨은 금액 더있다" 특별항소

700억 횡령 '간 큰' 우리은행 직원…잔액까지 다 털어갔다 [오현아의 법정설명서]
전씨의 횡령은 이게 끝이 아닌 것으로 보입니다. 전씨의 횡령 사실이 계속해서 새로 발견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검찰은 지난달 1심 선고에 앞서 횡령액 93억2000만원을 추가로 확인해 공소장 변경을 신청했습니다. 그러나 법원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검찰은 이에 1심 판결을 파기하되, 2심 재판이 아닌 다시 1심 법원으로 환송해달라는 '특별항소'를 신청했다고 합니다. 이는 전씨가 부모와 지인에게 빼돌린 189억원을 추징하기 위해서입니다. 현재 부패재산몰수법에 따르면 제3자가 범죄수익인지 모르고 받은 돈은 1심 선고 전까지만 몰수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오현아 기자 5hy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