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사에 뺨 맞고 "머리는 폼이냐"…한국 직장서 벌어지는 일 [이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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끊이지 않는 직장 내 괴롭힘
은행원 갑질에 공무원 극단선택까지
금지법 시행 이후 신고 2만여건
기소 의견 검찰 송치는 단 0.7%
전문가 "의식 변화와 법 사각지대 보완해야"
은행원 갑질에 공무원 극단선택까지
금지법 시행 이후 신고 2만여건
기소 의견 검찰 송치는 단 0.7%
전문가 "의식 변화와 법 사각지대 보완해야"
새해에도 '직장 내 괴롭힘' 사례가 끊이지 않고 있다.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선 새해 들어서도 눈살을 찌푸리게 만는 직장 내 괴롭힘 사례가 올라와 논란이 일고 있다. 가해자에 대한 처벌과 피해자를 위한 조치가 미흡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 5일 국내 한 대형 은행에서 근무하는 한 남성이 직장 상사로부터 현금 갈취, 폭행 등 부당한 갑질을 당하고 있다는 사연이 알려져 누리꾼들의 공분을 샀다.
이 사연은 피해자의 아내가 직장인 익명 커뮤니티에 글을 올리면서 알려졌고, 이후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확산했다. 아내는 남편이 상사로부터 뺨을 맞고, 100만원을 갈취당했으며, 김밥을 싸 오라고 명령하는 등 믿기 힘든 갑질을 자행했다고 주장했다. 해당 은행은 가해자의 혐의가 일부 인정돼 대기발령 조치를 내린 것으로 전해졌다.
지방에선 젊은 공무원의 안타까운 사연도 전해졌다. 지난 4일 경찰 등에 따르면 경남 산청군에서 근무하는 20대 여성 공무원이 지난해 12월 31일 저녁 자신의 아파트 6층에서 극단적인 선택을 시도했다. 이 공무원은 직장 내 괴롭힘을 호소하는 메모를 남긴 뒤 극단적 선택을 시도한 것으로 조사됐다. 그는 척추 골절상 등 중상을 입었지만, 다행히 생명에는 지장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경찰은 내사를 진행하고 있다.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이 시행된 2019년 7월 16일부터 올해 8월까지 고용노동부에 신고된 직장 내 괴롭힘은 총 2만5854건으로 집계됐다. 그러나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된 사건은 133건으로 전체의 0.7%에 불과했다. 괴롭힘 유형별로 보면 폭언이 34.2%인 8841건으로 가장 많았고, 이어 부당인사(3674건·14.2%)와 따돌림·험담(2867건·11.1%)이 뒤를 이었다. 직장갑질119가 접수한 제보 가운데 선정한 '5대 폭언' 사례를 보면 "그런 걸로 힘들면 다른 사람들은 다 자살했다", "그 정도면 개도 알아먹을 텐데…", "공구로 ○○ 찍어 죽인다", "머리는 폼으로 달고 다녀? 너 같은 ○○는 처음 본다", "너 이 ○○야, 나에 대해 쓰레기같이 말을 해? 날 ○같이 봤구먼" 등이었다.
그 결과, 여전히 직장 내 피해자들이 끊이지 않고 있다는 지적이다. 시민단체 '직장갑질119'에 따르면 지난해 직장인 10명 중 3명은 직장 내 괴롭힘을 경험했다. 이 단체가 지난해 12월 전국 직장인 1000명을 설문한 결과 응답자의 28.0%가 지난 한 해 동안 직장 내 괴롭힘을 경험했다고 응답했다. 경험자의 44.6%는 괴롭힘 정도에 대해 '심각하다'고 답했다. 괴롭힘으로 인해 자해 등 극단적인 선택을 고민한 적이 있다는 경험자는 7.1%로 절대 적지 않았다.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 시행 사실에 대해 알고 있다는 응답자는 69.5%였다.
전문가들은 직장 내 괴롭힘을 근절하기 위해선 권위주의가 팽배한 한국 직장 문화에서 폭언을 '거친 조언' 정도로 여기는 의식에 대한 변화가 선행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현실적인 조치로는 368만(통계청 상반기 지역별 고용조사·2021)에 달하는 5인 미만 사업장 종사 노동자 등 법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모든 노동자에게도 법 적용이 될 수 있도록 개정이 필요하다는 데 입을 모았다.
실제로 직장 내 괴롭힘 신고 전체의 84%인 1만7150건은 신고자가 신고를 취하하거나 반려됐는데, 고용노동부가 '기타'로 분류한 반려 사건은 '법 적용 제외'와 '법 위반 없음'이 대부분인 것으로 확인됐다. 여기서 법 적용 제외는 5인 미만 사업장이나 근로계약을 체결하지 않은 도급, 하청, 용역, 특수고용, 프리랜서 등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이 해당된다.
장종수 직장갑질119 노무사는 "5인 미만 사업장에 종사하는 350만 이상의 노동자는 직장 내 괴롭힘이 있어도 제도적으로 구제받을 길이 없는 참담하고 반인권적인 상황"이라며 "5인 미만 사업장 노동자를 비롯한 법 사각지대에서 일하는 모든 노동자를 보호하는 법 개정이 시급하다"고 밝혔다.
고용노동부는 이같은 지적을 수용하면서도 5인 미만 사업장의 경우 법 의무 이행에 있어 현실적인 문제들이 존재한다고 짚었다. 규모가 작은 사업장일수록 더욱 세심하게 지원하겠다는 게 주무부처의 원론적인 입장이다.
고용노동부 관계자는 "근로기준법상 사용자의 의무를 이행하기 위해서는 괴롭힘 조사, 피해자와 가해자 분리 및 배치전환, 가해자 징계 등을 실시해야 하나 5인 미만 소규모사업장의 경우 인사노무관리 역량과 공간상 한계 등 법 준수 가능성과 법상 의무 불이행에 대한 벌칙·과태료 부담 등 제반 사정을 종합적으로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소규모사업장일수록 사업주의 의지와 관심이 중요한 만큼, 사업주 대상 교육·홍보를 강화하고, 괴롭힘 예방 컨설팅 등을 지원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홍민성 한경닷컴 기자 mshong@hankyung.com
새해 첫주부터…은행원 가장에 공무원까지
2023년 새해가 밝은 첫 주부터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 온라인을 중심으로 직장 내 괴롭힘 사례들이 쏟아지고 있다.지난 5일 국내 한 대형 은행에서 근무하는 한 남성이 직장 상사로부터 현금 갈취, 폭행 등 부당한 갑질을 당하고 있다는 사연이 알려져 누리꾼들의 공분을 샀다.
이 사연은 피해자의 아내가 직장인 익명 커뮤니티에 글을 올리면서 알려졌고, 이후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확산했다. 아내는 남편이 상사로부터 뺨을 맞고, 100만원을 갈취당했으며, 김밥을 싸 오라고 명령하는 등 믿기 힘든 갑질을 자행했다고 주장했다. 해당 은행은 가해자의 혐의가 일부 인정돼 대기발령 조치를 내린 것으로 전해졌다.
지방에선 젊은 공무원의 안타까운 사연도 전해졌다. 지난 4일 경찰 등에 따르면 경남 산청군에서 근무하는 20대 여성 공무원이 지난해 12월 31일 저녁 자신의 아파트 6층에서 극단적인 선택을 시도했다. 이 공무원은 직장 내 괴롭힘을 호소하는 메모를 남긴 뒤 극단적 선택을 시도한 것으로 조사됐다. 그는 척추 골절상 등 중상을 입었지만, 다행히 생명에는 지장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경찰은 내사를 진행하고 있다.
신고 2만건 중 기소 1%도 안 돼…"사각지대 보완 시급"
'솜방망이' 처벌과 같은 가해자에 대한 미흡한 법적 조치가 제2, 제3의 피해자를 낳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2019년 7월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근로기준법 제76조의2) 시행 이후 3년간 고용노동부에 접수된 신고는 2만여 건에 달했지만, 검찰에 송치된 사건은 1%도 채 되지 않는 것으로 집계됐다.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이 시행된 2019년 7월 16일부터 올해 8월까지 고용노동부에 신고된 직장 내 괴롭힘은 총 2만5854건으로 집계됐다. 그러나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된 사건은 133건으로 전체의 0.7%에 불과했다. 괴롭힘 유형별로 보면 폭언이 34.2%인 8841건으로 가장 많았고, 이어 부당인사(3674건·14.2%)와 따돌림·험담(2867건·11.1%)이 뒤를 이었다. 직장갑질119가 접수한 제보 가운데 선정한 '5대 폭언' 사례를 보면 "그런 걸로 힘들면 다른 사람들은 다 자살했다", "그 정도면 개도 알아먹을 텐데…", "공구로 ○○ 찍어 죽인다", "머리는 폼으로 달고 다녀? 너 같은 ○○는 처음 본다", "너 이 ○○야, 나에 대해 쓰레기같이 말을 해? 날 ○같이 봤구먼" 등이었다.
그 결과, 여전히 직장 내 피해자들이 끊이지 않고 있다는 지적이다. 시민단체 '직장갑질119'에 따르면 지난해 직장인 10명 중 3명은 직장 내 괴롭힘을 경험했다. 이 단체가 지난해 12월 전국 직장인 1000명을 설문한 결과 응답자의 28.0%가 지난 한 해 동안 직장 내 괴롭힘을 경험했다고 응답했다. 경험자의 44.6%는 괴롭힘 정도에 대해 '심각하다'고 답했다. 괴롭힘으로 인해 자해 등 극단적인 선택을 고민한 적이 있다는 경험자는 7.1%로 절대 적지 않았다.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 시행 사실에 대해 알고 있다는 응답자는 69.5%였다.
전문가들은 직장 내 괴롭힘을 근절하기 위해선 권위주의가 팽배한 한국 직장 문화에서 폭언을 '거친 조언' 정도로 여기는 의식에 대한 변화가 선행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현실적인 조치로는 368만(통계청 상반기 지역별 고용조사·2021)에 달하는 5인 미만 사업장 종사 노동자 등 법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모든 노동자에게도 법 적용이 될 수 있도록 개정이 필요하다는 데 입을 모았다.
실제로 직장 내 괴롭힘 신고 전체의 84%인 1만7150건은 신고자가 신고를 취하하거나 반려됐는데, 고용노동부가 '기타'로 분류한 반려 사건은 '법 적용 제외'와 '법 위반 없음'이 대부분인 것으로 확인됐다. 여기서 법 적용 제외는 5인 미만 사업장이나 근로계약을 체결하지 않은 도급, 하청, 용역, 특수고용, 프리랜서 등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이 해당된다.
장종수 직장갑질119 노무사는 "5인 미만 사업장에 종사하는 350만 이상의 노동자는 직장 내 괴롭힘이 있어도 제도적으로 구제받을 길이 없는 참담하고 반인권적인 상황"이라며 "5인 미만 사업장 노동자를 비롯한 법 사각지대에서 일하는 모든 노동자를 보호하는 법 개정이 시급하다"고 밝혔다.
고용노동부는 이같은 지적을 수용하면서도 5인 미만 사업장의 경우 법 의무 이행에 있어 현실적인 문제들이 존재한다고 짚었다. 규모가 작은 사업장일수록 더욱 세심하게 지원하겠다는 게 주무부처의 원론적인 입장이다.
고용노동부 관계자는 "근로기준법상 사용자의 의무를 이행하기 위해서는 괴롭힘 조사, 피해자와 가해자 분리 및 배치전환, 가해자 징계 등을 실시해야 하나 5인 미만 소규모사업장의 경우 인사노무관리 역량과 공간상 한계 등 법 준수 가능성과 법상 의무 불이행에 대한 벌칙·과태료 부담 등 제반 사정을 종합적으로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소규모사업장일수록 사업주의 의지와 관심이 중요한 만큼, 사업주 대상 교육·홍보를 강화하고, 괴롭힘 예방 컨설팅 등을 지원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홍민성 한경닷컴 기자 msho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