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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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례지만 MBTI(성격유형검사)가 어떻게 되세요?"

고객사와의 미팅이 잦은 외국계 컨설팅 기업 종사자 박모씨(30)는 타인을 처음 만난 자리에서 최근 가장 많이 꺼내는 주제로 'MBTI'를 꼽았다. 그는 "MBTI로 대화를 시작하면 자연스럽게 대화 흐름이 이어지고 공감대가 형성된다"고 설명했다.
MBTI가 대중화하면서 MZ세대(밀레니얼+Z세대) 직장인들 사이에서는 이른바 'MBTI 과몰입러(푹 빠져 이를 과도하게 믿는 사람을 뜻하는 신조어)'가 등장했다. 전문가들은 MZ세대의 강한 호기심과 타인에게 자신을 드러내고 싶어 하는 특성이 반영된 현상이라고 풀이한다. MBTI는 젊은층을 중심으로 하나의 놀이문화로 자리 잡은 분위기다.

MBTI는 분석심리학자 칼 융의 성격유형 이론을 바탕으로 1920년 브릭스 집안의 어머니 캐서린 브릭스와 딸 이사벨 마이어스가 개발한 성격검사로 16개의 성격 유형이 특징이다. 융의 이론에 근거해 마을 사람들의 성격 유형, 패턴 등을 구분했더니 유용했다는 게 당시 브릭스 모녀의 설명이다.

한국 MBTI 연구소에 따르면 'MBTI 검사'는 개인의 성격 유형을 분류하는 설문 형식의 지필 검사를 뜻한다. 자신과 타인의 심리적 선호의 차이를 이해하도록 돕는 검사 도구라는 의미다. 개인의 성격 유형을 △에너지의 방향 △인식 기능 △판단 기능 △생활양식 네 가지 양극 지표에 따라 16가지 유형으로 분류한다.

이 검사는 20분이면 검사가 완료돼 간단하고 빠르게 성격을 파악할 수 있고, 개인의 성향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는 평가가 대중들 사이 나오고 있다. 설문지 형식이고, 과거 유행한 '혈액형별 성격' 등과 비교해 체계적이라는 이유로 대중의 신뢰를 받는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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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부 직장인들은 본인을 'MBTI 과몰입러'라고 칭하며 업무와 연결짓기도 한다. 26일 직장인 익명 커뮤니티 '블라인드'에 본인을 대기업 개발자라고 밝힌 직장인 A씨는 'ESFP(자유로운 영혼의 연예인)인 개발자의 한탄'이라는 제목의 글을 올렸다.

해당 글에서 A씨는 "(MBTI가) ESFP인데 소프트웨어(SW) 직군과 정말 안 맞는다"라며 "특유의 낙천적인 성격 때문인지 인생 살기는 좋은 성격이다. 다만 개발할 때는 구멍이 많이 생기는 것 같다"고 토로했다.

MBTI 검사 결과 사람을 대하는 직업이 더 잘 맞을 것 같다는 게 A씨의 설명이다. 이에 그는 "MBTI 과몰입이라고 생각할 수 있겠으나, 이것도 결국 내 답을 취합해 (성격과 관련된) 결과만 보여준 것 아니냐"라며 "이런 탓에 '혹시 나는 이게(개발자가) 천직이 아닌 걸까'라는 불안함이 크다"고 덧붙였다.

또한 일부 아르바이트 구인공고에서 MBTI를 거론하는 등 일자리에도 MBTI가 영향을 미치는 사례가 있어 취업준비생 사이 논란이 되기도 했다.

다만 구직자들은 일자리에 MBTI를 연결짓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데 무게를 두고 있다. 지난해 3월 알바몬이 잡코리아와 대학생, 직장인·구직자 612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MBTI 신뢰도와 채용 시 반영에 대한 찬반 의사' 조사에 따르면, MBTI 결과는 대체로 믿지만, 취업할 때 제출하는 것은 '반대'하는 의견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채용 시 MBTI 검사를 하거나 결과를 제출하도록 요구하는 것에 대해서는 전체 응답자 중 '반대한다'는 의견은 61.3%로 전 연령대에서 높게 나타났다. 반대하는 이유로는 MBTI 유형별 분석에 따른 '편견'을 우려하는 응답자가 81.1%(복수 선택)로 가장 많았다. 이어 기업이 원하는 MBTI 유형으로 조작해 답변할 수 있어 결과의 신뢰도가 떨어진다(53.3%), MBTI는 과학적 근거가 부족하다고 알려져 전문성이 떨어질 것 같다(48.%)가 뒤를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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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업준비생 김모 씨(28)는 "MBTI는 사람의 대략적인 성향을 미리 알 수 있다는 측면에서 흥미로운 주제로써 이야기가 돼야지, 사람을 분류하고 선입견을 가지고 바라볼 수 있기 때문에 과몰입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본다"며 "사람은 분류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닌 개인의 한 주체로서 바라보아야 한다"는 의견을 밝혔다.

전문가들은 MBTI가 가벼운 성격 파악 도구로는 활용될 수 있으나, 조직 인사에 반영하는 도구로 쓰이기에는 미흡하다고 지적한다.

임명호 단국대 심리학과 교수는 "사람을 고용할 때 여러 방면에서 역량을 살펴야 하는데, MBTI를 끌어들여 단편적으로 생각하면 오히려 적재적소에 인사를 내는 데 적절하지 못할 수 있다"며 "예컨대 기업에서 'E(외향형)' 취준생을 선호한다고 해도, 내향적인 사람들도 분명 조직 내에서 잘 어우러져 일을 잘 할 수도 있고 기업의 생산성을 위해 불리하지만은 않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홀랜드 적성 검사' 등 다른 도구를 활용하거나 심리전문가와 인사평가를 수행하는 것이 더 나을 수 있다는 의견이다.

임 교수는 "MBTI는 과학적인 근거가 없기 때문에 너무 믿어서는 안 된다. 틀림없이 믿어야 한다고 과신하면 본인의 성격뿐만 아니라 타인의 성격을 판단할 때 오류가 생길 수 있다"며 "MBTI는 관계를 시작할 때 서로 친밀감 높이기 위한 도구 정도로 사용하는 것이 좋다"고 강조했다.

김세린 한경닷컴 기자 celin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