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빛 물든 바다…시간이 켜켜이 쌓인 자개로 표현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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Zoom In - 尹대통령이 바이든에게 선물한 '자개 달항아리' 류지안 작가
자개는 전통·현대 아우르는 소재
고단한 작업이지만 도전 즐거워
시간·공간 잇는 창의성 보여줄 것
45개국 頂上 선물 등 작업해와
롤스로이스 본사서 전시 제안
자개는 전통·현대 아우르는 소재
고단한 작업이지만 도전 즐거워
시간·공간 잇는 창의성 보여줄 것
45개국 頂上 선물 등 작업해와
롤스로이스 본사서 전시 제안
“달빛과 파도, 윤슬을 표현하기 위해 바다에서 긴 시간을 견뎌온 자개를 선택했어요. ‘자개’ 하면 류지안이 떠오르게 하는 것이 작가로서 목표입니다.”
지난달 말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윤석열 대통령으로부터 받은 국빈선물이 화제였다. 새하얀 백자 달항아리인데 겉면을 자개로 덮어 반짝임이 남달랐다. 이 작품을 만든 류지안 작가(사진)는 “자개 사업을 하던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 어릴 적부터 자개에 큰 매력을 느꼈다”며 “가구부터 시작해 회화, 오브제 등에 현대적 감성으로 자개를 입히는 작업을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류 작가를 만난 건 그의 작품을 전시 중인 롯데호텔. 로비에서부터 높이 111㎝짜리 짙푸른 색 달항아리가 압도했다. 류 작가는 “밤바다에 비친 달빛에서 영감을 받은 것”이라고 했다. 10여년 전 고가구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하면서 작품활동을 시작한 류 작가는 “시간의 흐름을 품고 있는 자개야말로 과거부터 현재를 다 보여주는 소재”라며 “전통과 현대, 동양과 서양을 오가며 시간성과 연결성, 새로움과 창의성을 보여주고 싶다”고 강조했다.
형태는 달항아리지만 흙으로 빚지 않는다. 자개를 붙여야 하기 때문이기도 하고 흙으로는 1m가 넘는 크기를 빚을 수가 없어서다. 류 작가는 “자동차나 요트를 만들 때 사용하는 FRP라는 현대산업재료로 제작한다”며 “그 위에 자개를 잘게 잘라 붙인 뒤 자동차 색 입히듯 코팅 과정을 거친다”고 설명했다. 그가 “과거와 현재를 잇는 작업”이라고 표현하는 것도 오랜 시간을 품은 조개껍질(자개)로 현대적 소재를 덧씌우기 때문이다. 표현방식과 결과물은 현대예술이고 작업과정은 수공예품을 만드는 전통방식인 셈이다.
그가 ‘현대자개예술’의 길로 들어선 계기는 미국 뉴욕에서 디자인을 공부하던 시기, 일본인 작가들의 죽공예 전시회를 본 뒤였다. 외국인들의 반응이 매우 뜨거웠다. 류 작가는 “럭셔리 브랜드들이 귀한 보석으로 여기는 자개를 나만의 새로운 시각으로 외국인들에게 소개해보자는 다짐을 한 계기였다”고 회상했다.
류 작가의 대표 작품은 두 가지를 꼽을 수 있다. 바다에서 영감을 받은 ‘비욘드 디 오션’과 과거를 재해석한 ‘인터섹션’ 시리즈다. 짙푸른 달항아리, 새하얀 달항아리, 자개를 붙여 파도를 표현한 의자 등은 모두 비욘드 디 오션 시리즈 작품이다. 류 작가는 “반짝임의 본질, 바다의 생명력과 시간의 흐름을 파도의 물결로 표현한 것”이라며 “달이 파도를 담고 있다는 생각이 달항아리로 이어진 것”이라고 했다.
자개에 주목한 계기가 궁금했다. 그는 “어릴 적 자개사업을 하던 아버지 덕분에 자연스레 자개를 접한 것이 시작이었지만 외국에선 자개를 아주 귀한 보석으로 여긴다는 걸 알게 된 영향이 컸다”고 했다. “외국인들이 동양적인 소재에 현대적 터치를 더한 것 자체가 매우 아름답다고 보더라”는 설명이다. 그의 아버지 청봉 유철현 작가는 나전칠기 공방을 운영하며 장인을 양성했다.
류 작가는 “첨단 과학기술과 미술이 융합한 새로운 장르가 등장하는 시대에 나는 사람의 손으로 빚어낸 나만의 장르를 개척해나간다고 생각한다”며 “전통과 현대, 동양과 서양을 오가면서 어디에도 속하지만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개인적 삶이 작업에 자연스레 투영된다”고 강조했다.
류 작가의 달항아리가 국빈선물로 채택된 건 몇 달 전. 처음엔 뉴욕의 풍경을 담은 작품을 논의하다가 크기가 너무 커 선물하기 좋은 자개 달항아리가 선택됐다. 알려지진 않았지만 류 작가의 작품들은 예전부터 45개국의 정상, 주요 인사들에 전하는 국빈선물로 꾸준히 선택돼왔다.
류 작가의 작품세계는 ‘시간’으로 함축된다. 자개가 빛을 뿜어내기까지 걸리는 시간, 자개를 잘라 붙이는 작업의 수고로움, 조각들이 전체로 완성된 뒤의 ‘아우라’까지 모두 ‘시간의 흐름’이 관통한다.
슬럼프에 대해 묻자 류 작가는 “항상 있다”고 했다. 작업의 고단함과 외로움 때문. 하지만 그는 “주변의 모든 것에서 영감을 받고 계속 새로운 걸 고민한다”며 “변주를 주는 모든 과정이 즐겁지만 매순간 슬럼프이고, 그럼에도 또 다른 걸 도전할 때 힘을 얻는다”고 말했다.
류 작가가 꼽은 인상적이었던 작업은 2년 전 롤스로이스와의 협업이다. 한국인 최초로 팬텀 대시보드에 자개를 입히는 작업을 했고, 롤스로이스 본사가 전시회를 열자고 제안해 성사됐다. “요트, 자동차에 쓰이는 현대 소재 위에 자개를 입히는 등 과거와 현재를 접목시키는 게 즐거워요. 앞으로는 호텔 로비 전체를 꾸미는 등 거대한 설치미술을 해보고 싶습니다. 자개로 이렇게까지 작업을 하는 한국 작가가 있다는 걸 외국에 더 많이 알리고 싶어요.”
민지혜/구교범 기자 spop@hankyung.com
사진=최혁 기자 chokob@hankyung.com
지난달 말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윤석열 대통령으로부터 받은 국빈선물이 화제였다. 새하얀 백자 달항아리인데 겉면을 자개로 덮어 반짝임이 남달랐다. 이 작품을 만든 류지안 작가(사진)는 “자개 사업을 하던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 어릴 적부터 자개에 큰 매력을 느꼈다”며 “가구부터 시작해 회화, 오브제 등에 현대적 감성으로 자개를 입히는 작업을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류 작가를 만난 건 그의 작품을 전시 중인 롯데호텔. 로비에서부터 높이 111㎝짜리 짙푸른 색 달항아리가 압도했다. 류 작가는 “밤바다에 비친 달빛에서 영감을 받은 것”이라고 했다. 10여년 전 고가구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하면서 작품활동을 시작한 류 작가는 “시간의 흐름을 품고 있는 자개야말로 과거부터 현재를 다 보여주는 소재”라며 “전통과 현대, 동양과 서양을 오가며 시간성과 연결성, 새로움과 창의성을 보여주고 싶다”고 강조했다.
형태는 달항아리지만 흙으로 빚지 않는다. 자개를 붙여야 하기 때문이기도 하고 흙으로는 1m가 넘는 크기를 빚을 수가 없어서다. 류 작가는 “자동차나 요트를 만들 때 사용하는 FRP라는 현대산업재료로 제작한다”며 “그 위에 자개를 잘게 잘라 붙인 뒤 자동차 색 입히듯 코팅 과정을 거친다”고 설명했다. 그가 “과거와 현재를 잇는 작업”이라고 표현하는 것도 오랜 시간을 품은 조개껍질(자개)로 현대적 소재를 덧씌우기 때문이다. 표현방식과 결과물은 현대예술이고 작업과정은 수공예품을 만드는 전통방식인 셈이다.
그가 ‘현대자개예술’의 길로 들어선 계기는 미국 뉴욕에서 디자인을 공부하던 시기, 일본인 작가들의 죽공예 전시회를 본 뒤였다. 외국인들의 반응이 매우 뜨거웠다. 류 작가는 “럭셔리 브랜드들이 귀한 보석으로 여기는 자개를 나만의 새로운 시각으로 외국인들에게 소개해보자는 다짐을 한 계기였다”고 회상했다.
류 작가의 대표 작품은 두 가지를 꼽을 수 있다. 바다에서 영감을 받은 ‘비욘드 디 오션’과 과거를 재해석한 ‘인터섹션’ 시리즈다. 짙푸른 달항아리, 새하얀 달항아리, 자개를 붙여 파도를 표현한 의자 등은 모두 비욘드 디 오션 시리즈 작품이다. 류 작가는 “반짝임의 본질, 바다의 생명력과 시간의 흐름을 파도의 물결로 표현한 것”이라며 “달이 파도를 담고 있다는 생각이 달항아리로 이어진 것”이라고 했다.
자개에 주목한 계기가 궁금했다. 그는 “어릴 적 자개사업을 하던 아버지 덕분에 자연스레 자개를 접한 것이 시작이었지만 외국에선 자개를 아주 귀한 보석으로 여긴다는 걸 알게 된 영향이 컸다”고 했다. “외국인들이 동양적인 소재에 현대적 터치를 더한 것 자체가 매우 아름답다고 보더라”는 설명이다. 그의 아버지 청봉 유철현 작가는 나전칠기 공방을 운영하며 장인을 양성했다.
류 작가는 “첨단 과학기술과 미술이 융합한 새로운 장르가 등장하는 시대에 나는 사람의 손으로 빚어낸 나만의 장르를 개척해나간다고 생각한다”며 “전통과 현대, 동양과 서양을 오가면서 어디에도 속하지만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개인적 삶이 작업에 자연스레 투영된다”고 강조했다.
류 작가의 달항아리가 국빈선물로 채택된 건 몇 달 전. 처음엔 뉴욕의 풍경을 담은 작품을 논의하다가 크기가 너무 커 선물하기 좋은 자개 달항아리가 선택됐다. 알려지진 않았지만 류 작가의 작품들은 예전부터 45개국의 정상, 주요 인사들에 전하는 국빈선물로 꾸준히 선택돼왔다.
류 작가의 작품세계는 ‘시간’으로 함축된다. 자개가 빛을 뿜어내기까지 걸리는 시간, 자개를 잘라 붙이는 작업의 수고로움, 조각들이 전체로 완성된 뒤의 ‘아우라’까지 모두 ‘시간의 흐름’이 관통한다.
슬럼프에 대해 묻자 류 작가는 “항상 있다”고 했다. 작업의 고단함과 외로움 때문. 하지만 그는 “주변의 모든 것에서 영감을 받고 계속 새로운 걸 고민한다”며 “변주를 주는 모든 과정이 즐겁지만 매순간 슬럼프이고, 그럼에도 또 다른 걸 도전할 때 힘을 얻는다”고 말했다.
류 작가가 꼽은 인상적이었던 작업은 2년 전 롤스로이스와의 협업이다. 한국인 최초로 팬텀 대시보드에 자개를 입히는 작업을 했고, 롤스로이스 본사가 전시회를 열자고 제안해 성사됐다. “요트, 자동차에 쓰이는 현대 소재 위에 자개를 입히는 등 과거와 현재를 접목시키는 게 즐거워요. 앞으로는 호텔 로비 전체를 꾸미는 등 거대한 설치미술을 해보고 싶습니다. 자개로 이렇게까지 작업을 하는 한국 작가가 있다는 걸 외국에 더 많이 알리고 싶어요.”
민지혜/구교범 기자 spop@hankyung.com
사진=최혁 기자 chokob@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