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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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강남의 한 고등학교 기간제 교사인 A씨는 지난달 서울 대치동의 대형 학원에 모의고사용 ‘킬러 문항’ 3개를 약 100만원에 팔았다. 지인의 권유로 지난해 초부터 대형 학원에 문제를 판매하기 시작한 A씨는 아예 부업으로 삼고 매달 많게는 10개씩 문제를 팔고 있다. 월급이 300만원 안팎인 그는 “학교에서 받는 돈보다 킬러 문항을 판매해 벌어들이는 돈이 더 많다”고 말했다.

‘사교육 카르텔’의 핵심으로 꼽히는 킬러 문항을 둘러싼 먹이사슬의 속내가 속속 민낯을 드러내고 있다. 대형 학원에 킬러 문항을 만들어 파는 일을 부업으로 삼는 교사까지 나올 정도다. A씨는 자신처럼 킬러 문항을 판매하는 교사가 상당수 있다고 말했다.

21일 업계에 따르면 국어 과목 킬러 문항은 25만원, 수학 과목은 50만원 선에서 거래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출제자가 한국교육과정평가원에 섭외돼 대학수학능력시험이나 전국연합학력평가 문제를 출제한 경험이 있으면 ‘웃돈’이 붙는다.

일선 교사들은 학생에게 가르칠 킬러 문항을 만드는 데 전력을 다하는 동료가 적잖다고 입을 모은다. 킬러 문항이 학생들의 대입 당락을 가르다 보니 수업 진도에만 신경 쓸 수 없다는 것이다.

교사가 내신 시험문제 출제를 앞두고 다른 과목 교사를 찾아가는 풍경도 펼쳐진다. 국어 과목 교사가 대표적이다. 수능 국어 시험은 대개 비문학 영역에서 법·경제를 다루는 사회과학 지문이나 과학기술 지문이 포함된 문제가 킬러 문항으로 꼽힌다. 교사 본인조차 이해하지 못할 전문적인 내용이 많아 출제에 앞서 사회나 과학 과목 교사를 찾아가 설명을 구하는 것이다. 서울의 한 공립고등학교에서 근무하는 5년차 교사 한모씨(33)는 “한 달에 걸쳐 대학 전공 서적을 공부해 만든 문제를 학생들에겐 5분 안에 풀라고 하는 것이 현실”이라고 했다.

학생들도 수험 준비 시간 대부분을 킬러 문항을 푸는 데 할애하고 있다. 올해 수능을 앞둔 수험생 박지원 군(19)은 “학원에선 킬러 문항을 잡기 위해 2000년대 초반 경찰대 입학 문제부터 PSAT(공직적격성 평가 시험), LEET(로스쿨 입학시험)에 나온 문제를 푸는 일도 있다”고 했다.

일선 교사들 사이에선 결국 수업 시간이 ‘킬러 문항 풀이 시간’으로 전락했다는 자조적 반응까지 나온다. 학생들이 학교 수업은 제쳐두고 학원에서 나눠준 초고난도 문제집을 푸는 데 집중하고 있는 게 현장의 모습이다.

한편 이주호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이날 KBS 뉴스9에 출연해 “킬러 문항이 있어야 수능 변별력이 있다는 것은 사교육계 입장을 대변하는 궤변에 불과하다”며 “오는 26일 사교육비 경감 대책을 발표할 때 역대 킬러 문항 사례를 소상하게 공개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광식 기자 bumer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