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롯데타워 '맨손 등반가' 구한 롯데물산 신입 여직원
“낙하산을 멨지만 뛰어 내리면 즉사할 가능성이 99%였어요. 큰 문제가 일어나지 않아 기쁩니다.”

지난 12일 평소와 같이 오전 8시께 출근한 롯데물산 타워기술팀의 신입사원 문다영 씨는 상사로부터 긴급 전화를 받았다. 123층 높이 롯데월드타워 건물 외벽을 한 남성(등반가 조지 킹 톰슨)이 맨손으로 오르고 있다는 것.

이른 시간대 출근을 한 직원 중 영어로 의사 소통이 가능한 직원이 없다는 걸 안 문씨는 “곤돌라를 타고 설득해보겠다”고 자원했다. 문씨는 “73층에서 출발해 건물 외벽을 따라 이동하는 곤돌라를 타본 경험은 한 번도 없었다”며 “너무 무서워 아래만 보지 말자는 생각으로 조종 기사와 함께 발걸음을 옮겼다”고 말했다.

톰슨은 이날 오전 5시쯤부터 롯데월드타워를 오르기 시작해 8시께엔 72층에 도달했다. 이곳에서 만난 톰슨은 문 씨의 말을 들은 척도 하지 않고 무선 이어폰으로 음악을 들었다. 오히려 이들을 보자마자 “당장 뛰어내리겠다”고 소리쳤다. 톰슨은 “전달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다”며 “건물 꼭대기에서 뛰어내리려 했지만 더 다가오면 여기(72층)에서 내려갈 것”이라며 낙하산을 가리켰다.

문 씨는 이 순간 기지를 발휘했다. 72층까지 오르느라 체력이 방전된 그에게 재빨리 다가가 안전 조끼를 입히고 여기에 달린 안전 고리를 곤돌라 난간에 걸었다. 또 당장 말이 통하지 않는다고 판단한 문 씨는 190㎝가 넘는 톰슨 씨의 손과 발을 붙잡고 설득을 시작했다.

문 씨는 “타원형인 롯데월드타워의 구조상 이 자리에서 뛰어 내릴 경우 낙하산을 펴지도 못하고 건물에 부딪힐 것”이라며 “고리가 걸린 상황에서 뛰어내리면 우리까지 위험하다”고 했다. 또 “건물 아래엔 이미 시민들이 모여 있어 엉뚱한 피해자가 나올 수 있다”는 얘기도 덧붙였다. 톰슨은 대답은 하지 않고 가만히 생각에 잠긴채 손만 내저었다. 생각에 잠긴듯했다.

이때 조종 기사가 곤돌라를 73층 출입문으로 이동시켰다. 기다리고 있던 서울 송파경찰서 관계자와 소방 대원 등이 톰슨 씨를 체포했다. 톰슨은 그제서야 모든 걸 포기했다는 듯 경찰의 지시에 응했다. 문 씨는 이후 김동권 송파경찰서장에게 “범인 검거에 기여한 공이 크다”는 내용의 감사장을 받았다. 류제돈 롯데물산 대표도 지난 14일 창립 기념일에 문씨에게 특별상을 줬다. 신입 사원이 특별상을 받은 건 1982년 창사 이후 41년 만에 처음이다.

톰슨의 위험한 고층 건물 외벽타기는 처음이 아니다. 2021년 런던 스트래토스피어 타워(36층)를 맨손으로 등정한 뒤에 “기후위기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우려고 올랐다”고 했다. 이번에도 기후위기와 관련한 메시지를 내보내려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업무방해 혐의로 지난 21일 검찰 송치됐다.

김우섭 기자 dute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