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수 단지' 낙인 우려 입주민 난색…'안전 불감증' 지적도
전문가 "호우 패턴 달라져 과하리만큼 재해 방지 노력 필요"
"돈들고 집값에도 영향"…물막이판 거부 '침수위험' 아파트들
"근 몇 년간 침수 피해가 없었습니다.

물막이판까지는 불필요하다고 생각해서 동대표 회의에서 설치하지 않기로 결정한 겁니다.

"
지난 17일 찾은 서울 양천구의 한 아파트 단지 지하주차장 출입구에선 물막이판을 찾아볼 수 없었다.

이 아파트는 서울시가 지정한 '침수 위험' 아파트 단지 중 한 곳으로 물막이판 설치 지원 대상이었으나 주민들이 거부하면서 설치가 무산된 것이다.

침수 위험 아파트 단지로 지목된 서울 시내 82곳 중 물막이판 설치를 거부한 단지는 이 아파트뿐만이 아니다.

전체의 10%에 달하는 8곳이 물막이판 설치에 손사래를 쳤다.

역시 설치를 거부한 강동구의 한 아파트 관계자는 "비교적 저렴한 탈착식 물막이판 역시 주민들이 비용을 일부분 부담해야 해서 동의를 얻기 쉽지 않았다"며 "침수 단지로 낙인찍혀 집값에 영향을 미치면 어떡하느냐는 민원도 있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작년 여름 경북 포항시 아파트 지하주차장 침수로 7명이 숨지고 올여름에도 청주 오송 지하차도 침수로 14명이 목숨을 잃는 등 지하공간에서의 참사가 잇따른 가운데 예방조치에 소극적인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특히 '극한호우'라는 기상용어가 등장할 정도로 집중호우의 양상이 과거와 판이해지는 와중에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참사가 발생할 가능성을 배제해서는 안 된다는 지적도 나온다.
"돈들고 집값에도 영향"…물막이판 거부 '침수위험' 아파트들
전문가들도 안전불감증이 드러난 단적인 사례라며 이제는 오히려 과도하다고 여겨질 만큼 재해 방지 노력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고 조언한다.

이창무 한양대 도시공학과 교수는 "예전과 전혀 다른 패턴으로 내리는 집중호우에 대비하기 위해선 현재 시점에 피해가 없을지라도 과하리만큼 재해 방지에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교수는 "아파트 단지는 사적 공간이지만 사고가 일어나면 공적 이슈로 대두되는 만큼 어느 정도 공공 개입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며 "물막이판 설치를 거부하는 단지를 대상으로 시나 정부가 계속 설득해야 한다"고 말했다.

공하석 우석대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지하주차장과 같은 지하공간의 침수를 막는 데 물막이판은 굉장히 효과적"이라면서 "설치 비용에 비해 효과가 아주 크기 때문에 물막이판 설치를 법적으로 강제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과도하리만큼 안전에 신경 쓰는 게 기후위기 시대에 안전 선진국으로 나아가는 길"이라고 덧붙였다.

시민들이 물막이판 설치와 같은 재해 예방 조치에 있어 안전에 대한 경각심을 한층 높일 필요가 있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이영주 서울시립대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물막이판) 설치·유지 비용, 사회적 시선 등 설치를 꺼리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안전에 대한 개인의 의식과 역할이 특히 중요한 시대"라고 말했다.

이 교수는 "사회는 더욱 복잡다단해지고 여기에 기후위기까지 겹쳐 새로운 유형의 재난이 상시 닥칠 수 있는 구조로 변하고 있다"며 "안전에 대한 공적인 노력과 개인의 노력이 함께 가야 재해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서울시는 지난 10년간 침수 이력이 있는 지역에 있거나 실제 침수가 발생했던 아파트 단지 82곳을 파악해 지하주차장 입구 물막이판 설치를 지원하고 있다.

2천만원 한도 내에서 한 단지당 설치비용의 최대 50%까지 지원한다.

지난 16일 기준 82곳 중 73%인 60곳이 지하주차장 입구에 물막이판을 설치했고 17%인 14곳은 설치를 앞두고 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