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월성 원전 모습. 사진=한경DB
신월성 원전 모습. 사진=한경DB
한국형 원자로 수출을 두고 갈등 중인 한국수력원자력과 미국 웨스팅하우스가 합의점을 찾지 못하고 잠시 중단했던 국제중재 절차를 재개했다. 중재판정부가 구성돼 분쟁금액을 얼마로 산정할 지 등을 논의 중인 것으로 확인됐다. 웨스팅하우스가 미국에서 한수원의 원전 수출을 금지해달라는 소송전을 이어가는 등 압박을 이어가고 있어, 양측의 마찰이 수천억원대 분쟁으로 커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중재판정부 구성분쟁금액 논의

1일 산업계와 법조계 등에 따르면 한수원은 한국형 원자로 ‘ARP1400’를 자유롭게 수출할 수 있는지를 두고 웨스팅하우스와 다퉜던 국제중재 절차를 최근 다시 진행하고 있다. 니콜라스 플래처 의장 등으로 중재판정부가 구성돼 양측의 입장을 확인 중이다. 두 회사는 올해 초 대한상사중재원 국제중재센터에 중재 절차를 중지해달라고 요청하고 합의에 나섰지만 끝내 절충점을 찾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수원은 이번 중재에서 “로열티 지급 없이 웨스팅하우스와 미국 정부의 허가를 받지 않고도 원전 수출을 할 수 있음을 확인해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웨스팅하우스는 “한수원의 원전 수출을 금지하고 손해배상 책임도 물어야 한다”고 맞서는 상황이다. 양측은 현재 중재판정부와 이번 사건의 분쟁금액을 얼마로 봐야하는지를 논의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업계에선 분쟁금액이 수천억원대에 달할 수 있다고 추산하고 있다. 법조계 관계자는 “분쟁금액을 바탕으로 중재인들의 수임료 등이 결정된다는 것을 고려하면 양측이 본격적인 중재절차에 들어갔다고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번 분쟁은 한수원이 폴란드에 원전 수출을 추진하던 지난해 10월 웨스팅하우스가 미국 법원에 한수원의 한국형 원자로 수출을 막아달란 소송을 내면서 비롯됐다. 웨스팅하우스는 한국형 원자로가 자사 디자인 및 기술을 바탕으로 개발됐다고 주장하고 있다. 한수원은 곧바로 중재를 제기해 웨스팅하우스와 맺었던 기술사용협정문에 원전 관련 기술을 사용할 수 있는 ‘실시권’이 적혀있다고 반박해왔다.

두 회사가 올초 합의 의사를 보인 데 이어 지난 4월 윤석열 대통령이 미국을 방문했을 때 이창양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등이 “정부 차원에서 이번 분쟁을 해결하자”고 요청하면서 한때 원만하게 해결될 수도 있다는 기대감이 조성되기도 했다. 하지만 멈췄던 중재절차가 다시 진행되면서 법적다툼이 쉽게 끝나기 어려워졌다는 평가다.

폴란드 원전사업에도 '불똥' 튀나

분쟁이 본격화할 조짐이 나타나면서 한국이 추진 중인 폴란드 원전 건설사업에 어떤 영향을 미칠 지에도 관심이 쏠리는 분위기다. 한수원은 지난해 10월 폴란드 국영전력공사(PGE), 민간발전사 제팍(ZE PAK)과 폴란드 퐁트누프 지역에 원전을 짓는 협력의향서(LOI)를 체결했다. PGE와 제팍은 지난 4월 합작법인 PPEJ를 세우며 원전 건설을 위한 밑작업에 들어갔다. 한수원은 이들이 두 번째 합작법인을 설립하면 지분투자 규모를 확정하고 본계약을 맺을 계획이다.

보이치에흐 동브로프스키 PGE 사장은 한국을 찾은 지난 4월 “언제든지 본계약을 체결할 수 있다”며 추진 의지를 적극 드러냈지만, 한수원과 웨스팅하우스간 소송 및 분쟁이 어떻게 흘러가느냐에 따라 폴란드 원전사업 속도에 변화가 생길 수 있다는 의견이 적지 않다. 패트릭 프래그먼 웨스팅하우스 최고경영자(CEO)가 비슷한 시기 폴란드 현지 언론과의 인터뷰를 통해 “지식재산권을 침해한 한국 원전이 폴란드에 지어질 일은 없을 것”이라고 말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긴장감이 더욱 팽팽해진 상태다.

웨스팅하우스 역시 폴란드에서 원전 건설사업을 진행하고 있는 것도 변수로 꼽힌다. 폴란드 정부는 지난달 웨스팅하우스의 루비아토프-코팔리노 지역 원전 건설계획이 담긴 사전허가서를 승인했다. 웨스팅하우스는 이번에 승인받은 원전 3기 외에도 추가로 3기 건설계획을 승인받아 총 6기를 폴란드에 지을 예정이다. 한수원보다 빠르게 건설사업을 진행 중이다.

김진성 기자 jskim1028@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