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의사의 ‘뇌파계 진단기기 사용’ 여부를 두고 10년을 끌어온 법정 싸움에서 한의사 측이 최종 승소했다. 대법원은 “한의사가 뇌파계 진단기기를 사용해도 보건위생상 위해의 우려가 없다”고 판단했다. 작년 말 한의사의 초음파 진단기기 사용을 허용한 대법원 결정에 이어 한의사의 의료기기 사용 범위를 한층 확대한 판결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13년 끌어온 뇌파계 소송 한의사 승소

한의사 뇌파계 사용 가능…10년 논란 종지부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1부는 18일 한의사 A씨가 보건복지부 장관을 상대로 제기한 한의사면허자격정지처분 취소 소송 상고심을 열어 원고 일부 승소 판결한 원심을 확정했다. 재판부는 “뇌파계를 파킨슨병, 치매 진단에 사용한 행위가 한의사에게 특정하게 허용된 것 이외의 의료행위에 해당하지 않는다”며 이같이 선고했다. 뇌파계란 대뇌 피질에서 발생하는 뇌파를 검출해 증폭·기록하는 의료기기로, 뇌 관련 질환을 진단하거나 뇌를 연구하는 데 사용된다.

이 사건의 발단은 13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서울에서 뇌신경 전문 한의원을 운영하는 A씨는 2010년 9월부터 약 3개월 동안 뇌파계 진단기기를 파킨슨병과 치매 진단에 사용했다. 같은 해 11월 한 언론매체는 “뇌파계를 사용해 파킨슨병과 치매를 진단하고 한약으로 치료한다”는 내용의 기사를 보도하면서 A씨가 환자에게 뇌파계를 사용하는 사진을 함께 게재했다. 복지부는 이듬해 4월 “A씨가 한의사로서 특정하게 허용된 것 외의 의료행위를 하고 의료광고 심의 없이 기사를 게재했다”며 3개월의 한의사면허 자격정지 및 경고 처분을 내렸다.

A씨는 중앙행정심판위원회 재결 신청으로 맞섰다. 중앙행정심판위는 자격정지 기간을 1개월15일로 단축하는 데 그쳤을 뿐 자격정지 자체를 취소하지는 않았다. A씨는 소송을 제기했지만 1심 재판부는 복지부 처분이 적법하다고 판단했다.

2심에서 판결이 뒤집혔다. 2심 재판부는 기존 대법원 판례를 적용해 A씨가 뇌파계를 사용한 행위가 “한의사로서 특정하게 허가된 것 이외의 의료행위에 해당한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작년 12월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한의사의 초음파 사용 합법 여부가 쟁점인 사건을 심리하면서 진단용 의료기기 사용이 한의사에게 특정하게 허용된 것 이외의 의료행위에 해당하는지를 판단하는 기준을 새롭게 제시했는데, 이날 대법원은 한의사의 뇌파계 사용도 이 기준에 부합한다고 판단했다.

당시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판단 기준으로 △관련 법령에서 금지되는지 여부 △보건위생상 위해 우려 △한의학적 원리의 적용 내지 응용하는 행위와 무관한 것임이 명백한지 여부 등을 제시했다. 그러면서 “이런 기준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사회통념에 따라 합리적으로 판단해야 한다”며 한의사의 초음파 사용이 위법하다는 취지로 판결한 원심을 파기환송했다. 이 사건의 파기환송심은 오는 24일 열린다.

○“의료기기 사용 범위 넓어질 듯”

양·한방 의료계는 한의사의 뇌파계 진단기기 사용 여부를 가리는 대법원 판결에 촉각을 곤두세워 왔다. 작년 12월 대법원 전원합의체에서 마련된 새로운 기준이 적용될 수 있는 첫 번째 사건인 만큼 이날 선고에 따라 한의사의 현대의료기기 사용이 새 국면을 맞을 수 있기 때문이다.

법원이 초음파에 이어 뇌파계 관련 사건에서도 한의사 측 손을 들어주면서 양·한방 의료계의 희비가 엇갈렸다. 대한한의사협회는 선고 직후 “초음파 판결에 이은 또 하나의 정의롭고 당연한 판결”이라며 “의료기기 사용에 획기적인 전환점이 마련됐다”고 크게 반겼다. 대한의사협회는 “무면허 의료행위를 조장해 국민의 생명과 건강을 위협하게 될 것”이라며 “보건의료에 심각한 위해로 돌아올 것”이라고 반발했다.

민경진 기자 mi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