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TS와 블랙핑크 팬인 친구들이 왜 한국 좋아하는지 알 것 같아요" 인구 8만 명이 채 안 되는 유럽의 작은 나라 안도라에서 온 17세 소녀가 여자프로테니스(WTA) 투어 하나은행 코리아오픈 단식 8강에 올랐다.
인구 8만 명이면 서울시 구 가운데 인구가 가장 적은 중구의 인구(12만 명)보다도 작은 규모다.
스포츠로는 크게 유명하지 않은 이 나라는 지금까지 올림픽 메달이 없다.
그런 안도라에서 온 빅토리아 히메네스 카신체바(186위)는 앞으로 이 나라에서 가장 유명한 스포츠 선수가 될지도 모른다.
2005년생 히메네스 카신체바는 21일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 테니스코트에서 열린 코리아오픈 단식 2회전에서 리베카 마리노(81위·캐나다)를 2-0(6-4 6-2)으로 물리쳤다.
마리노는 2011년에 세계 랭킹 38위까지 올랐던 선수다.
이날 히메네스 카신체바의 승리는 안도라 선수 최초의 WTA 투어 단식 8강 진출 기록이 됐다. 그는 15살이던 2020년 호주오픈 주니어 단식 정상에 올랐다.
주니어는 18세까지 나올 수 있는데 당시 만 15세도 되지 않은 히메네스 카신체바가 예상 밖의 우승을 차지했다.
그는 2020년 호주오픈 주니어 단식 출전 선수 가운데 최연소였다.
히메네스 카신체바 이전에는 안도라 선수가 WTA 투어 단식 본선에 뛴 적이 없었다.
WTA 투어 인터넷 홈페이지는 히메네스 카신체바의 8강행 소식을 전하며 "안도라에는 테니스 코트가 없었기 때문에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훈련해야 했다"고 소개했다.
안도라 출신으로 투어 수준에서 경기했던 선수는 히메네스 카신체바 이전에 한 명이 있었는데 바로 그의 부친 후안 히메네스 구에라다.
히메네스는 1999년 세계 랭킹 505위까지 올랐다.
22일 대회장에서 만난 히메네스 카신체바는 이번 대회에서 생애 첫 투어 본선 승리에 이어 8강까지 진출해서인지 연신 싱글벙글했다.
그는 "지난주 인도 대회에서 1회전 탈락하고 힘든 시간을 보냈는데, 한국에서는 예선에서 지고도 '러키 루저'로 본선에 올라 8강까지 진출했다"며 "어제가 코치(에두아르도 니콜로스) 생일이었는데 8강에 올라 더 기쁜 하루였다"고 소감을 밝혔다.
그러면서 "한국에는 오기 전부터 피곤했다"고 말했다.
친한 친구 2명이 있는데 한국에 간다고 했더니 "코리아, BTS, 블랙핑크" 이야기를 하도 많이 해서 피곤할 정도였다는 것이다.
히메네스 카신체바는 "한국에 오기 전에는 '얘네들이 왜 이렇게 한국을 좋아하나'라는 생각을 했지만 막상 와보니 나도 이해가 되더라"며 "어제 모처럼 시간이 나서 숙소 근처를 다녀보니 도시가 정말 깨끗하고 아름다우며, 사람들도 너무 좋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친구 두 명은 BTS와 블랙핑크의 열렬한 팬"이라고 소개했다. 어머니가 러시아 사람인 그는 스페인 문화권에 따라 부모의 성을 모두 따서 히메네스 카신체바가 성(姓)이다.
또 4살 때 미국으로 건너가 영어에 능통하고, 스페인어, 카탈루냐어, 프랑스어에 러시아어까지 구사하는 '언어 천재'이기도 하다.
5살 어린 남동생이 최근 테니스를 시작해 "앞으로 메이저 대회에서 혼합복식을 같이 하고 싶다"고 말한 히메네스 카신체바는 "앞으로 세계 1위에도 오르고 싶지만, 무엇보다 즐기면서 행복한 선수가 되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그는 23일 준준결승에서 옐레나 오스타펜코(19위·라트비아)-아나스타시야 가사노바(141위·러시아) 경기 승자와 4강 진출을 다툰다.
히메네스 카신체바는 2017년 프랑스오픈 우승자 오스타펜코와 맞대결 가능성을 묻는 말에 "그런 톱 플레이어와는 처음 만나는 것"이라며 "저는 져도 잃을 것이 없기 때문에 좋은 경험으로 여기고 최선을 다하겠다"고 답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