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연수의 듣는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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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 무렵
아버지는 우리 앞에 푸른 잉크로 집의 설계도를 인쇄한 종이를 펼쳤다. 청사진이었다. 그것만으로는 새집을 상상하기 어려웠지만, 그 은은한 푸른빛은 행복한 미래를 약속하는 듯했다. 청사진이라는 말을 들으면 그때 그 종이와 아버지의 표정이 떠오른다. 아버지는 사십 대 후반이...
2023.06.24 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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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아리 군의 신년 인사
택시에서 그가 눈을 떴을 때, 운전사의 뒷목에 노란 솜털이 돋아 있는 게 보였다. 혹시나 해서 옆 얼굴을 살폈더니 부리가 보였다. 잠이 확 달아났다 그는 몸을 일으켜 자세를 바로 하고 운전석 의자를 두들기며 말했다. “병아리 군? 병아리 군 맞지?” 운전사는 몸을 엎드...
2023.05.12 1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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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에 뛰어든 물고기처럼
스무 살이라면 앞날이 창창하다고들 말할 것이다. 사람의 일생을 80살로 본다면, 이제 1쿼터가 끝난 셈이니까. 나의 1쿼터는 정말 느리게 지나갔다. 그녀를 만나기 전, 나는 열아홉 살이었고 막 대학교에 입학했으며 뭔가를 간절하게 그리워하고 있었다. 맞다. 그녀를 만나기...
2023.04.30 1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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