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명철의 한국인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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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 둘러싸고 사상투쟁…성리학내 갈등 비화 당파성 일제 강점기 악용되고 분단까지 이어져
숙종은 공납제도의 문제점과 기득권 세력의 반발을 가져온 대동법을 넓은 지역으로 확대했고, 대부분의 토지를 측량해 징수를 합리적으로 만들었다. 또 상평통보를 주조해 농업사회인 조선에 상업과 수공업이 발달하는 계기를 마련했다. 그뿐만 아니라 오군영 체제를 완성하는 등 군사...
2022.12.19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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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권과 신권의 대결은 조선체제의 불가피한 특성 숙종 주도 세번의 환국…권력·사상투쟁에 매몰
왕권과 신권(臣權)의 대결은 태조 때부터 시작된 조선 체제의 불가피한 특성이었다. 관료이자 학자들 간의 권력과 사상 투쟁인 당쟁은 숙명이었다.환국(換局)은 일반적인 당쟁과 달리 국왕이 주도해 ‘국면 전환’, 즉 기존의 권력 집단을 빠르고 비일상적인...
2022.12.12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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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인륜적 일이 생기고 사회 붕괴 가속됐지만, 적극 대응보다 공리공론으로 권력 투쟁 몰두
사회는 붕괴 현상이 가속화되고, 반인륜적인 일들까지 발생했다. ‘갓난아이를 도랑에 버리고 강물에 던지는 일이 없는 곳이 없습니다. 한 번 옥에 들어가면 죄가 크건 작건 잇따라 얼어 죽고 있습니다’라는 기록이 있다. 또한 시장에서 아이들, 부녀자들,...
2022.12.05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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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뭄·돌림병 등 전례 없는 자연재앙 발생…경신대기근으로 100만명이 아사 추정
임진왜란, 정묘호란, 병자호란까지 무려 50년 가까이 처참한 살육 현장을 겪은 조선 백성들은 이후 어떻게 살았을까.양 난을 겪으면서 많은 농토가 유실되고, 노동력도 부족했던 경술년(1670년)과 신해년(1671년)에는 조선 역사에서 가장 참혹한 ‘경신대기근&...
2022.11.28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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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과 양반들, 북벌론에도 모화사상 못 벗어나…청나라 요청으로 파병…'나선정벌'로 변질돼
인조 때 제주도에 표착한 네덜란드인 얀 야너스 벨테브레이(박연)는 귀화해 무기 제조 등에 참여했다. 이어 표착한 동인도회사의 직원 하멜 등도 군기 개발에 참여했고, 효종도 활용했다. 한편 북쪽에서는 몽골의 지배를 벗어난 러시아가 17세기 중반부터 헤이룽강(아무르강) 일...
2022.11.21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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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종과 서인들의 실천 의지에 의구심 생기는 북벌론 국론 통일에는 효과적 수단…추후 나선정벌로 연결돼
효종의 ‘북벌론’은 비록 꿈이었을지라도 우리에게 위안을 준다.이성계는 1388년 음력 5월 하순, 압록강가에서 말머리를 돌렸다. 그가 탄 말의 눈빛과 꼬리짓, 울음소리는 어땠을까. 이후 이종무가 1419년 잠시 대마도에 발을 디뎠고, 세종 때 김종...
2022.11.14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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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관계 눈뜬 소현세자 급사, 포로·환향녀 냉대…전후에도 성리학 이데올로기에 갇혀 망국의 길로
조선 포로들의 속환가가 초기에는 남자 은 5냥, 여자 은 3냥 수준이었다. 하지만 혈육의 정이 남다른 조선 사람들이 선양을 계속 찾아오자 가격은 150냥에서 250냥 정도까지 올랐고, 심지어 한 고위관리는 아들을 위해 1500냥을 지급할 정도였다. 결국 재력 있는 양반...
2022.11.07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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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전 후 조선은 청나라 속방으로 전락…백성 50만명 이상 포로로 끌려가
이웃한 국가 간은 협력과 우호관계일 때도 있지만 경쟁과 갈등, 불가피한 충돌도 발생한다. 때로는 우리의 선택이나 상대의 의사와 무관하게 국제질서 때문에 충돌하기도 한다. 일부 배신자를 제외하고, 국가 간 충돌에서 패배한 국가의 백성에게는 포로, 노예, 죽음의 길이 기다...
2022.10.31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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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 참사 후에도 반성·개혁없이 당파싸움만…외교·군사적 대비도 없이 청과 대립하다 굴욕
명나라에서는 1627년 산시지역을 시작으로 대규모 농민 봉기가 일어나 확산했다. 병자호란 전후 명나라 중심부는 대부분 농민군에 의해 장악되고 정부는 통제 능력을 상실했다. 1636년에 2대 황타이지(皇太極)’는 ‘대청’을 선포하고, 천자...
2022.10.24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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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인 정권의 '향명배금' 정책 고집…국제질서 변화 못읽어 정묘·병자호란 자초
‘호란’은 오랑캐(胡)가 일으킨 ‘난’이라는 뜻이다. 오랑캐는 여진족 계열인 올랑개(兀郞介) 부족을 가리키는 용어지만, 성리학자들은 야만인이라는 의미로 사용했다. 조선과 청나라(여진족) 사이에 발생한 전쟁은 1627년부터 16...
2022.10.17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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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아시아 바다 누비며 무역…유럽·남미 순방도, 통신사 정세파악 못해 1875년 일본 군함에 무릎
조선 도공인 이삼평이 가마를 연 아리다(有田) 자기는 매우 유명해 유럽에서 주문자 생산이 많았고, 독일 등에는 일본 도자기 연구소들이 설립돼 도자기 문화 발전에 큰 역할을 담당했다. 도자기와 더불어 전파된 전통 그림인 ‘부세화(우키요에)’는 유럽 ...
2022.10.10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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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신사 9차례 오간 200년간 일본은 강국으로 변신…막부, 해양력 강화…경제수도 오사카 인구 40만명
조선은 1636년 일본 막부의 쇼군(장군)에게 ‘통신사(通信使)’란 정식 사절단을 파견했다. 이후 1811년까지 아홉 차례나 파견했다. 자신들을 ‘상국(上國)의 사신’ ‘대국(大國)의 사신’이라고 부르며 ...
2022.10.03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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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침략 막기 위해 일본을 살피고 배우기보다 멸시…정약용 등은 통신사 거만한 행적과 과시행태 비판
조선통신사 행사는 두 나라의 문화가 만나고 충돌하며, 경쟁하고 협력하면서 서로의 장점을 배우고 약점을 파악할 절호의 기회였다. 만약 조선이 재침을 방어하고 역습의 기회를 모색한다면, 내정을 샅샅이 탐지하고 해양력을 파악하며 복잡한 해로망까지도 탐지할 기회였다. 물론 &...
2022.09.26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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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년간의 임진왜란 후 조선·일본·명나라 급변기 맞아, 강화 분위기 고조…1811년까지 통신사 9차례 보내
7년 동안에 걸친 임진왜란이 끝날 즈음 조선 정부와 대마도 사이에는 강화 분위기가 조성됐다. 일본 내부적으로도 총력을 기울인 대규모 약탈전쟁이 실패한 탓에 무사와 백성들의 염전(厭戰) 분위기가 높아졌고, 토지의 황폐화로 사회의 토대가 흔들렸다. 참전 세력과 치열한 내전...
2022.09.19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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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후 귀환한 조선 포로들 환영은커녕 냉대받아…문벌사족들은 가족이 돌아온 사실 숨기기도
탈출을 시도하다가 죽은 사람도 꽤 많았다. 《국조인물지》에 기록된 이엽 장군은 원균이 대패한 칠천량 해전에서 잡혀 포로로 끌려갔다. 좋은 대우와 회유를 뿌리치고 탈출을 시도했다가 실패하고 결국 자결했다.쇄환, 즉 정부의 공식적인 노력으로 귀환한 사람들도 있었다. 160...
2022.09.05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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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으로 최대 10만명 안팎의 백성이 포로가 돼…마카오·인도·이탈리아·포르투갈 등지로 팔려나가
정권과 나라는 붕괴해도 괜찮다. 이민족, 다른 국가에 지배받지만 않는다면 말이다. 하지만 백성은 죽어서는 안 된다. 백성이 살아야 새 세상을 건설할 수 있기 때문이다.임진왜란을 두고 다양한 평가가 있다. 일본은 전쟁 결과를 놓고 내전이 벌어진 끝에 정권이 교체됐다. 명...
2022.08.29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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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토방위하던 의병들, 관군과 합동 전국적 전투 전개…전공 다툼으로 고초 겪거나 전쟁 후에 숙청당하기도
들불처럼 일어난 의병들의 승리로 절망적인 분위기가 사라지고, 백성들은 항전의 의지를 되찾는 전기를 마련했다. 의병들은 초기에는 향토 방위에 주력했으나, 곧 다른 지역 의병들은 물론 관군과 합동작전을 펼치면서 전국적인 전투행위를 펼쳤다. 나주의 김천일은 수백 명의 의병을...
2022.08.22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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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군 파죽지세에 한양서 임금 탈출하며 '아비규환'…핍박받던 농민·노비 등 의병으로 궐기 전국서 유격전
의병(義兵) 의승(義僧) 의기(義妓) 의곡(義穀). 이런 선조들을 생각하면 희망의 불씨가 피어오르고 생기가 돈다. 우리 공동체에 대한 자부심이 강해지고 자랑스러움을 느낀다. 하지만 사실은 비상시국이었고, 정부와 군대의 무능과 부재 현상을 알리는 안타까운 증거들이기도 하...
2022.08.15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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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양환경·전선·정보력 활용한 전략·전술 천재…다른 민족에게 자랑할 수 있는 역사와 신화 남겨
이순신은 군인으로서 남다른 삶의 방식과 특별한 용기를 가졌다. 칠천량 전투로 조선 수군은 거의 사라졌고, 임금조차 수군을 해체한 뒤 충청도로 와서 훗날을 도모하라고 특별히 전했다. 하지만 이순신 장군은 장계에 이렇게 올렸다. “신에게는 전선이 아직 12척 있...
2022.07.25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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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여회 해전 승리로 패망 위기 극복·동아시아 질서 변화
“싸움이 급하다. 부디 내 죽음을 말하지 말라.(戰方急 愼勿言我死)” 20여 번의 해전에서 무패했고, 아군은 100여 명의 전사자만 낸 이순신 장군이 전사 직전 한 말이다.육지전에서 끊임없이 패하던 임진왜란 초기인 1592년 5월 초 이순신 장군의...
2022.07.18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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