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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영훈의 한국경제史 3000년

    • 제조업 활력 떨어져 선진국 추격 제동…기술 부족한 무역대국 '속빈 강정'

      투자 부진과 높은 대외의존도 1997~1998년의 위기를 맞아 34년을 이어온 고도성장 시대가 막을 내렸다. 이후 한국 경제는 감속성장 시대에 접어들었다. 1999~2000년의 연간 성장률이 10.1%가 나온 것은 위기 이후의 반등 효과 때문이었다. 이후 성장률은 20...

      2019.06.14 17:29

      제조업 활력 떨어져 선진국 추격 제동…기술 부족한 무역대국 '속빈 강정'
    • 개발체제 대안 없이 폐기, 알맹이 빠진 '세계화'…외환위기 불렀다

      혼란의 개시 1993년 2월 김영삼 정부가 출범했다. 김영삼 대통령은 자신의 집권을 최초의 민주적 정권교체로 간주했다. 야당 정치인으로 오래 투쟁하는 사이 그는 대한민국의 45년 역사를 부정부패와 대외종속의 비도덕적 과정으로 비판하는 습관에 젖어 있었다. 대통령 취임사...

      2019.06.07 18:18

      개발체제 대안 없이 폐기, 알맹이 빠진 '세계화'…외환위기 불렀다
    • 한국형 개발체제로 타오른 한민족 기업 의지…'한강의 기적' 일궜다

      한강 변의 기적 ‘한강 변의 기적’이란 말이 맨 처음 언론을 탄 것은 1960년이다. 그해는 쥐의 해였다. 그해 정월 초하루 동아일보는 “서독은 패전의 잿더미에서 ‘라인강 변의 기적’을 일으켰는데, 우리는 아직 전기...

      2019.05.31 18:03

      한국형 개발체제로 타오른 한민족 기업 의지…'한강의 기적' 일궜다
    • 고도성장에도 '가족주의 틀' 못 벗어…'하면된다' 강조한 새마을운동

      가족과 여성의 전진 고도성장기 사회는 경제와 마찬가지로 격동의 변화를 보였다. 총인구가 1960년 2500만 명에서 1997년 4600만 명으로 늘어나는 사이 도시인구 비중은 42%에서 89%로 증가했다. 도시화와 더불어 가족형태가 크게 바뀌었다. 가족 규모가 1960...

      2019.05.24 17:26

      고도성장에도 '가족주의 틀' 못 벗어…'하면된다' 강조한 새마을운동
    • 박정희의 '중공업 드라이브'…고도성장·자립경제 두 토끼 잡았다

      자립적 국가경제의 건설 안토니 가우디가 설계한 스페인 바르셀로나의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은 1883년 착공됐는데 아직도 공사가 계속되고 있다. 국가경제를 걸작으로 건축함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박정희 대통령이 혁명공약으로 내건 ‘자립적 국가경제의 건설&rsqu...

      2019.05.17 17:56

      박정희의 '중공업 드라이브'…고도성장·자립경제 두 토끼 잡았다
    • 개발 '올인'한 박정희…정부를 '세계 경영' 위한 商社처럼 바꿨다

      석유화학의 역사 1970년대까지 한국 경제의 고도성장을 이끈 제1의 수출품은 의류, 직물, 섬유 제품이었다. 1965년 이후 스웨터 와이셔츠 아동복 등 봉제품의 수출이 증가하자 직물과 화학섬유의 수요가 폭발했다. 수출을 위한 공장 건설은 철강과 기계에 대한 수요를 유발...

      2019.05.10 17:50

      개발 '올인'한 박정희…정부를 '세계 경영' 위한 商社처럼 바꿨다
    • "굴욕적 피해 보상" 비판 받았지만…日과 국교정상화 후 고도성장

      이웃효과1911년과 2010년 사이 세계에서 1인당 실질소득이 상대적으로 가장 크게 증가한 나라를 꼽으면 한국, 일본, 대만, 싱가포르, 스웨덴, 노르웨이, 핀란드 등 7개국이다. 싱가포르를 제외하면 두 그룹으로 나뉜다. 동아시아의 한국, 일본, 대만은 1945년 이전...

      2019.05.03 16:41

      "굴욕적 피해 보상" 비판 받았지만…日과 국교정상화 후 고도성장
    • 이병철 "外資로 공장 1000개 세우자"…박정희 정부 '수출입국' 방향 제시

      貧者의 쇼핑리스트 한국 경제의 성장률은 1963년 갑자기 9.2%로 뛰어올랐다. 고도성장은 1997년까지 이어졌다. 그 35년간 한국 경제의 연간 성장률은 평균 9.1%나 됐다. 같은 기간 세계에서 가장 높은 성장률이었다. 도움은 어디에서 왔는가. 1961년 5월 쿠데...

      2019.04.26 17:44

      이병철 "外資로 공장 1000개 세우자"…박정희 정부 '수출입국' 방향 제시
    • 부통령 자리 놓고 무한정쟁 벌인 與野…3·15 부정선거로 연결

      취약국가 근대 국민국가는 여러 세대에 걸친 노력으로 세워지는 걸작 건축물과 같다. 1948년 8월 15일의 독립은 초라한 기공식에 불과했다. 어떤 건물이 세워질지, 언제 준공을 볼지는 아무도 가늠할 수 없는 미래였다. 안정된 정부, 직업적 관료제, 자립적 국가경제, 자...

      2019.04.19 17:52

      부통령 자리 놓고 무한정쟁 벌인 與野…3·15 부정선거로 연결
    • 小農 가부장이 빈곤서 일으켜 세운 '우골탑'…기적성장 밑거름 되다

      자급적 생존경제 1956년 농가 인구는 전체 인구의 65%였다. 농림어업의 취업 비중은 그보다 높은 78%였다. 도시에서 실업자가 많았기 때문이다. 농가의 경지는 평균 0.9㏊(약 2722평)의 영세 규모였다. 1950년대 한국인의 3분의 2는 영세 소농으로서 자급적 ...

      2019.04.12 17:30

      小農 가부장이 빈곤서 일으켜 세운 '우골탑'…기적성장 밑거름 되다
    • 6·25 뒤 최빈국 벗어나려 안간힘…이승만, 서독에 철강 유학생 보냈다

      스탈린의 음모 6·25전쟁은 소련, 중국, 북한이 공모해 대한민국을 국제 공산권으로 끌어들이려고 벌인 전쟁이다. 전쟁의 실질적 주역은 소련의 스탈린이었다. 전쟁은 그의 지시로 시작됐고 그의 죽음으로 막을 내렸다. 1949년 한국에서 서둘러 철수한 미국은 &...

      2019.04.05 17:27

      6·25 뒤 최빈국 벗어나려 안간힘…이승만, 서독에 철강 유학생 보냈다
    • 이승만 정부, 과감한 국유기업 불하…'고도성장 주역' 자유기업 키웠다

      개인의 보전신생 대한민국의 헌법은 각인(各人)의 자유와 창의를 존중하고 재산권을 보장한다고 했다. 각인의 경제상 자유를 인정한다고도 했다. 이런 근거에서 이 나라의 경제체제는 통상 자본주의로 불리는 시장경제로 성립했다고 이야기할 수 있다.헌법 제100조는 ‘...

      2019.03.29 17:15

      이승만 정부, 과감한 국유기업 불하…'고도성장 주역' 자유기업 키웠다
    • 신탁통치에 좌우 분열…이승만 "찬탁은 공산주의로 가는 길"

      반탁·반공운동 1946년 3월 모스크바협정에 따라 한국에 민주적 임시정부를 수립하기 위한 미소공동위원회(미소공위)가 서울에서 열렸다. 북한의 소련군 대표는 임시정부를 내각책임제로 하며, 중도파 여운형과 김규식을 내각 총리와 부총리로 삼고, 내무·...

      2019.03.22 17:46

      신탁통치에 좌우 분열…이승만 "찬탁은 공산주의로 가는 길"
    • 스탈린식 전체주의 들어선 北…산업 국유화하고 토지 강제 몰수

      소련의 북한 방침 전승국 소련은 그와 국경을 맞대는 점령지에 공산체제 국가를 세우는 것을 양보할 수 없는 전리품으로 간주했다. 북한에 진주한 소련군이 곧바로 남한과의 인적 왕래와 물적 교류를 차단, 통제한 것은 그 같은 의도에서였다. 1945년 9월 소련의 스탈린은 극...

      2019.03.15 17:22

      스탈린식 전체주의 들어선 北…산업 국유화하고 토지 강제 몰수
    • 사상 대립으로 사분오열된 해방공간…자유주의 설파한 이승만

      대분기 영국 경제학자 앵거스 매디슨(1926~2010)은 세계 각 지역 각 시대의 1인당 소득수준을 추계했다. 그에 의하면 15세기까지 세계는 평등했다. 정확히 말해 동아시아의 중국이 서유럽보다 조금 더 잘 살았다. 16세기 이후 서유럽이 중국을 추월했다. 서유럽과 그...

      2019.03.08 17:57

      사상 대립으로 사분오열된 해방공간…자유주의 설파한 이승만
    • 일제의 억압과 차별에 민족의식 싹 터…'단군의 자손' 인식 확산

      충역의 혼잡 1945년 8월 15일, 일제는 연합국에 무조건 항복을 선언했다. 중국에서 그 소식을 들은 대한민국임시정부 주석 김구는 하늘이 무너지는 듯한 실패감을 맛보았다. 천신만고로 준비해온 광복군의 국내 진공 작전이 허사로 돌아갔기 때문이다. 곧이어 임시정부 내 조...

      2019.03.01 18:30

      일제의 억압과 차별에 민족의식 싹 터…'단군의 자손' 인식 확산
    • 日帝전쟁 후방기지 된 조선…총독부, 곡식 강제매수·73만명 노무 동원

      엔 블록 1929년 10월 미국의 주식시장이 붕괴했다. 대공황은 세계로 번져갔다. 세계를 통합한 통화와 금융 체제가 무너졌다. 세계 경제는 영국, 미국, 독일, 일본을 축으로 하는 통화 블록으로 분열했다. 일본은 동아시아와 동남아시아에 걸친 엔(円) 블록을 구축했다. ...

      2019.02.22 18:19

      日帝전쟁 후방기지 된 조선…총독부, 곡식 강제매수·73만명 노무 동원
    • 日 관료로 출세한 향리 출신들…총독부 권력, 농촌 말단까지 침투

      농업의 구조변동 1911∼1937년 조선 농업의 실질 총생산은 2.1배 증가했다. 이후 1945년까지는 전시기(戰時期)인데, 원료와 중간재가 부족해 감소 추세였다. 조선 농업은 일본에 쌀을 공급하는 역할을 했다. 1910년대 초 미곡 총생산에서 대일(對日) 수출...

      2019.02.15 17:15

      日 관료로 출세한 향리 출신들…총독부 권력, 농촌 말단까지 침투
    • 日 주도 하에 경제 성장했지만…소득 상위 10%는 온통 일본인

      인구 증가1925년 최초의 국세조사(國勢調査)가 행해졌다. 이에 따르면 당시 조선의 총인구는 일본인과 외국인을 포함해 1827만 명이었다. 이는 1940년까지 2430만 명으로 증가했다. 1910년의 인구는 몇 가지 추계가 있는데, 가장 믿을 만한 수치는 1633만 명...

      2019.02.08 17:18

      日 주도 하에 경제 성장했지만…소득 상위 10%는 온통 일본인
    • 日 광역 경제권에 포섭된 조선…병참기지화로 공업화 가속

      동아시아경제권 일본 경제는 1880년대 중반부터 1910년까지 산업혁명을 이룩했다. 이후 1940년까지 일본 경제는 세계 주요 국가 중 가장 높은 성장세를 구가했다. 1913년의 1인당 실질소득을 100이라 할 때 1938년 일본의 그것은 176이었다. 반면 미국, 영...

      2019.02.01 16:21

      日 광역 경제권에 포섭된 조선…병참기지화로 공업화 가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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