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훈의 한국경제史 300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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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완전한 동화 노린 日帝…시장기구·사유재산제도 이식
동화와 차별 ‘한국경제사 3000년’의 시간 여행은 지금부터 1910년대 이래의 현대사에 진입한다. 조선을 부속 영토로 병합한 일제는 조선의 완전하고 영구한 동화(同化)를 지향했다. 1919년 조선 총독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조선과 ...
2019.01.25 1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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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0년 '위계 지배' 조선…국가 붕괴 후 사회구성체계·윤리 '산산조각'
단체의 결여 1899∼1904년 대한제국은 전국의 논, 밭, 대지를 조사했다. 1912∼1918년에는 조선총독부가 전국의 토지를 조사했다. 두 조사로 작성된 두 종류의 토지대장은 20세기 초 한국 사회의 조직 실태와 원리에 관한 정보를 풍부하게 담고 있다...
2019.01.18 1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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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병합은 日·러·美·英 동조의 결과물…고종의 無知도 패망 재촉
일본과 러시아의 각축 1896년 5월 니콜라이 2세의 대관식에 참석한 일본 특사는 러시아 외상에게 조선의 39도선을 경계로 양국의 충돌을 방지하는 완충지대를 설정하자고 제안했다. 러시아는 일본의 제안을 거절하고 장차 필요에 따라 양국이 조선을 공동 점거하자는 협정을 성...
2019.01.11 17: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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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를 개인재산 취급한 고종…화폐 마구 찍어내 인플레 불 질러
家産國家로의 변질 국가체제의 위기에 대응해 조선 국왕은 국가의 가산화(家産化)를 추구했다. 국왕 고종의 이 같은 대응 방식은 개항기 각 위계가 분산하는 정치의 모범을 이뤘다. 1882년 당오전(當五錢)의 발행이 그 출발이었다. 액면가치는 5배지만 실질가치는 2배에 불과...
2019.01.04 1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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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 충격파에 휩쓸린 조선…위기 극복의 해법 놓고 사분오열
천하에 가난한 정부18세기 말 조선왕조의 재정은 쌀 200만 석(1석=100L) 규모였다. 일본식으로는 100만 석에 해당한다. 동시대 일본의 영주들이 조세로 수취한 쌀은 1500만 석이었다. 홋카이도(北海道)를 제외한 일본 국토는 조선의 1.35배, 인구는 2배가량이...
2018.12.28 1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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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 조선, 대외무역 크게 늘어…3대 수출 품목은 '쌀·콩·소가죽'
수출입의 구조 개항 이전 조선의 대외무역이 국내총생산(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1∼2%에 불과했다. 그랬던 것이 1911년까지 20%로 커졌다. 1876∼1911년 수출과 수입의 실질 규모는 각각 연평균 9%와 15%의 높은 증가율을 보였다. 조선은 ...
2018.12.21 1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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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주의, 19세기 동아시아 상륙…주권 없는 조선 '열강 각축장'으로
동아시아 국제질서1840년 영국과의 전쟁에서 패한 청 제국이 5개 항구를 개방했다. 1853년 미국의 함대가 일본을 방문해 문호를 개방했다. 이후 동아시아의 바다를 서양의 군함과 상선이 지배하는 제국주의 시대가 열렸다. 1876년까지 조선왕조가 동아시아 최후의 은둔자로...
2018.12.14 1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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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촌 경제 버팀목' 환곡제도 붕괴…민생 파탄나자 왕조에 저항 확산
생활수준의 악화 점증하는 위기는 사람들의 생활 수준에 나쁜 영향을 미치기 시작했다. 조선왕조가 파악한 인구수는 1814년 790만 명을 정점으로 1861년까지 674만 명으로 감소했다. 논란의 여지는 있지만, 이 같은 공식 인구수의 추이는 실제 인구수 감소를 대변했다....
2018.12.07 1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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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쇄경제 고집한 19세기 조선…쌀 생산 줄고, 무역 끊겨 場市 '직격탄'
폐쇄경제의 운명 18세기 조선의 경제는 성장 추세였다. 인구가 늘고 농지가 개간돼 총생산이 증가했다. 장시의 수도 늘었다. 1인당 생산성과 실질소득이 늘었는지는 의심스럽다. 어쨌든 18세기의 성장은 조만간 한계에 부딪힐 수밖에 없었다. 폐쇄경제였기 때문이다. 일본 및 ...
2018.11.30 1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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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왕실에 뿌리내린 유교의 무속화…18세기말 '小중화 조선' 절정
유교의 무속화 삶과 죽음의 원리, 곧 종교만큼 사회의 구조와 특질을 깊숙이 규정하는 것은 없다. 그럼에도 역사학의 전통에서 종교의 역할은 언제나 소홀하게 다뤄졌다. 조선왕조의 지배 이념으로 수용된 유교는 재래의 불교와 무속(巫俗)에 대해 적대적이었다. 주술적인 귀신관은...
2018.11.23 1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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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농민들 여전히 영세 소농…'경영형 부농'으로 자라지 못했다
맹아론의 시대 1950년대 후반 북한의 역사학은 18∼19세기 조선에서 달팽이걸음이나마 자본주의 싹이 텄다고 주장했다. 이른바 ‘자본주의 맹아론’이다. 김일성이 맹아론을 처음 주장했다. 이후 맹아론은 북한에서 봇물이 터진 듯했다. 곧이어 남...
2018.11.16 1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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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년 진통' 끝에 시행한 대동법·균역법…노비 해방·소농 자립 견인
여러 형태의 교역인류 문명은 교역(trade)과 함께 출발했다. ‘태초에 농업이 아니라 상업이 있었다’는 독일 속담은 진리다. 가계, 촌락, 지역 간 유무상통을 위한 교역은 경제의 재생산에 불가결한 조건이다. 상이한 시간 간 교역도 필수적이다. 풍...
2018.11.09 1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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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농 자립 길 터준 17세기 경작 혁신…뿌리 깊은 노비제 흔들어
집약농법 1660년대 이후 한 세기 동안 조선의 경제는 양적으로 성장 추세였다. 인구가 증가하고 농지가 개간되고 장시가 확산했다. 그에 자극을 받아 농업생산도 단위 토지에 많은 노동과 비료를 투하하는 다로다비(多勞多肥)의 집약농법으로 진전했다. 17세기 후반부터 논농사...
2018.11.02 1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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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세기 중계무역이 상업경제 자극…전국 8도서 동전 유통·5일장 성행
대항해시대의 파도 1492년 콜럼버스가 신대륙을 발견했다. 이후 스페인과 포르투갈이 주도하는 대항해시대가 열렸다. 16세기 후반에는 동아시아의 바다도 스페인과 포르투갈 상인의 활동 무대가 됐다. 그들은 신대륙의 은을 가지고 와서 동남아시아와 중국의 향료, 비단, 도자기...
2018.10.26 1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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朝鮮은 '동의와 계약' 원리 작동 안 해…넓은 의미에서 노예제사회
근세사회설15~19세기 조선왕조가 세계사적으로 어떤 사회구성인가에 관한 역사가들의 생각은 공개적인 논의나 논쟁이 불가능할 정도로 가지각색이다. 그런 가운데 주류라 할 만한 흐름이 있다면 근세사회설이다.근세(近世)는 중세와 근대 사이에 놓인 과도기다. 인간의 사회적 지위...
2018.10.19 1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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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본주의에 입각한 조선왕조…中·日과 민간무역 금지로 경제 침체
농본주의 조선왕조의 경제정책은 농본주의에 입각했다. 14세기에 성행한 민간의 대외무역은 사치를 조장한다는 이유로 금지됐다. 중국과의 무역은 정부 주도의 사행(使行)무역으로 이뤄졌다. 일본과의 무역도 지정된 곳에서 양국의 상인이 만나는 공무역의 형태였다. 조선왕조 5세기...
2018.10.12 1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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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 한쪽이 노비면 자식도 노비…'양반이 지배한 나라'의 비극
노비 인구의 팽창 조선은 양반의 나라이자 노비의 나라였다. 조선왕조 500년은 노비의 애사(哀史)였다. 15세기 후반의 어느 사람은 “우리나라 인구의 절반이 노비”라고 했다. 이는 다소간의 과장이다. 1606년 경상도 산음현 호적에서 노비는 전체 ...
2018.10.05 2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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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세기 후반 농촌에 등장한 양반… 대규모 노비 거느리며 농장 경영
품관의 출현 조선왕조의 국가체제가 정비된 1460년대를 전후해 농촌사회에는 양반이란 새로운 지배 신분이 모습을 드러냈다. 양반은 원래 문반(文班)과 무반(武班)의 관료를 말했다. 고려의 양반은 국인으로서 개경에 집결한 지배공동체의 중심을 이뤘다. 농촌에는 양반이 없었다...
2018.09.28 1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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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조의 혁명적 인구조사… 1000년 전통 '세대복합체' 해체시켰다
지배체제의 이원화 조선왕조의 토지와 인구에 대한 지배체제가 나름의 형태로 완성되는 것은 《경국대전》이 편찬되는 1460년대다. 조선왕조는 토지 지배와 인구 지배를 별개의 체제로 영위했다. 토지로부터는 조세와 공물을 수취했다. 인구로부터는 군역(軍役)을 비롯한 갖가지 역...
2018.09.21 15: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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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국대전 '백성은 나라 땅 경작' 명문화… 조선 국가체제의 기본 원리
과전법 개혁1388년 위화도 회군으로 정권을 잡은 이성계 세력은 1390년 고려 왕실과 귀족의 토지를 몰수해 재분배하는 개혁을 단행했다. 이로써 고려왕조를 지탱한 귀족세력의 경제적 기반이 붕괴했으며, 뒤이어 고려왕조도 멸망했다. 개혁의 대상이 된 귀족·관료...
2018.09.14 1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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