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아침에
-
수비수들을 위한 헌사
우리들의 월드컵은 해피엔드로 끝났다. 16강 진출이라는 쾌거는 정쟁으로 얼룩져 있는 신문,방송,뉴스나 숨 막히는 생활전선에서 허덕이는 국민들에게 한 줄기 희망이었고 애국으로 하나 되고 싶은 열정적인 응원에 대한 화답이었다. 국외에서 개최된 대회에서 한번도 16강에 들지 못한 우리 팀이 운만 따랐다면 4강까지도 가능했을 것이라는 확신을 체력과 기술로 보여줌으...
2010.07.09
-
사람과 사랑은 받침 하나 차이
디자이너 앙드레 김과 워런 버핏이 닮은 점이 하나 있다면 둘 다 신문광이었다는 점이다. 앙드레 김은 아침마다 서울 지역에서 발간되는 주요 신문을 거의 다 읽었다. 버핏은 현대 기업의 역사를 알기 위해 100년 전 신문을 몇 달에 걸쳐 다 읽었다. 앙드레 김은 마이클 잭슨의 옷을 지을 때,고대 잉카제국 등 인류문명의 발상지에 가서 문명사의 혼을 온몸으로 받아...
2010.07.02
-
美 참전노병들의 증언
어제로 6 · 25전쟁이 발발한 지 꼭 60년이 지났다. 지금부터 육십갑자 전에 우리나라 전쟁에 참전했던 생존 미군들이 훈장과 기장이 잔뜩 달린 군복을 입고 자국의 중 · 고등학교를 직접 다니면서 전쟁의 의미와 전란의 참상을 가르치는 모습에서 깊은 감명을 받았다. 어림잡아 팔순 이쪽저쪽인 백발의 노병들에게서 직접 강연을 들은 미국 청소년들이 꽤나 흥분한 얼...
2010.06.25
-
구르는 돌에 이끼 끼지않는다
고향 마을에서 있었던 일이다. 40년쯤 전 얘기다. 마을 처녀가 군에 가 있는 청년에게 절교의 편지를 썼다. 한 마을에서 은밀히 사랑을 나누어 오던 사이였다. 제대하고 결혼하기로 둘은 약속했으나 청년이 제대하기 직전 처녀에게 그만 오해가 생기고 말았다. 사람 사는 세상이라면 어디서든 오해란 있다. 처녀의 오해도 그만한 것에 지나지 않았으나 애인 사이에선 종...
2010.06.18
-
잘 알지도 못하면서
홍상수 감독의 영화 중에 '잘 알지도 못하면서'라는 작품이 있다. 홍 감독의 영화가 흔히 그렇듯이 이 작품 역시 한 후줄근한 남자의 여정을 뒤쫓으면서 우리 사회의 우스꽝스러운 단면을 실감나게 드러내준다. 이 영화에서 등장인물들은 제목 그대로 전후 사정을 잘 알지도 못하면서 타인에 대한 고정관념을 재생산하고 함부로 단죄하는가 하면 타인의 일상에 침범해 들어가...
2010.06.11
-
공약의 재구성
6 · 2 지방선거가 끝났다. 유권자들의 무관심 속에서 치러지던 예년과 달리 이번 선거는 투표율이 높았고 지켜보는 재미도 만만찮았다.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아슬아슬한 개표방송은 월드컵만큼이나 흥미로웠다. 엎치락뒤치락하는 상황을 밤늦도록 지켜보았는데 아침에 일어나보니 순위는 다시 바뀌어 있었다. 예상치 못한 반전이었고 참 절묘한 결과였다. 진보와 보수측 일꾼...
2010.06.04
-
일하는 벌과 놀고먹는 벌
오늘은 제가 아는 재미있는 우화 한마디 하지요. 한 마을에 벌을 치는 두 사람이 살았습니다. 같은 일을 하다 보니 알게 모르게 경쟁할 수밖에 없겠지요. 두 사람 다 벌통을 하나씩만 가지고 있었답니다. 언제나 그렇듯 한 사람은 조금 욕심이 많고, 또 한 사람은 매사 조금은 너그러운 사람입니다. 이들 두 사람이 가지고 있는 벌통엔 각각 1000마리의 벌이 들어...
2010.05.28
-
굶주리는 거리의 나무들
사람들은 언제부터 길가에 나무를 심기 시작했을까. 고대 로마와 중국에서 시작됐다는 기록이 있긴 해도 아무래도 본격적이었던 때는 중세 이후인 듯하다. 유럽의 중세 도시엔 가로수가 없거나,있다고 해도 뒤늦게 심은 것이어서, 역시 뒤늦게 생긴 인도(人道)와 자리를 나누어 갖느라 옹색하게 서 있다. 자연이 자연으로 '발견'된 것이 18세기 이후이니 그럴 만도 하다...
2010.05.21
-
요즘 문학에 대한 오해 한가지
몇년 전 소설가 김승옥씨가 한 강연에서 이렇게 말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다. 불문과 출신인 자신이 작가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전적으로 4 · 19혁명 덕분이라는 것이다. 4 · 19세대가 늘 되뇌는 시민혁명에 대한 찬가에 어느 정도 식상해 있던 터라 심드렁하게 듣고 있으려니 이어지는 이야기가 그게 아니었다. 그는 4 · 19가 내세운 무슨 고상한 이념이나 ...
2010.05.14
-
엄마 어깨에 매달린 '평생 배낭'
일본 교토와 오사카로 짧은 여행을 다녀왔다. 그곳은 내게 초행이었고,만약 혼자였다면 좀 다른 일정을 보냈을 것이다. 다사이 오사무가 게이샤와 함께 벚꽃 휘날리는 강물 위로 투신한 다마카와 강변을 걸으며,어린 내 영혼을 사로잡았던 <<사양(斜陽)>>의 탐미적인 문장을 떠올리는 건 교토에 대한 내 오랜 로망이었다. 노인네를 동반한 패키지 여행에선 이런 일정은 ...
2010.05.07
-
대추나무는 게으르지 않더라
며칠 전 대관령에 눈이 내렸다. 함께 고향에 걷는 길을 개척하는 사람들이 4월 말 눈 내린 대관령 옛길의 사진을 보내주었다. 사진을 보내며 이런 제목을 달았다. '5월이 오는데 발목이 빠지는 눈이라니'. 마치 봅슬레이 경기장처럼 둥글게 구릉이 진 대관령 옛길에 하얗게 눈이 덮인 사진을 보노라니 이게 한겨울에 내린 눈인지 4월 말에 내린 봄눈인지 알 수가 없...
2010.04.30
-
내 마음속 꽃피울 작은 밭 있다면
바야흐로 밖은 꽃천지다. 봄꽃이 다투어 봉오리를 터뜨린다. 자꾸 창밖을 보게 된다. 어딘가로 떠나고만 싶다. 그러나 나갈 수 없다. 바쁘고, 일이 많다. 사시사철 갇혀 산다. 작가 조정래는 '글감옥'에 갇혀 산다고 했다. 키높이를 상회하는 글을 쓰고도 그는 또 새로운 장편 소설을 준비하고 있다고 한다. 아무래도 감옥에 갇혀 사는 일이 그닥 싫지는 않은 모양...
2010.04.23
-
밥상 걷어차기
'사다리 걷어차기'라는 말이 있다. 한 소장 경제학자의 저서 제목으로 유명해진 이 용어는 자본주의체제 형성과정에서 선진국이 후진국에 강요하는 여러 기만적 행태를 가리킨 것이다. 역사적으로 국내 산업에 대한 각종 보호와 특혜를 통해 경제를 발전시킨 선진국들이 자신을 추격해오는 개발도상국이 동일한 정책이나 제도를 채택하려 할 때 이른바 자유주의 경제체제에 위배...
2010.04.16
-
베네수엘라의 '엘 시스테마'
참 힘들고 아픈 시간을 뚫고 봄이 온다. 슬픔에 잠기듯 통 꽃피울 생각을 않던 벚나무 가지 끝에도 붉은 물기가 가득 차올랐다. 봄맞이 핑계로 길을 나섰다가 천진암 근처의 찻집에 들렀다. 오래전에 멸종한 줄 알았던 고전음악 찻집이었다. 어둑하고 쓸쓸한 저녁시간이었고 손님은 우리밖에 없었다. 선해 보이는 주인은 직접 담근 막걸리와 약초차를 내놓았다. 음악이 너...
2010.04.09
-
길을 걸으며 만난 스승들
사람이 살다보면 가끔 팔자에 없는 일을 할 때가 있다. 직업이 글을 쓰는 사람인데,지난해부터 고향 강원도에 주말마다 내려가 그곳에 '바우길'이라는 이름으로 10개의 코스 총연장 150㎞의 걷는 길을 개척한 일 역시 내겐 애초에 계획에 없던 일이었다. 10여년 전에 초등학교 5학년짜리 아들과 함께 대관령에서부터 산 아래까지 옛길을 굽이굽이 걸어서 '아들과 함...
2010.04.02
-
법정 스님의 '무소유'를 기리며
라힘 카말,아만딥 거프릿.지난달 끝난 밴쿠버 동계올림픽에서 '메달' 아닌 '햄버거'로 이름을 남긴 두 인도 선수다. 빙속과 스노보드 국가대표였던 두 사람은 쇠고기가 든 햄버거를 먹다 들켜 본국으로 송환되었다. 두 선수를 적발한 사람은 말릭살릭이라는 코치였고,코치는 그 사실을 고국의 총리에게 보고했다. 국가 중대사였다는 얘기다. 적발하고,현장과 물증을 촬영하...
2010.03.26
-
신학기 '병아리떼'의 두 모습
오랫동안 초등학교와 마주 보는 집에서 살아왔다. 시끄럽지 않냐고 묻는 이들도 있지만 그곳에서 들려오는 여러 가지 소리가 소음처럼 느껴진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오히려 아이들이 부르는 동요라도 들려올라치면 목청껏 그 노래를 부르던 시절이 떠올라 마음이 아릿해진다. '초록빛 여울물에 두 손을 담그면'이라든가 '펄펄 눈이 옵니다' 같은 노래 소리가 들려오면 따라...
2010.03.19
-
스포츠, 시장과 문화 사이
밴쿠버 동계올림픽이 열린 기간 우리는 즐거웠다. 올림픽의 성화처럼 불타오르던 선수들의 몸과 정신,관중의 응원도 성화와 함께 이제 가라앉았다. 잔치가 끝나면 과제가 남는다. 과제에는 해결책이 뒤따라야 한다. 그런데 스포츠는 문화라는 점에서 단순한 접근을 거부한다. 문화는 전환된 삶의 양식이기에,문제가 있을 때 단순한 대응책보다 본질을 들여다보는 노력이 필요하...
2010.03.12
-
봄이 오는 들판에서
대관령 아래 산촌을 떠나 도시에 와 살기 시작한 지 30년 가까이 되는 것 같다. 그렇게 오래 시간이 지나다 보니 달력으로만 시간이 가는 줄 알지 들판 위로 지나가는 시간을 종종 잊을 때가 있다. 어릴 때는 봄이 오면 바로 텃밭에 나가 냉이를 캐고,달래를 캐고,또 이런저런 꽃나무에 물이 오르고,꽃이 피어나는 모습을 늘 지켜보며 자랐다. 그때는 달력으로 시간...
2010.03.05
-
이 스파게티는 면이 굵으십니다
작가의 직업병일 것이다. 습관적으로 아무데서나 '원고 교정'을 본다. 틀린 낱말과 잘못된 글의 용례를 그냥 지나치지 못한다. 잘못 표기된 식당 차림표,텔레비전 자막들이 눈에 띈다. '찌게'는 '찌개'로 써야 맞다. '육계장'이 아니라 '육개장'이다. 텔레비전 자막(字幕)은 '-했던'과 '-했든'을 구별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앞의 것은 과거를 나타내는 어...
2010.02.26
A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