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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아침의 시

    • 눈이 온다 - 유강희(1968~)

      아랍 문자처럼 눈이 온다.초등학교 빈 운동장엔 모래들이 따스하다.방학을 맞은 아이들이 남기고 간 웃음소리로,급히 남쪽으로 방향을 바꾸는 풍향계.회기 시장 언덕배기튀밥을 튀기며 사는 할아버지 머리 위에도옛날을 그리워할 사이도 없이 눈이 내린다.눈이 내리는 만큼이나 많은 ...

      2022.02.13 18:13

       눈이 온다 - 유강희(1968~)
    • 눈 3 - 임선기 (1968~)

      나는 잠들어 있었다깨어난다잠들어 있는 사람을깨워주는 일은아름다운 일아름다운 일이 내린다.이미 깊은눈이 내린다시집 《피아노로 가는 눈밭》(창비) 中올해 첫눈이 쌓였고 그 눈으로 아이는 눈싸움을 하고 왔다는데요. 나는 잠들어 있었습니다. 오후 세 시까지, 해는 쨍 하고 떠...

      2022.01.23 17:36

       눈 3 - 임선기 (1968~)
    • 삼척 - 허은실 (1975~)

      칼을 갖고 싶었지고등어처럼푸르게 빛나는칼이 내 몸에 들어와찔린 옆구리로 당신을 낳았지바다가 온다흰 날을 빛내며칼이 온다시집 《나는 잠깐 설웁다》(문학동네) 中포기할 게 많던 지난날에 유일하게 선택한 것, 시가 나의 무기가 된 순간이었던 것 같아요. 끝까지 쓰고 끝내 버...

      2022.01.16 18:19

       삼척 - 허은실 (1975~)
    • 수평 - 이시영 (1949~)

      참새 한 마리가 내려앉자 가지가 휘청하면서 파르르 떨더니이내 지구의 중심을 바로잡는다시집 《나비가 돌아왔다》(문학과지성사) 中어떤 상상력과 감각은 사소한 생명의 움직임을 낯설고 시적인 풍경으로 보이게도 하지요. 여기, 참새 한 마리의 작은 몸짓이, 나뭇가지의 떨림이 그...

      2022.01.09 17:57

       수평 - 이시영 (1949~)
    • 겨울의 중심 - 박연준(1980~)

      무릎이 앙상해질 때창문 밖에서배고픈 택시들 질주하는 소리 들릴 때겨울은 중심으로 응집된다오른쪽 눈이 침침해졌다비밀의 농도가 조금 옅어졌다말없이 지구를 굴리던 사바나 코끼리가잠시 한숨 쉬는 사이무릎이 해진 바지를 입고아침부터 책상까지5시부터 음악까지서성이고 싶다시집 《아...

      2021.12.19 17:55

       겨울의 중심 - 박연준(1980~)
    • 유머 있는 라이터 - 임지은(1980~)

      춤추는 사람은 낙관주의자입니다문워크를 할 때조차 앞으로 나아가고 있으니까요좋은 소설가는 날달걀입니다중요한 순간 탁, 깨져야 하니까요선생님은 노래방입니다끝까지 듣지 않습니다아이는 깜빡거리는 신호등입니다다 건너지도 않았는데 어른이 되었습니다젖은 수건으로 얼굴을 닦습니다분명...

      2021.12.12 18:20

       유머 있는 라이터 - 임지은(1980~)
    • 빵 에티튜드 - 박시하(1972~)

      바스락거리는 봉지 안에 크림빵이 세개 들어 있다빵은 밤과는 어울리지 않는다사랑이 오던 순간처럼빵은 영원하다그 하얀 몸에 투신해서녹아 사라지려고밤마다 울며빵 봉지를 들고 서 있다시집 《우리의 대화는 이런 것입니다》(문학동네) 中흰 눈이 세상을 덮으면 어떤 거리도 비슷한 ...

      2021.12.05 18:16

       빵 에티튜드 - 박시하(1972~)
    • 이 아침의 시 내 들꽃이 바람 속에서 말한다 박상순(1962~)

      겨울 바닷가의 해 질 녘. 바람 속에서 내 들꽃이 말한다. 아름 답지요. ─나는 춥다. 겨울 바닷가의 해 질 녘 바람 속에서 내 들꽃이 말한다. 여기 앉아요. 아름답지요? ─나는 춥다. 시집 《사랑의 근력》(걷는사람) 中 추운 겨울 바닷가에서는 할 말이 많지 않을지도 ...

      2021.11.28 18:10

      이 아침의 시 내 들꽃이 바람 속에서 말한다
박상순(1962~)
    • 물 - 김안녕(1976~)

      아끼던 물병을 어디 두고 왔는지 기억이 없네유용하다고 말했지아낀다고 했었지아끼는 사람을 어디 두고 왔는데알 수 없네어느 틈에어느 옛날에목이 마를 때,그제야너를 잃었다는 그 생각시집 《사랑의 근력》(걷는사람) 中아침에 일어나, 뜨거운 물 한 모금을 마시면 몸에 피가 도는...

      2021.11.21 18:30

       물 - 김안녕(1976~)
    • 눈 내리는 병원의 봄 - 최지은(1986~)

      할 수 있는 것 없어잠든 할머니 한번 더 재워도 보고빈 병 물 채우는 소리만 울리는밤의 복도무엇이든 약속받고 싶던지난 겨울창밖을 지나가고시집 《봄밤이 끝나가요, 때마침 시는 너무 짧고요》(창비) 中눈 내리는 날은 너무 따뜻해서 겨울을 의심하게 될 때가 있어요. 흰 눈으...

      2021.11.14 17:21

       눈 내리는 병원의 봄 - 최지은(1986~)
    • 서울의 달 - 최서림(1956~)

      집 떠나면 나그네인가고향 달은 은쟁반에가득 담긴 송편 같은데,빌딩 사이 창백한 서울의 달은수은등만큼이나 외롭고 쓸쓸하다서울 집은 돈이지 집이 아니다엄마가 있는 시골집에선이웃 동네 마실 가듯사뿐사뿐 걸어서달까지 갔다 올 수 있는데……시집 《가벼워...

      2021.11.07 17:33

       서울의 달 - 최서림(1956~)
    • 히든 페이지 - 이종민(1990~)

      꿈인 듯 처음 보는 광경이었습니다흰 종이가 주렁주렁 열린 산수유나무특이한 향이 나는 푸른 식물들언젠가 이곳에서 본 적이 있던 것도 같습니다정상에 다 온 건가요물었을 때붉은색 글자를 손바닥으로 쓸며 그가 말합니다이곳에서 잠시 쉬어갑시다시집 《오늘에게 이름을 붙여주고 싶어...

      2021.10.31 18:19

       히든 페이지 - 이종민(1990~)
    • 모르는 겨울 - 신용목(1974~)

      밤은 음악에 속해 있지만 늘 하루에 갇힌다.초인종 소리처럼 눈이 내리고,그는 제 걸음마다 수천수만 개의 바람의 문이 열리고 있다는 것을 모른다. 가로등 아래서는 폐가처럼 어둠이 부서져 있다는 것을.초인종 소리가 하얗게 쌓이고거기 찍힌 발자국이 끝내 들어서지 못한 문 밖...

      2021.10.24 18:18

       모르는 겨울 - 신용목(1974~)
    • 못다 한 말 - 박은지(1985년~)

      설원을 달렸다숨이 몸보다 커질 때까지숨만 쉬어도 지구 반대편 사람을 만날 수 있어그렇게 말하는 너를 보는 게 좋았다여기 너무 아름답다우리 꼭 다시 오자겨울 별자리가 가고 여름 별자리가 올 때까지녹지 않는 것이 있었다시집 《여름 상설 공연》(민음사) 中‘못다 ...

      2021.10.17 18:15

       못다 한 말 - 박은지(1985년~)
    • 아, 해가 나를 - 황인숙(1958~)

      한 꼬마가 아이스케키를 쭉쭉 빨면서땡볕 속을 걸어온다두 뺨이 햇볕을 쭉쭉 빨아먹는다팔과 종아리가 햇볕을 쭉쭉 빨아먹는다송사리떼처럼 햇볕을 쪼아먹으려 솟구치는 피톨들살갗이 탱탱하다전엔 나도 햇볕을쭉쭉 빨아먹었지단내로 터질 듯한 햇볕을지금은 해가 나를 빨아먹네.시집 《자명...

      2021.10.10 17:13

       아, 해가 나를 - 황인숙(1958~)
    • 벽에 대고 - 이원(1968~)

      슬픔에 성냥을 그으면작고 빨간 요정의 머리부터 타들어간다시집 《나는 나의 다정한 얼룩말》(현대문학)中타오르는 모닥불을 보고 있으면 새삼스럽게 그 신비로움에 빠져듭니다. 일률적인 높이로 타오르는 가스불과 다르게 활활 타는 모닥불은 이상한 상념에 잠기게 만듭니다. 어둠 속...

      2021.10.03 17:24

       벽에 대고 - 이원(1968~)
    • 포옹 - 피재현(1967~)

      누가 나를 좀 안아 줘나와 같은 체온이내 밖에또 있다는 것을알려 줘시집 《원더우먼 윤채선》(걷는사람)코로나로 인해 하루에도 몇 번이고 체온을 측정한다. 체온이 같은 사람들만이 통과할 수 있는 출입문에 서서 손목을 대면서 생각한다. 이에 비하면 포옹이란 얼마나 따뜻하고 ...

      2021.09.26 18:12

       포옹 - 피재현(1967~)
    • 사이시옷 - 권창섭(1981~)

      적을까 지울까 고민하는 동안사람 하나 저 멀리서 크게 소리친다둘이 만나는 일이란 다 그런 것이라고나는 발음된 적도 없었다고그저 있는 것이나의 일이라고시집 《고양이 게스트하우스 한국어》(창비) 中시옷은 산처럼 홀로 서 있기에도 어느 글자 사이에 끼어 있기에도 적당한 것만...

      2021.09.12 18:12

       사이시옷 - 권창섭(1981~)
    • 게 눈 - 이가림(1943~)

      평생 갯벌만 찍는잽싼 스냅 사진사의 카메라그 희한한 볼록렌즈엔밀물도 아니고 썰물도 아닌어지러운 우주의 온갖 찬란한 만다라 무늬들아롱아롱 비칠 뿐시집 《바람개비별》(시학) 中여기, 평생 갯벌만 찍는 스냅 사진사 게가 있습니다. 갯벌에 가면 꼼지락거리는 게를 구경만 했지,...

      2021.09.05 18:08

       게 눈 - 이가림(1943~)
    • 여름 - 강지이(1993~)

      그곳에 영화관이 있었다여름엔 수영을 했고 나무 밑을 걷다 네가 그 앞에 서 있기에 그곳에 들어갔다 거기선 상한 우유 냄새와 따뜻한 밀가루 냄새가 났다 너는 장면들에 대해 얘기했고 그 장면들은 어디에도 나오지 않은 것이었지만 그래도 좋았다 어두워지면 너는 물처럼 투명해졌...

      2021.08.29 22:59

       여름 - 강지이(19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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