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윤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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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과 의사에게 직장에서 오래 살아남는 법을 묻는다면
10년쯤 일하고 나면 전문가가 될 것으로 생각하던 때가 있었다. 2~3년 차 편집자 시절의 이야기다. 신입의 티를 막 벗어나 각종 실무가 조금 손에 익어서, 친구를 만나면 여기저기서 주워들은 업계 이야기며 용어들을 그럴싸하게 늘어놓으며 젠체하던 시기다. 하지만 속으로는...
2024.10.07 1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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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림픽도 막지 못한 파리지앵의 책 사랑
1년 전인 2023년 여름, 파리 출판계에는 한바탕 소란이 일었다. 파리의 부키니스트들에게 2024년 파리 올림픽 기간 중 ‘센강을 떠나라’는 퇴거 명령이 떨어진 것이다. 부키니스트란 센강 기슭을 따라 늘어선 책 노점상을 일컫는다. 16세...
2024.07.26 1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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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을 아끼는 마음이 있다면, 그 마음은 어디로 향해야 할까
주말 낮, 시내 대형 쇼핑몰의 영화관에서 영화를 한 편 보았다. 200석 가까운 상영관에 관객은 열 명이 채 되지 않았다. 영화 제목은 '생츄어리'. 청주영상위원회의 제작 지원을 받은 다큐멘터리 영화다. ‘생츄어리’란 위급한...
2024.06.19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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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번지' 식당엔 늘 친구들이 있었다
학교 앞 1번지를 언제부터 드나들었는지 모르겠다. 입학하자마자, 어쩌면 입학식도 치르기 전이었을 테다. 1번지는 치킨집이지만 우리 안주는 주로 노가리와 번데기, 쥐포 같은 것이었다. 치킨 냄새를 맡으며 ‘겉바속촉’(겉은 바삭, 속은 촉촉) 노가리를...
2024.05.24 1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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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번지에서 맛본 것은 사람에 대한 예의였다
학교 앞 일번지를 언제부터 드나들었는지 모르겠다. 입학하자마자, 어쩌면 입학식도 치르기 전이었을 테다. 그전부터 이미 예비대학이니 신입생 환영회니 술 마실 일은 많았으니까. 일번지는 치킨집이지만 우리의 안주는 주로 노가리와 번데기, 쥐포 같은 것들이었다. 치킨 냄새를 ...
2024.05.20 0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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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물간 만화가들에게서 오래도록 은은히 빛날 수 있음을 본다
담당했던 만화 잡지가 망했다. 쓰디쓴 폐간의 맛. 회사에서 맡았던 업무가 사라진다면 선택할 수 있는 길은 두 가지일 테다. 남아서 다른 일을 하거나, 조직을 떠나거나. 시오자와는 후자를 택했다. 그에게 자리를 내놓으라는 사람은 없었지만, 시대의 흐름을 읽지 못했다는, ...
2024.03.19 17: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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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안일과 글쓰기를 함께 해야했던 女 작가들은 어떻게 책상에 앉아있었을까
새해에는 좀 더 열심히 읽고 써야겠다는 결심을 했다. 편집자라면 으레 많이 읽고 쓸 것이라 생각하겠지만, 읽고 싶은 책보다는 원고나 참고자료 읽는 일이 훨씬 많고, 보도자료나 표지문안 외에는 완성된 글을 쓰는 일이 드물다. 한 달에 한 번 연재하는 칼럼 마감하기도 버겁...
2024.01.31 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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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이 심드렁한 중년의 삶은 어떻게 달라질 수 있는가
마흔을 넘어서며 입버릇처럼 나이를 핑계 삼았다. 체력이 떨어지고 여기저기 아픈 것도, 일의 능률이 오르지 않는 것도, 일상이 심드렁한 것도 “나이 들어 그렇지”라며 체념인지 위안인지 모를 말로 넘겼다.시간이 흐를수록 농담처럼 내뱉던 말에 발목 잡히...
2023.12.29 16: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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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풍놀이를 가야 하는 의학적 이유
무더위, 열대야, 높은 습도, 모기… 여러 악조건에도 불구하고 겨울보다 여름을 선호하는 이유는 오직 해가 길어서다. 나는 하지 다음 날부터 짧아지는 해를 아쉬워하다가, 추분부터 본격적으로 우울해지는 사람이다. 줄어든 낮 길이만큼 인생을 누군가에게 뺏긴 것 같은 기분이다...
2023.10.26 08: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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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사자까지 사랑하겠어, 고양이를 사랑하는 거지
고양이가 우리 집에 들어왔다. 손바닥만 한 아기 고양이. 장마철이었고, 아파트 단지에 조성된 인공 개울가에 상자에 담긴 채 위태롭게 놓여 있었다고 했다. 밖에 두면 죽을 것이 뻔했고, 갈 곳은 없었다. 그렇게 우리 가족은 얼결에 고양이를 거실에 들이게 되었다. 벌써 6...
2023.08.31 1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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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덕후 보다 프랑켄슈타인 덕후를 자처한 사연
최애 아이돌 멤버가 뮤지컬 에 캐스팅되었다는 기사를 보고 가장 먼저 한 일 은 원작소설 《프랑켄슈타인》을 주문한 것이었다. 뭐든 책으로 먼저 배우려는 편집자의 고질병이 발동한 탓이다. 이런 식으로 사두고 안 읽은 책이 수두룩했지만, 《프랑켄슈타인》은 달랐다. 책장을 넘...
2023.07.31 1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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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0년 된 나무가 임윤찬이 선택한 피아노가 되기까지
유치원 대신 피아노학원을 다닌 나는 피아노가 진심으로 좋았다. 어지간한 친구네 집에는 피아노가 한 대씩 있던 시절이었고, 나 역시 피아노가 갖고 싶었다. 며칠 밤낮을 울며 떼쓴 결과, 드디어 나에게도 피아노가 생겼다. 이제 열심히 배우고 연습해 피아니스트가 될 터였다....
2023.06.22 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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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 한 잔에 담긴 수백 년의 이야기
1인당 연간 평균 소비량 367잔, 지난 1월 전국에 등록된 커피전문점 개수는 9만3414개. 대한민국 커피의 현주소다. 통계가 나타내는 것처럼 나 역시 커피 없는 하루는 상상할 수 없다. 단지 카페인(과 단 것)이 필요해서 믹스커피를 약처럼 입 안에 털어넣던 시절을 ...
2023.05.30 1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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링컨은 노예해방에 관심 없었다
크리스티와 함께 세계 경매시장을 양분하고 있는 소더비. 왕실의 보석, 유명인의 애장품, 고흐나 칸딘스키의 미술작품 등 수천억을 호가하는 물건들이 거래되는 이곳은 일반인에게는 ‘부의 상징’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그 거래 목록 사이에서 책을 떠올리기란 쉽지 않다. ‘얼마나...
2023.04.29 1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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