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나는 책
-
기득권을 그냥 내려놓는 사람은 없다
국가는 개인이 참여해 실감할 수 있는 가장 큰 규모의 조직이다. 우리는 이른바 개발도상국이라 간주하는 국가들을 바라보며 민족성을 운운하기도 한다. 하지만 한국도 한때 ‘코리안 타임’이란 얘기를 들었을 정도로 약속 시간을 준수하지 않았고 길거리는 깨...
2024.04.29 09:10
-
책을 읽다 치밀어오르는 감정을 억누르고 먼 곳을 바라봤다
2015년의 어느 날을 기억한다. 군대에서 휴가를 나왔었고, 막 출간된 한 문학상의 수상작품집을 사든 채 버스에 앉아 읽고 있었다. 서울역을 지나던 중이었을까, 어두운 하늘 아래로 높은 건물들이 노란빛을 뿜어내며 고적하고 호젓한 야경을 완성하고 있었다.그 풍경을 기억하...
2024.04.24 18:16
-
30년을 냉동 인간으로 버텨온 '댄'은 행복할 자격이 있어
하루는 길고 세월은 짧다. 서로 다른 우리에게 똑같이 심어진 씨앗이 있다면 이런 시간에 대한 감각일 듯하다. 하루가 긴 것은 순간순간 겪어 내야 하는 낙담과 절망들이 너무도 생생한 탓일 테고 세월이 짧은 것은 그 순간의 낙담들이 다 잊힌 채 몇 개의 좋은 기억들만 붙잡...
2024.04.22 11:24
-
거대 담론에 맞서 조그만 이야기 계속 내놓겠다는 영화감독
여기 “작은 이야기를 계속하겠다”라고 말하는 영화감독이 있다. 그의 이름은 고레에다 히로카즈. 영화 <어느 가족>에서 피가 섞이지 않았지만 좀도둑질을 하며 한집에서 사는 가족의 이야기를 그린다.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에서 6년간 키웠던 아이가 산...
2024.04.08 10:40
-
박사님은 좋게 말해 경계가 없고 나쁘게 말해 일관성이 없어
이 책은 문윤성문학상 장편 부문 대상 수상작이니 내가 감히 아깝다고 말할 수는 없겠다. 그래도 탐났던 원고, 비록 지금은 겨울도 다 지나 꽃 피는 계절이지만, 이미 조금 그리워진 크리스마스의 정취를 담아 소개해본다. 신인 작가 김원우가 선보이는 첫 장편소설 <크리스마스...
2024.04.01 10:55
-
체중과 건강관리의 성배 같은 책...비만코드
현대인은 비스킷 하나 앞에서도 고민을 한다. 아는 게 병이라서…. 이걸 먹으면 점심에 흰밥 두 숟가락 남긴 게 무슨 소용이야, 한숨이 나온다.코로나 팬데믹 이전, 각종 행사가 여전히 활발하던 그 시절 어느 날이었다. 조찬 강연에 어색하게 참석하게 된 나는 ...
2024.03.25 14:37
-
한물간 만화가들에게서 오래도록 은은히 빛날 수 있음을 본다
담당했던 만화 잡지가 망했다. 쓰디쓴 폐간의 맛. 회사에서 맡았던 업무가 사라진다면 선택할 수 있는 길은 두 가지일 테다. 남아서 다른 일을 하거나, 조직을 떠나거나. 시오자와는 후자를 택했다. 그에게 자리를 내놓으라는 사람은 없었지만, 시대의 흐름을 읽지 못했다는, ...
2024.03.19 17:52
-
한 개짜리 별점의 가능성
책 살 때 남이 단 별점을 본 적이 없다. 그런데 만들 때는, 만들자마자 기다리기 시작해 등록되는 족족 챙겨 본다. 별점은 나를 뿌듯하게도 하고 거슬리게도 하고, 누가 처음 만들었는지 하여간 신경쓰이는 제도다. 별점이 생산되는 온라인 서점은 꿈에 그리는 독자를 만날 수...
2023.06.08 11:44
-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려달라'는 말을 들으면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려달라는 말을 들으면 머릿속 공장이 갑작스레 가동되는 느낌이 든다. 평소엔 전혀 돌아가지 않아 굳어버린 톱니바퀴들에 급히 윤활유를 뿌리고 부지런히 태엽을 감는다. 자동차 엔진에 예열이 필요하듯이 오랫동안 생각을 가다듬으면서 ‘그래, 이번에는 정말 재...
2023.06.07 14:40
-
커피 한 잔에 담긴 수백 년의 이야기
1인당 연간 평균 소비량 367잔, 지난 1월 전국에 등록된 커피전문점 개수는 9만3414개. 대한민국 커피의 현주소다. 통계가 나타내는 것처럼 나 역시 커피 없는 하루는 상상할 수 없다. 단지 카페인(과 단 것)이 필요해서 믹스커피를 약처럼 입 안에 털어넣던 시절을 ...
2023.05.30 10:44
-
이것은 철학책인가 과학책인가
어느 편집자가 반기지 않을까. 연구의 최전선에서 대단한 성과를 내고 있는 새 저자가 직접 쓴 교양서, 게다가 자신의 고유한 관점과 생각이 담긴 책이라면. 원서 출간 전부터 화제가 되었던 의식과학 책, 영국의 신경과학자 아닐 세스의 을 이참에 읽어본다. 의식이란 것은 왜...
2023.05.26 13:48
-
우연한 인생을 포착하는 각자의 스토리
지금처럼 세상이 복잡하고 휙휙 바뀌어 갈 때, 뉴스에서는 리스크가 커진다고 우려한다. 그러나 세상의 위기를 금으로 만드는 모험가들은 리스크의 불확실성에 기회가 숨어 있다는 것을 잘 안다. 정답을 찾는 교육만 받아온 대다수 사람들에게, 급격한 변화는 여간 불편하고 불안한...
2023.05.22 10:40
-
너의 세계로 가는 길
아이야, 네가 다운증후군을 가진 채 태어난 것을 알고 며칠은 슬펐다. 그 며칠을 제외하고는 지금까지 계속 행복하다. 너는 아직 말을 하지 못한다. 말을 하지 못한다는 것은 무얼까. 너는 “네” “아니” “싫어” “좋아” 같은 말은 곧잘 한다. 그러나 “오늘 날씨를 보니...
2023.05.19 16:10
-
무수한 손을 거쳐 완성되는 '일인용 책'
언젠가 출판사를 차리면 기필코 일인 출판사로 꾸려야지. 바람처럼 말하지 않아도 시작하는 자영업자로서 ‘일인 기업’이란 지극히 자연한 출발이겠지만, 구태 다짐처럼 했던 말이다. 인적 규모(라고 부를 수 있다면) 외에 내정해둔 것이 하나 더 있으니 역시나 회사명인데, 이름...
2023.05.17 14:15
-
명랑하게 무책임한 부정성
한 청년이 서점에 들어선다. 사장을 대면한 그는 다짜고짜 서점에서 일을 시켜달라 하더니 “저는 그러기를 갈망하고 있으며 그 무엇도 제가 마음먹은 바를 실행에 옮기는 걸 막지 못할 것 같습니다”라고 말한다. 초년생이라면 응당 갖춰야 할 겸손과 예의는 어디로 간 것인가? ...
2023.05.15 17:20
-
빵으로 다시 세우는 하루
‘책임 편집’을 맡은 도서의 경우, 한 권의 책이 만들어지기까지 원고를 적어도 대여섯 번은 샅샅이 읽어 보게 된다. 그 몇 달 간의 과정 속에서 보아도 보아도 원고의 산뜻함이 닳지 않는 경우가 있다면 책이 내게 새로운 시점을 선물해 줄 때다. 오카다 도시키의 소설집 가...
2023.05.12 14:56
-
‘탐나는 책’으로 구병모 작가의 소설집을 꼽는 것은 반칙
인정한다. 한국 문학 편집자가 ‘탐나는 책’으로 구병모 작가의 소설집을 꼽는 것은 반칙이다. 누가 탐을 내지 않을 것인가? 나는 작가님이 만일 내게 원고를 주시겠다고 하면 자전거를 타고 작가님 동네까지 갈 자신도 있다. (참고로 나는 자전거 타기를 아주 많이 좋아하고,...
2023.05.10 14:29
-
"고단한 세상살이에 누구의 삶이 시가 아니겠는가"
감히 무엇을 하려는 마음1) “그래, 인생 이모작이다. 이제부터 예전의 나는 없다.”(176쪽) 사실은 이런 문장을 쓰는 이를 찾아다닌다. 물론 새로울 것 없는 말, 어쩌면 세상 모든 사람이 하고 듣는 말이지만, 그 사람이 할 때만큼은 세상 입에 닳지도 귀에 물리지도 ...
2023.05.08 13:24
-
논쟁거리가 되는 책을 꿈꿉니다
다소 자기 비하하는 기질이 있는 것인지, 나는 다른 편집자들이 작업한 책들을 보고 이런 책은 내가 만들고 싶었는데 아쉽다는 생각은 해본 적이 없는 것 같다. 그보다는 내가 담당했더라면 그 좋은 책을 이상하게 망쳐놓았을지도 모른다고, 혹은 도서관 한구석에 오래도록 파묻혀...
2023.05.01 12:43
-
문학은 쓸모 없기 때문에 쓸모 있다
소설은 근대 이후로 문학의 가장 중추적이며 대표적인 장르로 자리매김하였고, 문학은 근대를 지나오면서 ‘쓸모없음’을 미덕으로 어필하여 복잡한 현대사회에서 근근이 생존하고 있다. 요컨대 문학은 쓸모가 없어서 쓸모 있는 것이 된다는 말인데, 이는 사사로운 말장난이 아니라, ...
2023.04.29 19:18
A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