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이 아침의 시

    • 묠란드 - 홍인혜

      착하게 굴지 않아도 아침은 머리맡에 놓인다 엽서는 온 나라를 돌고 돌아 느리게 도착하고 그즈음엔 모서리가 닳아 모든 말들은 둥글다 행인들은 목적이 없어 난생처음 제 속도로 걷고 너의 찢어진 주머니에서 굴러 나온 팥알들을 모두가 말없이 주워 손바닥에 얹어준다 신발 끈은 ...

      2022.12.26 18:18

       묠란드 - 홍인혜
    • only human we only dancer - 김누누

      어느 날 이들은 어느 잔디밭에 둥글게 둘러앉아 손을 마주잡고 하하 호호 웃음꽃을 피울 것이다 날씨는 무척 좋을 것이며 한국어나 일본어 혹은 영어로 이야기를 나눌 것이다 그러나어떤 말이든 간에 모두가 같은 언어를 구사할 것이며모두가 모두의 말을 아주 잘 알아들을 것이다대...

      2022.12.19 18:07

       only human we only dancer - 김누누
    • 생일 케이크 - 김경후

      내 앞에 붉은 불꽃들한 해 한 해점점 더 많이내 입으로 불어 끈다훅!노을을 뒤덮는 연기박쥐 떼검은 날갯소리해가 넘어갈수록 케이크 위의 초는 늘어납니다. 그에 반해 마음속에 피어있는 불꽃은 줄어든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럴 때면 박쥐 떼가 노을을 뒤덮듯 마음속에도 어둠이 ...

      2022.12.12 18:10

       생일 케이크 - 김경후
    • 난간 위의 고양이 - 박서원

      그는 난간이 두렵지 않다벚꽃처럼 난간을 뛰어넘는 법을아는 고양이그가 두려워하는 건 바로 그 묘기의명수인 발과 발톱냄새를 잘 맡는 예민한 코어리석은 생선은 고양이를 피해 달아나고고양이는 난간에 섰을 때가장 위대한 힘이 솟구침을 안다그가 두려워하는 건늘 새 이슬 떨구어내는...

      2022.12.05 18:06

       난간 위의 고양이 - 박서원
    • 역행시 - 송승언

      별들이 머리칼 속에서 숨바꼭질을 한다 혜성들처럼너는 차가운 강물에 머리를 씻는다물고기들이 머리칼 속에서 숨바꼭질을 한다그것들이 별을 삼키고 이제 영원히 어둠.시집 <사랑과 교육>(민음사) 中어느덧 겨울입니다. 아침저녁으로 부쩍 추워졌습니다. 맨발을 담그고 있기 힘들 정...

      2022.11.28 18:39

       역행시 - 송승언
    • 벤치 - 임솔아

      그래 우리 그만하자는 말 좀 그만하자.우리는 앉을 곳을 빼앗긴다.너무 오래 비어 있는 의자는 누군가 맡아놓은 자리 같고미안하지도 않아서 미안함은 너무 오래 간다.시집 <괴괴한 날씨와 착한 사람들>(문학과지성사) 中 시 일부 발췌그만하고 싶은 순간이 찾아올 때마다 이를 ...

      2022.10.24 18:21

       벤치 - 임솔아
    • 어느 날 오후 - 임승유

      무슨 일이 일어났다. 무슨 일이 있는지 알아보느라 나는 아무 일도 못 했고사람들은 왔다 갔다 했다. 사람들이 왔다 갔다 하느라 넓이가 생겼다. 저기 입구까지 생겨났다. 입구로부터 누가 걸어오고 있었다. 누군지 아직 몰랐지만 알게 된다면정말 무슨 일이 일어날까 봐바닥을 ...

      2022.10.17 18:14

       어느 날 오후 - 임승유
    • 생활과 예보 - 박준

      비 온다니 꽃 지겠다진종일 마루에 앉아라디오를 듣던 아버지가오늘 처음으로 한 말이었다시집 <우리가 함께 장마를 볼 수도 있겠습니다> (문학과지성사)올여름 세찬 비가 자주 내렸습니다. 길가에는 늦게 핀 꽃들이 아직 떨어지지 않고 남아있고요. 부쩍 차가워진 바람과 함께 지...

      2022.10.03 18:16

       생활과 예보 - 박준
    • 데칼코마니 - 박세미

      데칼코마니 - 박세미하나라고 여겼던 심장이 두 갈래로 벌어지던 저녁이 있었고 이인분의 생을 사는 일인분이 되었고 예고 없이 폭설이 왔고 심장 하나를 떼어내 움켜쥐고 눈 위에 팡팡 두드렸고 일인분의 기억이 사라졌고 나머지 심장 하나가 뜨거운 혈액을 온몸으로 푹푹 내보내고...

      2022.09.19 18:20

       데칼코마니 - 박세미
    • 침례2 - 정현우(1986~)

      우리는 툭하면 공을 던지고서로를 맞히려 했지.그러다조용히 피하는 법을 배우고서로가 서로를 알아보지 못할 때까지공만 무수히 늘어나고.시집 <나는 천사에게 말을 배웠지>(창비) 中두 사람 사이로 공이 날아듭니다. 서로가 서로의 과녁이 될 때, 날아드는 것은 비단 공뿐만이 ...

      2022.09.12 18:14

       침례2 - 정현우(1986~)
    • 뒤처진 새 - 라이너 쿤체

      철새 떼가, 남쪽에서날아오며도나우강을 건널 때면,나는 기다린다뒤처진 새를그게 어떤 건지, 내가 안다남들과 발 맞출 수 없다는 것어릴 적부터 내가 안다뒤처진 새가 머리 위로 날아 떠나면나는 그에게 내 힘을 보낸다시집 <나와 마주하는 시간>(봄날의 책) 中뒤처진 기분을 느...

      2022.09.05 17:57

       뒤처진 새 - 라이너 쿤체
    • 순서 - 차호지

      친구가 벽을 두드리고 나는 그 소리에 잠에서 깬다. 나는 이제 가 봐야만 해. 멀리 빗소리가 들린다. 방은 덥고 습하고 나는 몹시 땀을 흘리고 있다. 창문을 본다. 밖으로 나간 친구는 창밖에서 내게 인사할 것이다. 잘 있어, 나는 창문 속 뛰어가는 사람의 손을 그린다....

      2022.08.29 18:24

       순서 - 차호지
    • 개미 - 여림(1967~2002)

      며칠째 먹을 것이 바닥 난나의 방에서 개미들은 무에저리 옮겨갈 것이 많다는 걸까개미들은 오가며 꼭 한번씩 서로의몸을 매만지고 지난다.시집 <비 고인 하늘을 밟고 가는 일> 中시의 화자는 배고픈 와중에도 개미들이 무엇을 먹고 있는지에 주목하기보단, 개미들이 서로 매만지는...

      2022.08.22 17:41

       개미 - 여림(1967~2002)
    • 손을 놓치다 - 오은

      분침이 따라잡지 못한 시침마음과 따로 노는 몸체형을 기억하는 데 실패한 티셔츠매듭이 버린 신발 끈단어가 놓친 시추신이 잊은 안부그림자가 두고 온 사람아무도 더듬지 않는 자취한 명의 우리시집 <나는 이름이 있었다>(아침달) 中모래알이 스르륵 손가락 사이를 흘러 내려갑니다...

      2022.08.15 17:31

       손을 놓치다 - 오은
    • 연두가 되는 고통 - 김소연

      왜 하필 벌레는여기를 갉아 먹었을까요나뭇잎 하나를 주워 들고 네가질문을 만든다나뭇잎 구멍에 눈을 대고나는 하늘을 바라본다나뭇잎 한 장에서 격투의 내력이 읽힌다벌레에겐 그게 긍지였겠지거긴 나뭇잎의 궁지였으니까서로의 흉터에서 사는 우리처럼그래서 우리는 아침마다화분에 물을 ...

      2022.08.08 17:58

       연두가 되는 고통 - 김소연
    • 빗댈 수 없는 마음 - 여세실(1997~)

      천장은 모두 스테인드글라스로 되어있다조각나 있는 것처럼 보이는 창문마다 색색의 빛이 투과되고 있다아름다움은 공포심과 마찬가지로 주도면밀하다는 걸신부가 잔을 들어올린다 축성을 한다믿음에 틈을 비집고문예지 ‘현대시학’(2022년 1·2월호...

      2022.08.01 17:45

       빗댈 수 없는 마음 - 여세실(1997~)
    • 날개뼈 - 조온윤(1993~)

      네가 길바닥에 웅크려 앉아네 몸보다 작은 것들을 돌볼 때가만히 솟아오르는 비밀이 있지태어나 한번도 미끄러진 적 없는생경한 언덕 위처럼녹은 밀랍을 뚝뚝 흘리며부러진 발로 걸어가는 그곳인간의 등 뒤에 숨겨두고데려가지 않은 새들의 무덤처럼시집 《햇볕 쬐기》(창비) 中날씨가 ...

      2022.03.13 18:07

       날개뼈 - 조온윤(1993~)
    • 상처 - 이승하(1960~)

      산 개미가 죽은 개미를 물고어디론가 가는 광경을어린 시절 본 적이 있다산 군인이 죽은 군인을 업고비틀대며 가는 장면을영화관에서 본 적이 있다상처입은 자는 알 것이다상처입은 타인한테 다가가그 상처 닦아주고 싸매주고그리고는 벌떡 일어나상처입힌 자들을 향해외치고 싶어지는 이...

      2022.03.06 18:28

       상처 - 이승하(1960~)
    • 초저녁 별 - 권대웅 (1962~)

      들판을 헤매던 양치기가하룻밤을 새우려고산중턱에서 피우는 모닥불처럼퇴근길 주머니에국밥 한 그릇 값밖에 없는지게꾼이 찾아갈 주막처럼일찍이 인생이 쓸쓸하다는 것을깨달은 사람이창문을 열어놓고 뻐끔뻐끔혼자 담배를 피우는, 저 별시집 《나는 누가 살다 간 여름일까》 (문학동네) ...

      2022.02.27 18:15

       초저녁 별 - 권대웅 (1962~)
    • 품 - 정현종 (1939~)

      비 맞고 서 있는 나무들처럼어디안길 수 있을까.비는 어디 있고나무는 어디 있을까그들이 만드는 품은 또어디 있을까.시집 《이슬》(문학과지성사) 中비 맞고 서 있는 나무들이 그러한 것처럼 사람도 어디 안길 수 있는 품을 찾는 존재들이지요. 사랑으로 용서로 관용으로 서로를 ...

      2022.02.20 18:15

       품 - 정현종 (1939~)
    / 28

    AD

    상단 바로가기